타이난 안핑 여행
오늘은 지난 2월 10일에 다녀온 대만 타이난 지역 여행기를 올립니다. 대만은 타이페이, 타이중, 타이난, 즉 태북, 태중, 태남으로 지역명을 지었어요. 가장 남쪽에 위치한 곳이 타이난인데요. 타이난의 서쪽, 타이완 해협 옆에 위치한 안핑은 타이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지역입니다. 1600년대 네덜란드가 타이난을 점령하면서 개발이 시작되었고 무역이 발달하면서 타이완 최초로 라오제가 생겼어요. 라오제를 중심으로 안핑구바오, 안평수옥, 덕기양행 등 주요 관광 명소가 모여 있습니다.
안핑은 우리나라의 경주와 같은 곳입니다. 역사적인 유적이 많은데요.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안핑구바오(질란디아 요새) 安平古堡|안평고보.
1624년 네덜란드가 타이완을 점령한 후 지은 첫 번째 군사 요새로 원래 이름은 제럴드성이었습니다. 군데군데 허물어진 곳이 있지만 1600년대의 건축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웅장한 외관이 잘 보존되어 있어요.
어떻게 그 시절에 이렇게 정교한 벽돌성을 지었을까 생각하다 문득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여행 갔다가 해양박물관에서 본 설명이 떠올랐어요.
네덜란드에서 출항한 동인도회사 소속 배가 인도네시아 식민지까지 가는데 8개월이 넘게 걸립니다. 선원의 15~20퍼센트는 항해 중 사망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어요. 그 시절, 가난하고 교육 받지 못한 이들이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말에 배를 타고요. 배의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갈 때는 벽돌을 실고가서 올 땐 향신료나 도자기 등을 실어왔답니다. 그렇게 실어간 벽돌은 현지 정착지에서 건물 짓는데 쓰였고요.
즉 이곳 타이난의 요새 벽돌은 400년 전 네덜란드에서 건너온 거죠. 향신료 무역이 주였지만 노예 무역도 했어요. 100만명 넘게 노예로 팔려갔고요. 황금 시대, 네덜란드의 노예상들이 식민지 노예 무역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네덜란드 해상제국은 당시 인도네시아, 수리남, 일본 나가사키 하우스텐보스 등까지 세력을 미쳤고요. 남아프리카 공화국도 네덜란드 식민지였어요.
물론 곧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의 견제를 받으며 네덜란드의 힘은 약해집니다. 대만 안핑에 있는 요새도 훗날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폐허가 됩니다.
이곳은 덕기양행 德記洋行. 영국의 무역상이 1867년에 지은 곳이고요. 양행은 ‘서양과 무역을 하는 상점, 서양 상품을 취급하는 상점’ 이라는 뜻으로 설탕, 장뇌, 아편 등의 수출입을 담당했답니다.
제게 인상적인 공간은 안평수옥 安平樹屋이었어요.
일제 강점기에 지어져 소금 창고로 이용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되었어요. 건물을 사용하지 않는 동안 주변에 있던 반얀트리 가지와 뿌리가 벽과 지붕을 뚫고 자라면서 소금 창고를 뒤덮었고 지금은 타이난에서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되었지요.
앙코르 와트의 타 프롬이라는 유적이 생각나더군요. 영화 <툼 레이더>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인데요.
수백년된 유적을 나무가 감싸안은 모습을 보면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됩니다. 시간 앞에는 장사 없어요.
다리에 올라 개천을 건너가면,
안핑 자전거 도로가 나옵니다. 가이드북에서는 안핑 여행을 타이난에 숙소를 잡고 반나절 정도 다녀올만한 곳이라고 했는데요. 다음엔 안핑에서 3박 4일 정도 머물며 구석구석 자전거 여행을 다녀봐야겠다 싶었어요.
강변을 따라 볼만한 곳이 많더라고요.
점심은 어디서 먹을까? '소 두마리 우육면'이라는 식당에 갔어요. 7천원. 구글 지도 리뷰 5천개의 위용을 자랑하는 집인데요. 낮 12시 반에 가게 문을 닫습니다. 퇴근이 아주 빠른 아침 식사 맛집이지요. 저는 식당을 찾을 때 리뷰의 내용을 일일이 살피지 않습니다. 그냥 리뷰 갯수를 봐요. 리뷰의 갯수가 많다는 건 오래된 식당이고, 많은 사람이 이용했다는 뜻이거든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일일이 리뷰를 읽는 대신 리뷰의 숫자만 봅니다.
이제 점심 먹고 다시 타이난으로 갑니다. 적감루 赤嵌樓 츠칸러우로 타이난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1653 년 네덜란드인에 의해 요새로 세워졌던 곳.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진과 전쟁으로 많이 파손되었지만 옛날 네덜란드인이 쌓아 올린 붉은 벽돌의 성벽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참고로 이번 여행에서는 <타이완 셀프트래블 (2023-2024)> (이주영 저)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예스24 크레마클럽에서 전자책으로 빌려서 현지에서 스마트폰으로 보면서 다녔어요. 개인 가이드인셈이지요.
아버지 모시고 제주도 여행 갔다가 게스트하우스에 갔는데요. 게하라는 곳의 특성을 모르시는 아버지는 "여긴 여인숙이다, 이 자식아!" 라고 역정을 내셔서 숙소 사장님 앞에서 무척 난처했던 적이 있어요. 다행히 사장님이 칠십 노인 모시고 여행 다니는 저의 어려움을 양해해주셔서 1박만 하고 다음날 호텔로 옮겼지요.
'아니 나도 처음 가는데, 어떻게 아냐고요.'
타이난에서 제가 묵은 숙소는 1박에 25,000원입니다. 1인실이 이 가격이니, 거의 도미토리 수준의 저가 숙소지요. 저는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가정집을 숙소로 내놓은 거라 주방도 쓸 수 있거든요. 인생을 살면서 항상 느껴요. 남을 만족시키는 건 참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는 간단한 방법은 돈을 많이 쓰면 됩니다. 아주 많이. 비싼 숙소, 비싼 맛집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그렇게 여행을 자주 다니면 파산합니다. 자주 못가고요, 짧게 다니게 됩니다. 저는 여행을 길게 자주 다니고 싶습니다. 아주 오래오래. 그래서 저는 혼자 다닙니다. 평생 짠돌이로 살았기에 25,000원짜리 독실에서 7,000원짜리 우육면만 먹어도 저는 아주 행복하거든요. 결국 분수에 맞게 사는 게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끊임없이 지속가능한 세계일주를 꿈꾸는 짠돌이의 여행기,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