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식pd 2024. 3. 27. 04:53

1992년 유럽 배낭여행을 갔을 때, 현지에서 만난 프랑스나 영국 사람들에게 유럽에서 어디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가 생소한 이름을 들었어요. 영국 사람은 브뤼지스Bruges라고 했고, 프랑스 사람은 브뤼헤라고도 했어요. "응? 난생 처음 들어보는데, 거기가 어디야?" "벨기에의 도시야." "아, 브뤼셀? 오줌싸개 동상?" "아니, 거기는 가지 마. 볼 게 별로 없어. 그 동상 빼고는... 대신 브뤼헤에 꼭 가봐. 가보면 알아. 정말 예쁜 도시야."
그래서 찾아갔다가 완전 반했던 곳이지요. 그 시절에도 저는 자전거 여행을 좋아했는데, 운하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닌 기억이 있어요. 운하와 중세 유럽의 건물이 잘 보존된 도시.

이번에 갔을 때는 먼저 Free Walking Tour부터 신청했어요. 도시의 역사에 대해 궁금했거든요.

그날 만난 가이드가 들려준 브뤼헤의 역사.

중세 시대에 브뤼헤는 유럽의 주요한 무역항 중 하나로 번성했습니다. 15세기 말 하구에 토사가 퇴적돼 북해로 나가는 통로가 막히면서 항구 기능을 잃어요. 게다가 새로운 지배자인 합스부르크 왕가에 반기를 들었다가 정치적 보복을 당합니다. 행정과 상업의 중심지를 동쪽 헨트와 안트베르펜으로 옮기지요. 결국 해상 무역 경로의 변화와 스페인의 대서양 항로 발견, 정치 보복 등의 일련의 사건으로 상인들이 떠나버린 도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갑니다.

지금도 그 시절의 운하는 남아있어요. 무역항으로서의 역할은 잃었지만, 여행자들을 실어나르기엔 딱이지요.

부자 도시가 갑자기 가난해져서 벼락거지가 된 셈인데요. 그래서 오래된 중세 시절의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만약 계속 경제가 발전했다면 낡은 건물은 새로운 건물로 바뀌었겠지만요. 20세기 들어 여행과 관광이 붐을 이루며 갑자기 다시 사람들에게 발견되었어요. 중세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매력적인 도시라고. 그 덕분에 후손들은 관광 수입으로 먹고 살지요.

1992년에 브뤼헤에 온 저는 어린 시절에 살았던 고향 경주가 떠올랐어요.

경주의 구시가에는 한옥 모양의 집들이 많이 있어요. 역사적 도시인지라 재건축이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생활이 불편하다고 하는 이도 있는데요. 누가 그랬어요.

"경주는 복받은 도시야. 1000년 전에 돌아가신 선조들이 1000년 후의 후손들을 먹여 살리는 곳이니까."

브뤼헤는 인구 11만에 불과한 소도시이지만 별명이 '북해의 베네치아'에요. 12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 지어진 중세 시대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어 '천장 없는 박물관'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날의 가이드는 사람들에게 '사진 찍기 좋은 곳'을 추천해줬어요. 영국에서 온 가족의 사진도 찍어줬는데요. 저 아빠가 갑자기 제게 와서 말을 걸었어요. "아까 돌아가며 자기 소개할 때, 한국에서 왔다고 했지요?" "네." "우리 딸이 K-Pop을 아주 좋아하는데, 한국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반가워하더라고요. 혹 사진 한 장 같이 찍을 수 있나요?" 아웅, 이렇게 반가울 수가.

블랙핑크를 좋아하는 영국의 10대 소녀와 함께 찰칵! ^^ 이제는 세계 어디를 여행가도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환대받는 일이 많아요. 고마워요, 케이팝!

그날의 투어 가이드는 유쾌한 분이었어요. 말을 무척 재미나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미국 시카고 출신의 코미디언이에요. 투어 중간에 풍선을 불어 간단한 촌극을 펼치기도 해요. 일행 중 커플이 있으면 남자를 불러내어

풍선으로 수갑을 만들어 채웁니다. 

그러고는 강제로 프로포즈하게 만들지요.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지요. 이런 로맨틱한 이벤트, 좋으네요. 

도시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주십니다.

물의 도시 브뤼헤의 흥망성쇠가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져요.

옆에 있는 이가 딸인데요. 아빠가 하는 일을 보며 배우는 중.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폭격을 피하게 된 사연이 있어요. 당시 독일군 공군 장교가 브뤼헤를 좋아해서 이렇게 예쁜 도시를 굳이 폭격할 필요가 없다고 강력 주장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제 생각에는 가난한 도시라 아마 군수공장 같은 생산 기반 시설이 없기에 폭격을 피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

이렇게 유쾌한 가이드를 만나면, 20대에 독학으로 영어 공부한 보람을 느껴요. ^^ 나더러 와서 직업을 묻기에 드라마 피디였다고 하니까 투어가 끝나고 잠깐 남으라고 하더군요. 

딸이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유럽에서는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 혹 한국에서 인턴쉽 알선 가능하냐고. 솔직하게 얘기했어요. '한국의 방송 제작사는 입사 경쟁이 치열한데, 그것도 한국어 구사 능력이 중요하다. 면접과 논술을 통과해야 하니까. 영어 사용자가 기회를 얻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저도 딸이랑 여행 중이지만, 다시 한번 느꼈어요. 아, 모든 아빠는 딸 바보로구나. ^^ 이렇게 훌륭한 우리 딸을 왜 아직 세상은 몰라보는 걸까? 그러겠지요. 
브뤼헤 이야기는 다음에 조금 더 해볼게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