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돌이의 경제 공부

선진국이 된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무엇일까?

김민식pd 2024. 3. 11. 05:20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니 어떤 분이 나와서 삶이 힘들다고 하소연합니다. 남편이 돈을 안 벌어와서 힘들고, 친정엄마가 간섭해서 힘들고,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 힘들다고요. 그랬더니 스님 말씀. “나랑 인도 봉사 한번 갑시다. 거기 가서 길거리에서 먹고 자는 불가촉천민들 밥해주고 집 지어주는 봉사 활동하면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바뀔 텐데.”

제가 그랬어요. 이번에 미얀마 여행 가서 제일 먼저 충격을 받은 장면. 미얀마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발달한 도시인 양곤의 거리에 노숙하는 가족의 모습입니다. 서울에도 노숙자는 있어요. 실업이나 사업 실패로 길거리로 내몰리는 중장년의 남자들이지요. 양곤에서는 가족이 도로변에서 먹고 자고 생활을 합니다. 어린 아기가 도로변에 누워 잠을 자는데 그곳이 바로 온 가족의 거처입니다. 1950년대 서울의 거리에서 전쟁고아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는 것 같아요.

이제 한국에서는 미얀마나 인도에서 보는 그런 절대적 빈곤의 모습은 사라졌어요. 다만 선진국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남은 과제가 있습니다. 지난번에 소개한 <일본이 온다>에서 서울대 국제대학원 원장이신 김현철 저자는 3가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첫째는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전략.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야기되는 빈곤과 질병, 노후 불안 등 각종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고 안정된 사회적 보장을 제공하는 것이지요.

둘째는 임금 격차 완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개인에게 상실감을 안겨줍니다. 최저 임금이 지나치게 낮으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도 어려워 근로 의욕이 사라집니다. 노동시장에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최저 임금은 꾸준히 올려야 합니다.

셋째는 교육 개혁. ‘한강의 기적’과 ‘세계화의 기적’은 한국인 특유의 교육열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교육의 지역 편중 문제나 부의 대물림 현상이 심해지고 있어요. 서울대의 경우, 수도권 지역 학생의 입학이 두드러지게 많고요, 재수생이나 삼수생의 비율도 갈수록 늘어납니다. 즉 경제력이 있는 가정의 자녀들이 서울대 신입생의 다수를 차지하는 거죠. 개혁을 통해 계층 사다리를 복원해야 합니다.



저는 항상 책을 읽으며 미래를 가늠해보려 하는데요. 경제 전문가이신 저자는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예언하십니다. ‘경제성장률은 2%에 수렴한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경제학자로 추앙받는 케인스가 추정한 수치입니다. 그의 경제 이론과 예측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의 경제 상황을 분석하고 대응하기 위해 발전했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선진국이 지난 50년간 2% 정도의 성장률을 거두었습니다. 장기적으로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는 선진국은 없습니다. 다만 예외가 되는 나라 둘이 있는데요. 하나가 지난 30년간 평균 성장률이 0.3%에 머무른 이탈리아이고, 또 하나는 4번의 경제적 충격을 겪으며 평균 0.7%의 성장률을 보인 일본입니다.

이미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선 한국은 지금의 2% 성장률을 계속 유지하면 머지않아 일본을 추월하게 됩니다. 전문가들은 향후 한국은 2% 전후의 성장을 달성하지만, 일본은 0%대 성장에 머물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거든요. 30년 뒤에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7만 달러 수준이 되고, 일본은 5만 달러 수준이 됩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자녀나 그다음 세대가 우리보다 못살 것이라는 시중의 이야기는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후손들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우리보다 더 잘살 수밖에 없어요. 그것도 일본보다 더 잘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못사는 첫 세대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할까요? 지금의 부모 세대가 가난에서 벗어나 급속히 잘살게 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입니다. 해마다 경제가 10~15%씩 성장하는 것만 경험했던 부모 세대는 최근 2% 전후의 저성장이 놀라울 것입니다. 그래서 비관론에 동조하는 거죠. 잘못된 추측입니다.

지금 한국은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입니다. 지금의 몸집에서 2% 성장이라는 것은 사실상 어마어마한 부가가치를 의미하고요. 이걸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자녀 세대를 걱정하면서 그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려고 지나치게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잘살 수밖에 없는 세대니까요. 오히려 부모 세대는 자신의 노후를 더 걱정해야지요.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노후를 맞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노후대비의 핵심은 건강입니다. 일본의 데이터만 보더라도 노년층은 축적 소득의 거의 70%를 병원비로 사용했어요. 그럼 노후를 위해 소득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병원비를 절감해줄 건강유지에 더 신경 써야 합니다. 제가 요즘 일본의 소도시 여행을 자주 다니는데요. 니가타라는 곳에 갔다가 아침에 조식을 차려주는 카페에 간 적이 있어요. 70이 넘은 백발의 남자 노인이 식사를 차려주셨어요. 그 모습이 신선하고 신기했어요. 

일본에서는 70~80대 어르신 중에도 여전히 현업에서 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소득을 늘리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건강을 위해서도 계속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정기적으로 출퇴근하거나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봉사 활동 등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에 더 좋습니다.

자녀 세대의 경제 행동은 우리와 달라질 것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6~7만 달러 시대를 살아간다면 예전과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경제학자 케인스는 유명한 논문 <우리 손주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에서 다다음 세대를 향한 조언을 유언처럼 남겼습니다. 앞으로 2%대의 경제 성장을 할 것이기 때문에 특히 2가지를 명심해야 한다고요.

첫째, 경제적 비관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것이라는 말이나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는 등의 경제적 비관주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둘째, 기존의 가치관을 버리고 새로운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돈이나 재화에 대한 지나친 사랑을 버리고 수단보다는 목적을, 효율보다는 선함을 추구하라고요.

비록 우리는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우리의 자녀 세대는 선진국에서 태어나 살아갑니다. 서로의 가치관은 다를 수밖에 없어요. 선진국이 되었기에 과거와 같은 높은 성장률을 기대할 수는 없어도 지속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선 경제적 비관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세대에 만연한 물질주의, 물신주의도 함께 버려야 합니다. 돈이면 최고고 돈만 있으면 다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케인스의 조언처럼 수단보다 목적을, 효율보다 선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돈은 목적을 위한 수단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돈을 버는 것보다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그리고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한국은 전 국토에 사통팔달로 깔아놓은 도로나 통신망 같은 인프라, 잘 개발된 관광지나 리조트 등 모든 국민이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자산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다음 세대는 이것 또한 누리며 살아갈 것이니 이런 자산까지 고려한다면 1인당 평균 10만 달러 전후의 소득을 향유하는 셈이 됩니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다음 세대는 행복하게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면 됩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생존을 위해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하면서 돈을 벌어야하겠지요. 부자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모험을 할 필요도 있어요. 저는 그것이 한국의 창의성을 키워주고 소프트파워 강국이 되는 길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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