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돌이의 경제 공부

우리는 어쩌다 부자 나라가 되었을까?

김민식pd 2024. 3. 8. 05:36

2023년 2월, 3주간 미얀마를 여행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낭쉐의 논두렁을 달리다 찍은 사진을 친구에게 보냈더니, “해외 여행 중인 거 맞나요? 한국의 시골 풍경이랑 똑같은데?”라는 반응이 왔어요. 미얀마 여행하면서 어릴 적 고향의 모습이 자주 떠올랐어요. 2500개의 아름다운 불탑이 있는 도시, 바간의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궁금했습니다. 천 년 전 이토록 찬란했던 문명을 이룩한 나라인데, 아니 불과 수십 년 전에 세계 쌀수출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생산성이 높은 나라였는데, 지금은 어쩌다 이렇게 가난한 지경에 이르렀을까? 그것보다 더 궁금한 건, ‘미얀마보다 더 가난했던 한국은 어쩌다 부자 나라가 되었을까?’였어요. 그러다 <일본이 온다>라는 책을 읽고 한국 경제의 발달 과정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데는 당시 미국과 소련의 냉전 구도가 큰 역할을 했다. 이승만 정권은 냉전 구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강력한 반공 정책을 취하면서 미국의 원조를 끌어왔고, 그것을 토대로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생필품 중심의 원조만 가지고는 제대로 된 경제발전 정책을 추진할 수 없었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다른 방법의 경제발전 정책을 모색한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냉전을 경제발전에 전략적으로 이용했는데, 가장 먼저 눈을 돌린 것이 일본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었다. 박정희는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하자마자 일본의 정치가 기시 노부스케에게 편지를 보냈다. 같은 만주국 출신으로 일본국 수상을 역임한 기시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일본이 온다> (김현철 / 쌤앤파커스) (87쪽)

박정희는 쿠데타로 집권했기 때문에 정권의 정당성이 없어요. 어떻게든 경제적으로 성과를 일구어야 한다는 생각에 일본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고요. 그 덕에 식민통치에 대한 청구권으로 무상 3억 달러와 유상 차관 2억 달러를 일본에서 받아내지요, 이게 1960년대 한국의 경제발전의 소중한 종잣돈이 됩니다. 이보다 더 큰 도움이 된 것은 베트남전 참전이었어요. 이때 미국으로부터 받은 돈이 총 81억 달러나 되거든요. 미국은 원래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과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요, 베트남 파병을 계기로 대미 관계가 개선되며 미국 수출 시장이 열립니다. 일본으로부터 원자재나 부품을 수입해 가공한 뒤 미국으로 수출하는, 한미일 3각 경제구조가 만들어집니다.

1970년대 후반 중동발 오일 쇼크가 터지며 한국의 경제는 다시 위기를 맞게 되는데요. 한국에서는 또 한 차례의 군사 반란이 일어납니다. 1979년 군사 반란으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신군부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문제였어요. 같은 해 이란 사태로 국제유가가 3배나 폭등했거든요. 연평균 10% 이상 고도성장하던 한국 경제는 1980년에 1956년 이후 처음으로 –2.7%로 곤두박질칩니다.

권력 보전에 위기감을 느낀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 때와 마찬가지로 일본에 손을 내밉니다. 한국은 국방비 부담이 과다하고 대일 무역적자가 심하니 100억 달러의 차관을 달라고요. 일본의 스즈키 수상은 일언지하에 거절하는데요. 이에 전두환은 미국의 레이건에게 달려가 하소연합니다. ‘한국은 태평양에서 자유 진영의 방파제 역할을 하기에 일본은 한국의 군사 안보적 역할에 협조해야 한다.’고요. 레이건은 일본에게 한미일 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국에 40억 달러의 ‘안보 경협 차관’을 제공하게 하지요. 이것을 기반으로 한국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고도성장의 궤도에 올라서게 되고요.

책을 읽으며 군사 반란으로 권력을 잡은 이들이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냉전 구도를 활용해 미국과 일본의 도움을 끌어냈다는 점을 주목하게 되었어요. 한반도의 분단과 군부 독재는 분명 우리 국민에게는 큰 비극입니다. 그 비극이 알고 보니 우리의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었다는 게 아이러니지요. 가난한 나라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온 국민이 땀흘려 일한 결과 우리는 개발도상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진짜 기적은 1990년대 이후 30년간 한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많은 개발도상국은 선진국 진입에 대체로 실패합니다. 이를 ‘중진국 함정’이라고 불러요. 개발도상국이 중간 소득 국가 단계에 진입한 후 성장력을 상실해 선진국에 이르지 못하고 중진국에 머무르거나 저소득 국가로 퇴보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세계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1960년에 중진국이었던 101개 국가 중 2008년까지 선진국으로 도약한 국가는 대한민국과 아일랜드, 대만 등 13개국밖에 없다. 나머지는 50년 동안 그 상태에 머물러 있거나 심지어 더 가난해졌다. 그렇기에 중진국 함정은 예외적인 것이 아닌 보편적인 현상에 가까우며 거기에서 탈출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일본이 온다> 95쪽)

중진국 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지나친 불균형 성장으로 성장 동력이 소진되거나 생산 비용이 과도하게 높아져 경쟁력이 약화 되기 때문입니다. 부정부패가 만연해 정치가 불안정해지거나 소득 양극화 심화로 사회적 통합이 안 되어 그런 경우도 있고요. 러시아, 멕시코, 브라질, 태국, 남아공이 그런 예지요.

미얀마에서 가장 마음이 아픈 장면은 도로 검문하는 군인들이 버스 기사에게 뇌물을 받는 모습이었어요. 검문소가 나타나면 버스 기사는 미리 지폐를 조그맣게 말아서 준비하고요, 창 너머로 건네줍니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너무나 뻔뻔하게 뇌물 수수가 이뤄져요. 군부의 지도자는 총칼로 민주 정부를 침탈해 권력을 뺏었는데 졸개들이 버스 운전사에게 푼돈 좀 뜯는 게 뭐가 나쁘겠어요. 한국도 예전에는 그랬지요. 지금은 청탁금지법이 있어 그게 불법이라는 걸 누구나 다 알고요.



‘한강의 기적’을 통해 후진국에서 중진국이 되었다면,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된 건 세계화와 정보화 덕분입니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을 이어받아 1993년에 탄생한 김영삼 정권은 국정 기조를 ‘세계화’로 잡았어요. 일본이 내수시장에 집중할 때, 한국의 기업들은 세계 시장 개척에 나섭니다. 1992년에 헝가리 여행 갔을 때,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대부’ ‘대부’라고 그랬는데요. 알고 보니 한국 기업 대우의 현지식 발음이었어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며 김우중 회장이 대우 그룹의 세계화를 추진한 것도 이때고요.

일본은 인구만 1억이 넘는 경제 대국이고요, 그러다보니 내수시장만으로도 기업이 생존 가능합니다. 한국은 작은 나라지요. 그래서 해외 수출 시장 개척에 있어 일본보다 더 치열한데요. 마침 세계화 바람이 불면서 거대한 글로벌 마켓이 부상함에 따라 한국처럼 작은 나라도 커다란 시장을 만나게 됩니다. 일본 여행 다니며 느끼는 게요, 아직도 영어를 하는 사람이 드물어요. 반면 한국 사람은 누구나 영어 공부에 대한 갈증이 있지요. 그만큼 세계화 시대에 한국이 앞서갈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한 겁니다.

한국이 일본보다 더 빠른 게 하나 더 있어요. 바로 인터넷 연결입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을 연결한 디지털 강국입니다. 김대중 정부는 초대 정보통신부 장관에 임명된 대우전자 출신의 배순훈 장관이 ADSL을 전국적으로 깝니다. 당시 일본과 독일은 ISDN 동축케이블을 깔았는데 이건 일반 전화 모뎀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요. 1999년을 기점으로 ADSL 광케이블이 24시간 정액제 요금제와 함께 보급되면서 ‘초고속 인터넷 대중화’가 시작됩니다.

전국에 빠른 인터넷이 깔리면서 PC방 문화가 생겨나고요. 많은 이들이 온라인 게임을 즐기면서 한국은 세계적인 e-스포츠 강국이 됩니다. 일본은 아직 출판 강국입니다. 그래서 만화도 책으로 읽어요. 한국의 만화 시장은 웹툰으로 빠르게 전환했어요. 디지털 콘텐츠로 거듭난 웹툰은 다시 한류의 선봉이 되어 세계 시장에 빠르게 파고들게 되었고요.

1960년대부터 30년 동안은 군부 독재와 냉전 덕분에 후진국이 중진국이 되었고요. 1990년부터는 민주 정부가 들어서 국가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세계화와 정보화라는 정책을 추진한 덕분에 국가 경쟁력이 올라갔어요. 그 사이에는 무엇이 있나요? 국부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정부를 이끌어낸 1987년의 민주화 운동이 있어요.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서 열불 터져 죽는 줄 알았다는 친구들에게 저는 영화 <1987>을 이어 보라고 권합니다. 79년 나라를 지켜야 할 군인들이 총구를 거꾸로 돌려 군사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때 지도층에서는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우왕좌왕해요. 그래서 나라를 다시 한번 반란군에게 빼앗기는데요. 이때, 시민의 저항 정신을 보여준 게 80년 광주와 87년 민주화 투쟁입니다. 그 시절의 민주화 운동이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서울의 봄>을 보고 분통을 터뜨리셨다면 <1987>을 보며 희망을 되새기셔도 좋아요. 우리는 군부 독재를 우리 손으로 종식하고 민주화를 이룩하고 중진국의 함정을 넘어 선진국으로 도약한 나라니까요. 

<일본이 온다> 책을 읽고 배운 점은 다음에 조금 더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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