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식pd 2024. 3. 6. 05:07

1992년에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여행에 꽂혔어요. 이 재미난 해외여행, 좀 더 자주 다닐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다 첫 직장에서 사표를 내고 통역대학원에 들어갔어요. 프리랜서 통역사로 일하면,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잖아요? 실제로 1995년 겨울에는 1달 반 동안 호주 배낭여행을 가고요, 1996년 여름방학 기간에는 어머니랑 여동생이랑 셋이서 한 달 동안 캐나다 렌터카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어요. 당시에는 통역사 시급이 높아서 (1995년 기준 1시간에 5만원) 한 달 정도 통역을 하면, 한 달 동안 해외 여행을 다닐 수 있었어요. '그래, 남은 평생 이렇게 일과 여행을 오가며 살자.'라고 마음을 먹었는데요. 생각지도 않게 MBC PD가 되면서 인생이 바뀝니다.

피디로 일하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노는 것보다 일하는 게 더 재밌더라고요. 여행 다니면 번 돈을 까먹어야 하는데, 재미난 일을 하면서 돈을 벌면 돈도 벌고 적성도 살릴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세계일주라는 꿈은 훗날로 미뤄두고 직장에 충실한 삶을 살았지요. 

그러다 가끔 가슴에서 여행의 욕망이 타오를 때가 있어요. 2010년인가, 어느 출판사 편집자를 만났는데요. 이분이 여행을 정말 좋아하고 잘 다니시더라고요. 편집자도 프리랜서 비슷한 삶을 살기에, 몇달 열심히 일하고 물가가 저렴한 동남아로 여행을 다니는 거죠. 그때 여쭤봤어요. 이제껏 다니신 중에서 어디가 좋았나요? "라오스, 몽골, 미얀마요." "아, 그래요?"

그분의 추천으로 딸들을 데리고 2013년에 라오스랑 몽골 여행을 다녀왔어요. 정말 좋더라고요. 그 편집자가 제게 물었어요. "피디님이 다닌 곳 중에서는 어디가 좋았어요?" "저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유적군이 좋았어요." "아, 그렇다면 미얀마의 바간에 꼭 가보세요. 앙코르와트 못지 않게 많은 불탑이 있는 곳이거든요" "예? 그런 데가 있어요?"

가슴 한켠에 '미얀마 여행'이라는 버킷리스트가 생겼지요. 작년 10월에 베트남 여행갔다가 달랏에서 외국인 배낭족들을 만났는데요. 그들에게 인도차이나 반도 여행 중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냐니까 미얀마를 얘기하더라고요. 미얀마는 군부 쿠데타와 코로나 이후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문호를 걸어잠근 상태라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작년 여름부터 외국인 관광을 재개했다는 거예요. 앗싸! 드디어 오랜 꿈을 실현시킬 때로구나!

돌아와서 바로 인천-양곤 왕복 항공권부터 끊었어요. 겨울방학이 되면 3주간 장기여행을 가면 되겠다 싶었지요. 그런데 작년 연말에 심상치 않은 뉴스가 뜨는 거예요. '미얀마 국경 지역에 납치 감금된 한국인들이 풀려났다'고. 엥? 무슨 일이지? 아직 미얀마 국내 정세는 불안한 건가? 항공권을 취소하려고 했는데요, 알고보니 환불이 되지 않아 80만원 전액 날려야 한다고요. 피같은 내 돈... ㅠㅠ 그러다 그냥 결심했어요. '한번 가보자. 배낭 여행 경력 30년차로서 최대한 조심해서 다니자.'라고요.

무사히 잘 다녀왔습니다.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를 보고는 그 화려함에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황금불탑인데요. 여왕이 황금 40kg을 보시한 이후 역대 왕들이 앞다퉈 금을 기증하고 일반인들도 계속 보시해 지금처럼 거대한 황금사원이 됐다고 합니다. 금의 무게는 무려 60톤에 꼭대기에는 수천 캐럿의 다이아몬드들을 비롯한 보석으로 장식돼 있다고요. 세상에, 저게 다 진짜 금이라니, 놀랍네요.

물론 양곤보다 더 좋은 곳은...

바간이지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사원과 함께 세계 3대 불교유적지 중 하나인데요. 규모로는 단연 압도적입니다. 42평방킬로미터 지역 내에 불탑 2,400여 개가 있습니다. 보통 바간에 오면 열기구를 타고 저 수많은 불탑들을 하늘에서 관망하는데요. 가이드북에는 320달러라고 나오는데, 요즘은 130달러 우리돈으로 20만원 정도합니다. 저는 열기구는 안 탔어요.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해본 열기구 여행으로 이미 만족하고요.

대신 저는 자전거 여행 매니아이므로 우리돈 3천원에 자전거 한 대 종일 빌려서 다녔어요.

(20만원 내고 열기구를 타는 대신, 3천원에 자전거 여행하는 나, 짠돌이 만세!!! ^^) 

쉐지곤 파고다입니다. 정말 화려합니다.

이렇게 낡은 불탑 안에도...

어디나 불상을 모셔두었어요.

바간의 재래시장. 어릴 적에 본 시골장터 풍경입니다.

탓빈뉴 파고다. 장엄한 모습에 다시 감탄합니다.

파고다(불탑)의 유래를 보면, 부처가 열반 후 재가자들이 부처의 설법을 들을 수 없게 되자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사리탑에 더욱 경배하게 되면서 탑이자 사원인 파고다의 건축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나중에는 탑의 건축이나 경배가 재가자들에게 큰 공덕을 쌓는 것으로 여겨져 가속화되었다. 바간에선 천년 전 아노레타 시절 5,000기가 넘는 탑이 세워졌으나 지진과 전쟁으로 반 이상이 소멸되었다. 탑은 수행자들의 용맹정진과 절차탁마의 경지를 드러내는 가시적인 표상이 된 셈이다. 그러나 탑은 지난 시간의 기억을 축적해 놓은 집적물도, 우리 의식 속에 쌓아 온 삶의 세속적 흔적일 수도 없다. 탑은 깨달음을 향해 걷는 길 속의 길이다. 그러므로 수행자의 길은 막힌 벽 저 너머로 이어지는 불립의 공덕이자 낮은 곳을 향해 되돌아오는 텅 빈 빛남이다.

<미얀마, 깊고 푸른 밤 : 전성호 산문집 | 전성호>

미얀마에서 교민으로 살고 계시는 시인이 쓴 책인데요. 이번에 미얀마 여행하면서 현지 사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타바라 게이트, 벽돌로 쌓은 성의 입구입니다.

허물어진 성벽을 보면 벽돌을 촘촘하게 쌓은 건축법을 알 수 있어요. 한때 찬란했던 문명은 사라지고 고된 노동의 흔적만 남았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점심을 먹으러 미얀마 식당에 들어갔어요. 묘묘 미얀마 푸드 Myo Myo Myanmar Rice Food 냥우와 올드바간을 잇는 메인 도로 중간 비교적 분위기 좋은 곳에 위치한 곳인데요. 외관은 대단하지 않지만, 미얀마 내에서도 가장 맛있는 정식을 맛볼 수 있다고 가이드북에서 소개한 식당입니다.

정식을 주문하면 수많은 그릇에 담긴 미얀마 음식을 한 상 거하게 차려줍니다. 적당히 먹고 싶은 만큼 덜어서 먹는 식인데요. 가격은 먹은 양에 따라 달라진답니다. 저는 그날 우리 돈 1만2천원 정도를 냈는데요. 평소 미얀마에서 먹은 한끼 식사 값이 3~5천원 사이였던 걸 생각하면 무척 고급 식당인 거죠. 우리나라 전주 한상 차림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침에 탁발하는 승려들의 행렬... 가난한 이들이 더 가난한 수행자들을 위해 기꺼이 보시하는 모습은 감동적인데요. 의문이 계속 떠오릅니다. 분명 화려했던 문명을 자랑했던 나라이고, 한때는 세계 쌀수출 1위를 찍을 정도로 자연환경도 좋은 나라인데, 어떻게 21세기 들어 이렇게 가난해졌을까요? 

다음 편에서는 그 고민에 답을 해주는 책 한 권을 소개할게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