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돌이의 경제 공부

내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번다고?

김민식pd 2024. 3. 4. 05:35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제가 책을 읽는 방식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읽고 싶은 책들이 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납니다. 그러니 제가 활자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거지요. 괜찮아요. 어차피 무언가에 중독되어야 한다면 저는 독서 중독, 그중에서도 자기계발서 중독에 빠질 겁니다. 자기계발서를 읽다 보면 왠지 삶이 더 긍정적으로, 낙관적으로 변화하는 것 같거든요. 뉴스를 보면 기분이 우울해질 때도 있는 데도 말이지요. 

<더 마인드>라는 책을 쓴 ‘하와이 대저택’ 님이 데일 카네기를 좋아한다는 걸 보고 ‘음, 이 분 안목 있네?’ 싶었어요.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은 영업사원으로 고군분투하던 시절의 제게 복음서와 같은 책이었거든요. <더 마인드>를 읽다 저자가 좋아하는 자기계발의 대가 중에 존 소포릭이라는 낯선 이름을 만났어요. 모르는 저자를 만나면 일단 책을 한번 읽어봅니다. 존 소포릭의 <부자의 언어>라는 책을 읽었어요. 경제적 자유에 대한 우화인데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20대에 『좋아하는 일을 하라, 그러면 돈은 따라올 것이다 Do What You Love, the Money Will Follow』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은 내게 일이 주는 스트레스와 고난이 비정상적이고 불필요한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유사한 뜻으로 “너의 행복을 따르라” 혹은 “네 열정을 따르라”라는 말도 있다.

나의 문제는 이런 열정이 즐겁고 행복한 일에 대해 기대를 품게 했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 문제를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듯 보인다. 일에는 좌절이 따르는 게 당연하다는 걸 몰랐을 때, 매일 벌어지는 문제들이 히말라야 산처럼 느껴졌다. 저 유명한 책과 그 책에 등장하는 류의 사람들이 하는 조언은, 나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었을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조언이 위험하다고? 이 대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없을 테고, 열심히 하지도 않는 일에서 전문가가 되기란 쉽지 않은데? 그러다 문득 깨달았어요. ‘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마냥 쉽고 편하지는 않다는 이야기구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 즐거울 거라 생각하는 데요. 그렇지 않아요. 좋아하는 일로 직업을 삼기 위해서는 고난과 시련을 견뎌내야 합니다.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시절, 아시아태평양 본부 직원이 신제품을 소개하러 한국에 출장을 와요. 호주 전문가가 와서 대리점 직원들을 대상으로 영어로 세미나를 하는데요, 제가 통역을 했어요. 그러고 나면 대리점 직원들이 저를 보는 눈길이 달라져요. ‘야, 저 신입사원이 치과 원장 앞에서 늘 쩔쩔매는 세일즈 초보인 것 같더니 나름 능력자였네?’ 외판 영업은 힘든데 통역은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기회가 자주 오지는 않아요. 영업은 안 하고 매일 통역만 하고 살 수는 없을까?

회사를 다니며 통역대학원 입시반 수업을 들었어요. 저녁 6시면 칼퇴근을 하고 나가니 상사 눈치가 보이더군요. 영어 공부가 업무의 연장이라 생각하고 칼같이 학원으로 향했어요.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수업을 듣고, 주말에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고시생처럼 하루 15시간씩 공부를 했어요. 신기한 게 영어 공부는 아무리 해도 힘들지가 않더라고요. 공부가 적성에 맞구나 싶어 용기를 내어 사표를 던지고 입시 준비에 올인했지요.

월급을 모아둔 게 있어 2년 정도 버틸 수는 있었지만 만약 통대 입시에서 계속 떨어졌다면 지금 제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아요. 그때도 두렵긴 했거든요. 하지만 저는 두려움과 설렘이 동시에 찾아오면 설렘을 응원하는 사람입니다. 통역사로 일하는 모습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찼거든요.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우선 시장을 살펴봐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하고 싶어 하다면, 즉 공급자가 많다면 임금은 내려갑니다. 그 일이 너무 재미있어 심지어 돈 한푼 안 받고도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일을 하며 돈을 벌기란 더 어려워집니다. 1995년에 통역대학원 입시학원을 다니는 사람은 많았지만, 합격이 쉽지는 않았어요. 통대는 입학도 어렵지만, 졸업은 더 어렵습니다. 실력이 있는 통역사로 키워 시장에 내보내는 게 학교의 일이니까요. 만만치 않은 공부의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대신 경제적 보상은 확실했지요.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감내해야 할 고난과 시련이 있어요.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직업은 경쟁이 치열합니다. 누구나 다 재미난 일을 하고 싶어하지, 힘들고 폼 안 나는 일을 하기를 바라지는 않으니까요. 예능 피디라는 직업도 그래요. 잘 생기고 예쁜 연예인들과 매일 놀듯이 일하는 것 같지만 일단 방송사 입사도 쉽지 않고요. 매일 밤샘 촬영과 편집을 하며 폐인이 되어 갑니다. 제가 술 담배 커피를 멀리하며 사는 이유, 허구헌날 날밤을 새며 목숨을 팔아 돈을 버는 기분이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오래오래 계속하기 위해서는 건강 관리가 필수라고 느꼈지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만드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고요. 3가지 가능성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첫째는 지속가능성. 내가 좋아하는 일, 지속할 수 있는가? 여기에 중요한 요소는 돈입니다. 큰돈이 계속 투입되어야 가능한 일은 밑천이 바닥 나기에 지속가능하지 않거든요.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면 일단 저는 그 일을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봅니다. 가장 쉬운 건 독서입니다. 도서관에서 관련 주제에 대해 책을 읽으며 공부합니다. 통역이든, 연출이든, 글쓰기든, 일단 책부터 읽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건 돈 한 푼 안 들기에 지속가능한 노력입니다.

두 번째는 성장가능성.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꾸준히 계속하면서 조금씩 늘어야 합니다.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매일 확인할 수 있어야 해요. 영어 공부는 그래요. 매일 열 문장씩 외워나가면 나의 회화 실력은 조금씩 늘어나요. 미세하지만 매일 성장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지요. 힘들지만 꾸준히 할 수 있지요.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 해도 성장한다는 느낌이 없다면, 그 일을 직업으로 만들기 전에 지치기 쉽습니다.

세 번째는 확장가능성. 내가 좋아하는 일을 통해 내 삶의 영역을 넓힐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내가 좋아한다고 해도, 그 일을 통해 내 삶이 확장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협소해진다면 방향을 잘못 잡은 겁니다. 피디로 일하며 매일 아침 블로그에 글을 올렸어요. 7년간 매일 글을 쓰다 보니 어느 순간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로 베스트셀러 저자가 되었어요. 글쓰기 덕분에 내 삶이 피디에서 작가의 영역으로 확장된 거죠. 

진로 특강을 다니며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고 하면 미심쩍어하는 아이들도 있고, 반기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미심쩍어하는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세상이 내게 돈을 주지는 않을 거라는 진실을 눈치챈 거고, 마냥 반기는 아이들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사람들이 나한테 돈도 줄 거라는 순진한 착각에 빠진 겁니다. 괜찮아요. 거기가 시작입니다. 

게임을 좋아한다면, 그 일이 과연 지속가능한지(평생 게임만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지) 성장가능한지(평생 게임만 하는데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지) 확장가능한지(게임을 통해 내 삶의 영역이 점점 더 커져가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페이커의 경우, 가능했어요. 그는 프로 게이머라는 지속가능한 직업을 얻었고, 세계 최고 레벨의 플레이어로 성장했으며, 전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게 되었어요. 재능과 노력이 결부된 결과겠지요. 그냥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 직업으로 만들 수 있을까? 저는 독서, 영어 공부, 글쓰기의 도움을 얻었어요. 셋 다 간단하고 쉽지는 않았어요. 1년 동안 200권의 책을 읽거나, 6개월에 영어책 한 권을 외우거나, 10년간 매일 블로그에 글을 써야 했거든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거예요. 아마 한 10권 읽다 포기하고, 회화책 앞부분만 보다 말고, 6개월째 블로그 방문자 50명일 때 접었겠지요. 다행히 셋 다 제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계속 밀고 나간 겁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건 인생의 결과가 아니라 시작이자 과정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계속하며 온갖 고난과 시련을 견뎌낸 결과 자신이 즐기는 일로 돈을 벌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만드시겠습니까?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 그게 인생입니다.     

짠돌이의 경제 공부,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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