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돌이 독서 일기

카프카의 변신 이야기

김민식pd 2024. 1. 29. 05:15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을 소개하는 팟캐스트 & 유튜브 <내가 빌린 책>에서 제가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는 구독 서비스가 있어요. 바로 크레마 클럽. 전자책 대여 서비스라 여행 중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바로 찾아봅니다. 

프라하는 카프카의 도시입니다. 문득 카프카의 소설을 읽고 싶어 크레마 클럽에서 찾아보니 <변신>이 있더군요.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침대에서 흉측한 모습의 한 마리 갑충으로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

<변신 - 열린책들 세계문학 010> (프란츠 카프카)

엄청 유명한 도입부지요. 자고 일어나니 사람이 벌레가 되어 있더라?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주인공은 출장 영업 사원으로 일합니다. 이렇게 탄식해요.

‘〈아아, 원 세상에〉 그는 생각했다. 〈어쩌다가 이런 고달픈 직업을 택했단 말인가! 날이면 날마다 여행이나 다녀야 하다니.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것보다 업무상 스트레스가 훨씬 더 심하다. 게다가 여행하다 보면 골치 아픈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기차를 제대로 갈아타려고 신경 써야 하는 일, 불규칙하고 형편없는 식사, 상대가 늘 바뀌는 탓에 결코 지속될 수도 없고 진실해질 수도 없는 만남 따위들. 이 모든 것을 왜 악마가 잡아 가지 않는지 모르겠다!〉’

20대에 외판 영업 사원으로 일하던 시절, 깨달았어요. 영업 사원에게는 마음 편한 곳이 단 하나도 없구나.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눈치가 보입니다. 바깥에 나가 물건 팔지 않고 왜 앉아 있는 거야? 영업을 나가도 눈치가 보입니다. 왜 바빠 죽겠는데 와서 귀찮게 하는 거야? 대리점 사무실에 놀러 가도 눈치가 보입니다. 지난 달에 물량 많이 빼줬는데 왜 또 와서 저러는 거야? 역설적으로 영어 학원에서 수업 받을 때 제일 마음이 편했어요. 마음껏 영어로 잘 난 척할 수 있으니까. ^^

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깨달은 그레고르의 첫 반응은 ‘과로와 스트레스 탓인가?’인데요. 자고 일어나니 사람이 벌레로 변했다는 게 예전에 읽었을 땐 황당한 전개라고 생각했는데요. 살아보니 인생에 대한 정확한 은유입니다. 자고 일어나니 급식충, 한남충, 맘충이 되어 있는 세상이잖아요. 요즘은 누구나 손쉽게 벌레 취급을 받습니다. 혐오와 조롱이 난무하는 온라인 세상의 비극이지요.

카프카라는 작가의 위대함은 유대인이라는 그의 소수자성에서 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프라하의 유대인은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어요. 옹기종기 모여 잘 사는데 갑자기 합스부르크 제국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추방령을 내려 쫓겨날 위기에 처하고요. 그 아들 요제프가 선처를 내려 근근히 살아갑니다. 나치가 체코를 합방한 후에는 정답던 이웃과 동료가 갑자기 유대인 학살의 공범이 되어버립니다. 사람이 갑자기 벌레가 되지는 않지만, 어느 날 갑자기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주인공이 처음부터 출장 영업 사원이었던 건 아닙니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면서 갑자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게 됩니다. 

‘그 당시 그레고르가 걱정한 유일한 관심사는 있는 힘을 다해, 온 가족을 완전히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그 불행한 일을 식구들이 되도록 빨리 잊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때 눈코 뜰 새 없이 열심히 일하기 시작하여 거의 하룻밤 사이에 말단 직원에서 일약 출장 영업 사원으로 승진하게 되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전혀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즉 계약이 성사되면 수수료 조로 당장 현금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 현금을 식탁에 올려놓으면 식구들은 입을 떡 벌리며 행복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정말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그레고르가 온 가족의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가 되고, 또 실제로도 돈을 많이 벌어 생계를 감당하게 되자, 적어도 이렇게 찬란한 모습은 그 뒤로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았다. 가족뿐만 아니라 그레고르도 사실 그런 것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었다. 식구들은 그레고르가 벌어다 준 돈을 받으며 고마워했고 그는 그 돈을 흔쾌히 내놓았지만, 서로 간에 이렇다 할 따스한 정 같은 것은 더 이상 오가지 않았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죽도록 일만 하다 어느날 벌레가 되어버린 사람의 이야기. 카프카는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낸 걸까요?

카프카의 아버지는 카프카를 법관으로 키울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법학 박사 학위까지 받지만, 그는 법관이나 변호사가 될 생각은 없었고요. 평생 보험 회사에서 법률 고문으로 일하고 퇴근 후에는 글을 썼어요. 그렇다고 그가 작가로서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닙니다.

‘카프카는 평생 불행하게 지냈다. 프라하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던 독일인에게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같은 유대인들로부터는 시온주의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배척받았다. 생전에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를 꺼렸으며, 발표된 작품들도 대중의 몰이해 속에 거의 팔리지도 않았다.

카프카의 인생을 생각하니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볼 때보다 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독일어를 쓰는 프라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카프카는 평생 불운과 고독에 짓눌리며 살았다. 육식동물 스타일의 자수성가한 사업가였던 아버지는 소심하고 예민한 아들을 불신하고 멸시했다. 어머니는 남편의 사업을 돕느라고 집에 없었다. 어린 시절 두 살 터울 남동생 둘이 병으로 죽었다. 누이 셋은 후일 나치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카프카는 문학과 예술에 마음이 끌렸지만 아버지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법학을 공부했다. 낮에는 보험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글을 썼다. 몇몇 여인과 사귀었으나 누구와도 혼인하지 못했다. 독일인은 유대인이라고, 유대인은 시온주의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그를 배척했다. 몇 작품을 출간했지만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고 책이 팔리지도 않았다. 편두통·불면증·우울증을 달고 살다가 결핵에 걸렸고, 빈 근교의 요양원에서 외롭게 죽었다. 몸은 프라하 유대인 묘지에 묻혔다. 한때 연인이었던 도라 디아만트에게 맡긴 원고와 편지는 나치 비밀경찰이 빼앗아 없애버렸다. 전기작가이자 절친이었던 막스 브로트가 카프카의 글을 출간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유럽도시기행 2 : 빈, 부다페스트, 프라하, 드레스덴> (유시민)

유시민 작가님의 카프카 소개글을 읽고 다시 <변신>을 읽었습니다. 주인공의 처지에 심하게 공감하며 소설을 읽었어요. 카프카의 외로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프라하,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에 그렇게 슬픈 사람의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비록 불행한 카프카였지만,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행복했을 거라 믿습니다. 그렇기에 그토록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거지요. 누군가 나를 인정해줘서 작가가 되는 게 아니라, 매일 글을 쓰는 열정을 지닌 순간, 그는 작가가 됩니다. 남 눈에 벌레로 비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스스로 존엄을 잃지 않고 사는 것처럼요.

늘 삶을 향한 열정과 자신을 향한 존엄이 함께 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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