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식pd 2024. 1. 26. 05:40

쿠바든, 유럽이든, 동남아든 저는 늘 혼자 자유여행을 다닙니다. 책을 통해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찾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이 고플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인터넷에서 free walking tour를 검색해봅니다. 프라하에서도 신청했어요. 메일로 모이는 곳과 시간 고지가 날아옵니다.

가보면 프리 워킹 투어라고 적힌 파란 우산을 든 가이드가 기다려요.

프라하는 워낙 유명 관광지라 투어 상품도 다양하고요. 저는 그중에서 올드 타운 시내 투어를 선택했어요. 

보통 2~3시간 정도 진행되고요. 무료이긴 하지만 다 듣고 난 후 가이드에게 팁을 줍니다.  

천문 시계탑의 작동 원리를 설명해줍니다. 혼자 가서 보는 것과 설명을 듣고 보는 건 또 달라요.

전세계에서 온 다국적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영어로 투어를 진행하는데요.

그날의 가이드는 벨라루스에서 온 분이었어요. 보수적인 분위기의 벨라루스가 싫어서 스무살이 되자 가족들에게 "난 프라하로 갈 거야!"라고 선언하고는 혼자 체코로 유학을 왔다고요. 대학원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취업에 성공했으나 하필 그때 코로나가 터집니다. 실업자가 되고요. 아이를 기르면서 적은 시간 일하고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가이드 일을 시작해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2시간 일을 하며 돈을 번다고요. 역시 어디든 이주노동자가 참 부지런합니다. 

프라하란 도시를 사랑하는 분이었어요. 우리에게도 "프라하로 이민 오세요. 여긴 물가가 저렴해 다른 유럽의 도시보다 살만하고요. 체코의 경제는 계속 발전중이기에 일의 기회도 많아요."라고 권했어요.

흔히 프라하의 구도심이 이렇게 중세 시절의 모습을 유지하는 건 세계대전 중에 폭격을 받지 않은 유일한 유럽의 수도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2차 대전 중에 실은 폭격이 딱 두번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미군의 오인 폭격이었다고요. 드레스덴을 공격하러 가던 공군비행기가 엉뚱한 곳에 폭탄을 떨어뜨린 거지요. 
Gps가 없던 시절이에요. 항공사진으로 목표물 판별해야 하는데요. 프라하의 기차역을 보고 "드레스덴이다. 폭탄 투하 개시!" 라고 했다가 잠시 후 구불구불한 블타바 강이 나타난 걸 보고 중지 명령을 내렸다고요. 그래서 딱 한 발만 떨어졌답니다. 

광장에는 얀 후스의 동상이 있습니다. 체코 독립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라고요. 유시민 선생님의 책에도 나오는 분입니다.

'나는 얀 후스를 존경한다. 후스를 모른다고 해서 프라하 여행에 지장이 생기진 않지만 알면 프라하의 공간과 체코 사람들의 정서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 고등학생 시절 세계사 교과서에서 얀 후스(Jan Hus, 1372-1415)라는 ‘종교개혁가’의 이름을 처음 보았다. 그렇지만 후스가 그저 종교개혁가로서 프라하의 광장에 서 있는 건 아니다. 후스의 동상은 보헤미아 민족주의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민중의 열망을 담고 있다. 그는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았고 죽음 앞에서도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럴 의도가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의 삶과 죽음은 보헤미아와 유럽의 역사를 바꾸었다.

보헤미아 시골에서 태어나 프라하대학교에서 공부하고 모교의 교수가 되었을 때만 해도 얀 후스는 적당히 인생을 즐기는 남자였을 뿐이다. 교수보다 살기 편해 보여서 가톨릭 사제가 되었다. 그 선택이 자신의 인생과 보헤미아 역사를 바꾸리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다. 그는 프라하 시내의 베틀레헴 예배당에서 설교했는데 여러 면에서 남달랐다. 무엇보다도, 종교 의전에서 라틴어를 쓰라는 로마 교황청의 지침을 무시하고 체코 말로 설교했다. 신자들이 알아들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설교 내용도 교황청을 화나게 했다. 그는 믿음의 근거를 교회가 아니라 성서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교회와 사제들의 범죄행위와 부정부패를 가차 없이 비판했다.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비난한 것이 특히 큰 문제를 일으켰다. 교황청은 후스를 눈엣가시로 여겼지만, 교황청과 세속권력의 착취와 억압에 신음하던 보헤미아 민중은 그를 정신적인 지도자로 받아들였다. 보헤미아에 ‘후스전쟁’의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

<유럽도시기행 2 : 빈, 부다페스트, 프라하, 드레스덴> (유시민)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프라하 올드 타운 곳곳을 누빕니다. 큐비즘의 영향을 받은 카페 건물도 보고요.

어떤 교회에도 들어갔는데요. 가이드북에도 안 나오는 곳이라 구글 지도에서 이름을 찾아봤어요. <Basilica of St. James> 가이드 생각엔 프라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라고요. 

유대인 거리로 가는 길에 프란츠 카프카의 동상을 만났어요. 

카프카 이야기는 소설 <변신>의 리뷰에서 다시 만나요~ 

프라하 워킹 투어의 마지막은 유대인 거주지역인 요제포프 지구입니다. 유대인을 너그럽게 대했던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들 요제프 2세(재위 1765~1790)를 기리는 뜻에서 ‘요제포프’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지금은 유대인 예배당이 여럿 남아있는데요. 

가장 인상 깊은 곳은 ‘신구(新舊)시너고그(Staronová synagoga)’라는 예배당. 13세기에 초기 고딕 양식으로 지은 이 시너고그는 유럽에 남아 있는 유대 예배당 중에서 제일 오래되었다고요. 여러 차례의 화재와 박해·추방·재개발·나치 점령 등의 시련을 견디고 살아남았어요. 나치가 유대인 절멸을 기념하는 박물관으로 쓸 심산으로 이 건물을 남겨두었다는 말도 있는데요.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사실이 아니라네요. 당시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보내면서 빼앗은 물자는 예배당에 모아뒀대요. 전리품 창고로 썼기 때문에 굳이 파괴할 이유가 없었던 거죠.

아름다운 풍광 뒤로 아픈 역사도 많은 곳인데요. 프라하는 걸어 다니며 여행하기 참 좋은 도시예요. 프라하에서 사는 주민의 이야기로 프라하를 경험하고 싶다면 꼭 한번 신청해보시기 바랍니다. 

Free walking tour in Pra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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