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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을 봤습니다. 


스필버그 감독의 오랜 팬입니다. '죠스'부터 시작해서 '인디아나 존스'와 '주라기 공원' 등 다 좋아해요. 그가 TV 영화 'Duel'로 데뷔한게 1971년이니, 제가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동안, 이 분은 영화를 만들며 살아온 겁니다. 


스필버그를 좋아하는 건, 그가 만든 영화가 다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1편보다 2편이 더 재미난 드문 케이스였지요.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게 반한 것도 같은 이유에요. 터미네이터 1탄보다 2탄이 대박이었어요. 감독의 역량이 날로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영화. 재미난 영화를 만들던 스필버그가 어느 순간부터 의미있는 작품을 연출하더군요. '쉰들러 리스트'나 '칼라 퍼플'같은 영화로 아카데미 후보에도 오르고요.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 개봉하기 한달 전에는 ' 포스트'가 개봉했어요.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이지요. 한 감독이 동시에 2개의 영화를 촬영하다니, 노장 스필버그의 왕성한 열정과 생산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스필버그 감독은 재미와 의미를 함부로 섞지 않습니다. 어설프게 재미와 의미를 다 추구하다, 코미디가 신파로 끝나기도 하고, 감동의 몰입이 깨지기도 하는데요. 스필버그는 아예 재미를 위한 영화와 감동을 위한 영화를 따로 만들면서 이런 우려를 깹니다.


'더 포스트'가 의미를 주는 영화라면, '레디 플레이어원'은 오로지 재미에 집중한 영화에요. 그렇다고 '레디 플레이어 원'이 엄청 재미있다... 뭐, 그런 얘기는 아닙니다. 보는 재미는 살짝 떨어집니다. 보다가 중간에 살짝 졸았어요. 영화를 보다 졸리면 그냥 잡니다. 억지로 졸음을 참고 보면 힘들더라고요. 졸리면 차라리 살짝 졸았다가 다시 봐요. 개운한 머리로 후반에 집중하려고. ^^ 주로 영화를 혼자 보니까 그런 거죠. 옛날에 데이트 영화를 볼 때는 긴장이 살아있었는데, 나도 나이가 들었나, 극장에서 자꾸 조네요. 희한하게도, 제가 보면서 조는 영화는 다 블록버스터 SF 액션무비들이에요. 트랜스포머가 특히 그렇지요. 자다 깨서 봐도 줄거리 이해에 지장이 전혀 없어요. 스토리에 대단한 반전이 있는 게 아닌지라... ^^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며 반가웠던 장면들, 공포영화 '샤이닝', '아이언 자이언트', '건담'이 나오는 장면들이었어요. 이 영화는 8,90년대 문화의 아이콘을 화면 위에 소환합니다. 저같은 중년의 덕후에겐 딱이지요. 덕후에 의한, 덕후를 위한, 덕후의 영화에요. 덕후가 만드는 영화는 호불호가 좀 갈립니다. 덕후는 만드는 자신의 재미에 집중하느라 타인의 재미를 배려하지 못할 때가 있거든요. 덕후로서 만드는 재미와 대중들의 보는 재미 사이에 어떻게 절충안을 찾을 것인가, 그게 고민입니다. 


가상현실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화려하지만 긴장감이 떨어집니다. 게임 속에서 죽어도 게임기만 벗어던지면 현실에서 다시 살아나니까요. 스릴이 없어요. 플라스틱으로 된 상어 모형으로 긴장감을 조성하던 '죠스'가 그립습니다. 조악한 모형이 드러날까봐 상어의 모습은 최대한 숨기고 시선 컷과 물결의 움직임으로 긴장감을 만들어내던 그 시절이 그리워요. 인디아나 존스의 아날로그 액션이 그리워지는군요.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어니스트 클라인은 '팬보이즈'의 시나리오 작가에요. '팬보이즈'는 스타워즈 덕후 헌정 영화입니다. 1980년대 스타워즈 4,5,6편의 개봉과 함께 고교 시절을 보낸 세 남자가 있어요. 그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스타워즈 덕후로 삽니다. 어느날 조지 루카스가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를 만든다는 소식을 내놓는데요. 한 친구가 시한부 판정을 받습니다. 에피소드 1 개봉때까지 살기 힘들 수도 있다는 진단에 친구들을 찾아갑니다. '나, 에피소드 1은 꼭 보고 죽고 싶다.' 3명의 덕후는 조지 루카스가 촬영본을 편집하고 있다는 스카이워커 랜치로 길을 떠납니다. 어떻게든 편집본을 훔쳐보겠다는 일념으로...



'진짜 팬은 줄 서서 기다리지 않는다' 라는 카피가 눈에 들어옵니다. 저는 이 카피를 다른 식으로 해석해요. 진짜 팬은 관객의 자리에 머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창작자가 된다고 생각해요. 어니스트 클라인도 그렇듯이, 어려서부터 무언가 미친듯이 좋아하다 그것을 일로 만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레디 플레이어 원>속의 세상이 그래요. 게임을 하는 건지, 일을 하는 건지, 구분할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저도 헷갈립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는 게 일인지 놀이인지 공부인지. ^^


기왕에 놀아야한다면 열심히 놀고 싶어요. 

놀이가 일이 되는 덕후의 경지를 꿈꿉니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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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남매두기 2018.04.10 09: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영화 관람할려다가 제 관심 분야 밖이라 남편과 아들 둘이 관람한 영화였어요.
    "기왕에 놀아야한다면 열심히 놀고 싶어요"
    놀이든, 공부든, 일이든, 그리고 하고싶은 취미든...
    뭐든 열심히 즐기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2. 섭섭이짱 2018.04.10 10: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피디님은 이미 보신 줄 알았어요. 이 영화 본다고 생각만하고 못 봤는데 이번 주말에는 보러 가야겠어요. ^^
    전 아직 어린데 극장가면 왜 이리 자꾸 졸음이 오는지.. 같이 가신분 한테 맨날 혼나네요. ㅋㅋㅋ

    어려서부터 무언가 미친듯이 좋아한것은 없었는데, 성인 되고보니 더 놀고 싶고, 더 하고 싶은게 많아졌네요. 아직 덕후의 경지는 아니지만 이제 놀때는 열심히 놀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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