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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1.09 짝퉁 나이키에 얽힌 추억 (7)

제가 공짜로 세상을 즐기는 짠돌이가 된 이유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저를, 끝끝내 이과로 돌려세우며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이 있어요. “니가 내가 벌어주는 돈 받고 살려면 내가 하는 말을 들어야지.” 대학에 들어가자 입주 과외부터 시작해서 열심히 돈을 모았습니다. 정신적 독립을 위해서는 경제적 자립이 우선이니까요. 돈 아끼느라 헤지고 구멍 난 짝퉁 나이키를 신고 다녔는데요, 대학 3학년 때 쓴 민시기의 글밭에 그 이야기가 나오네요.

 

712

- 비 억수로 오다

 

투두두다다다

공습 경보 없이

총탄치는 빗발

꼼짝없이 당하다.

집중 사격의 화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동심원의 격렬한 파문 속에

서서히 침수되어 가는

265문 급 잠수함

가리지날 나이키

내 만 원 짜리 운동화

갑판 좌우현 각 다섯의 수병

내 예쁜 열발가락

속절없이 잠겨간다.

승리의 여신(Nike ; 니케)

허명을 돌보지 않는다, 제군들

또 빗발에 굴절되는

잠망경 밖 저 세상에

무슨 희망이 있으랴.

수면까지 부상해 본들

보도블록에 상륙해 본들

꼬르르 쿨쿨쿨

외부 수압과

세월의 침식을 이기지 못하고

난파해가는 51kg급 항공 모함 민시기

강우량 150mm의 도심 속으로

침몰해 간다.

구조 요청, 택도 없다.

 

결핍은 글감이 됩니다. 낡고 헤진 운동화가 글의 소재가 되듯, 결핍과 핍박은 글의 좋은 재료가 됩니다. 아무것도 없다면, 청빈낙도의 삶을 즐기는 선비처럼 살아도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나 봐요. 나이가 들수록 욕심이 늘어나는데요, 스무 살에 쓴 글을 보며, 다시 욕심을 줄여봅니다. 비가 새지 않는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것만 해도 큰 행복이네요. 그나저나 그 시절에는 몸무게가 51킬로였군요. 결혼하고 살면서 철은 안 들고, 몸만 불었네요. ^^

 

민시기의 글밭을 보면서 흐뭇하게 혼자 웃고 있어요. 언젠가는 70대의 내가, 오늘 나이 50에 쓴 블로그를 보며 또 싱긋이 웃게 될 날이 오겠지요? 그때는 아마 지금 이 순간이 무척 부러울 거예요. 그러니 오늘도 열심히, 즐겁게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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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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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1.09 0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섭섭이 2017.11.09 09: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265문 급 잠수함과 51kg급 항공 모함 ‘민시기’ ... 표현이 재미있네요. ^^ 이 내용을 지금 상황에 맞게 다시 보면 이렇게 바꿔보고 싶네요.

    난파해가는 MBC를 구해낸 51kg급 거대 항공 모함 ‘민시기’

    어제 PD님 글보고 예전 초등학교때 일기장을 보며 혼자 끼득끼득 웃었네요. 저도 나중에 PD님 블로그에 쓴 댓글 보며 웃게 될 날이 오겠죠.^^

    #재철이를_구속해라
    #은총많이_받게해라
    #김장겸_고대영을_몰아내고
    #MBC,KBS를_되살리자
    #짧고_굵고_화끈하게

  3. 게리롭 2017.11.09 09: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의 긍적적이고 유쾌하게 삶을 바라보는 자세는
    언제나 다시봐도 본받고 싶은 점입니다.
    글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기분좋아지는 글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4. 아리아리 2017.11.09 09: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pd님, 아리아리!
    피디님 20대의 글 읽으니 입가에 미소가 절로 잡힙니다. 참신하고 기발한 젊은이의 삶에 대한관조!
    그시대 우리들 대부분은 결핍과 익숙했지만, 스스로를 비참해 하지 않았고,그래도 미래에대한 희망으로 가슴 설렘이 있었는데, 지금 20대는 나이키쯤은 쉽게 신을수 있지만 미래에대한 불안함으로열패감에 젖은 그마음의 깊이는 더 깊어진듯해요.
    빈부격차는 더 벌어지고, 보이지 않는 계급서열화는 더 뚜렷해지고,계층간 사다리의 실종이 더욱더 젊은이들을 절망케하는 현실에 기성세대의 책임감을 통감합니다. 해방후 권력자와 가진자가 지배했던사회는 크게 개선된 행복한 사회를 만들지 못하고 간극을 더벌어지게 했으니, 이제는 우리 평범한 시민인 민초들의 작은 힘들을 모아 더불어 행복하고 함께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야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깨어있어야하고,우리 목소리를 낼수 있도록 공정언론의 역활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느껴요!
    언론인이 진실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수 있는
    그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사필귀정 김장겸 OUT!

  5. Likbluesky 2017.11.09 18: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참 재밌습니다.. 제게도 글읽기와 쓰기의 즐거움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6. pkj1220 2017.11.09 22: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피디님
    참,멋진 분예요...^^

  7. 지망생 2018.02.24 0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소에 이런 글을 쓰셨는데 정말 '작문 시험쯤이야'싶습니다. 마음이 궁지에 몰리면 글도 어두워지던데 어떻게 저리 밝고 재치있는 표현들을 생각하신건지요. 또 한번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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