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올린 <로봇의 부상> 후일담입니다.

2017/03/28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로봇의 부상', 그 이후의 세상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요? 앞으로 우리는 '노는 인간'이 되지 않을까요?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육체 노동과 정신 노동 모두 기계와 컴퓨터가 대신하는 시대가 올 테니까요. 생산 활동은 기계에게 맡기고 우리는 창의적 유희를 즐기며 살면 어떨까요?


'함부로 상상하지 말라. 상상하는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영화 카피가 있지요? 앞으로는 '정보 기술의 유례없는 파괴적 힘' 때문에 이전의 산업 혁명과는 다른 양상의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인공지능의 시대, 어떤 일자리가 살아남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합니다. 변화를 예측하기 힘드니까요. 오히려 '일자리를 인공지능과 로봇이 가져간다면 우리는 무엇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인가?'를 고민해야할 것 같습니다.

 

<로봇의 부상>을 읽으면서 연신 그 유려한 번역에 감탄했어요. 책을 번역한 이창희 선생님은 외대 통역대학원 재학 시절, 저의 은사입니다. 저는 선생님의 번역 작업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어요. 선생님은 당시 통역대학원 교수로 일하면서 여러 편의 기술서적을 번역하셨어요. 새로운 책을 번역하실 때는 통역대학원 학생 중 조수를 구하기도 하셨어요.

1996년 당시 선생님의 번역 작업을 도와드린 적이 있어요. 약속한 시간에 선생님의 집에 찾아갑니다. 서재에는 PC가 있어요. 제가 키보드 앞에 앉으면 선생님이 영어 원서를 앞에 펼쳐놓고 읽기 시작합니다. 한 문단을 읽고는 눈을 떼고 방금 읽은 문장을 순차 통역하듯 말로 합니다.

책의 문장을 보면서 번역을 하면 영어식 순서에 얽매여 직역하기 쉽다고 하셨어요. 고개를 들어 우리말로 옮겨야 글이 자연스럽다고 하셨지요선생님이니까 가능한 방식입니다. 선생님은 기억력이 정말 뛰어나거든요. 선생님이 구술하는 내용을 제가 키보드로 입력했지요. 저의 역할은 원서를 보면서 선생님이 빠트린 내용이나 내 생각과 좀 다른 부분이 있으면 의견을 내는 것이었어요. 당시 저는 학생들 중에서 우리말을 잘 한다는 평가를 들었어요. (통역대학원에서 영어보다 국어 실력으로 인정받는.) 그래서 조심스레 더 자연스러운 우리말 표현이 있으면 의견을 말씀드렸지요. 흔쾌히 받아들여주실 때도 있고요. “오케이 그 표현도 좋겠네.” 고개를 갸우뚱 하실 때도 있어요. “그건 너무 번역자의 의도가 들어간 해석이 아닐까? 저자의 의도에 대해 반역이 될 수도 있을 듯.”

선생님 옆에 앉아 PC 입력하는 작업은 아르바이트라기보다 귀한 공부였습니다. 1995년 당시 시간당 5만원의 일당을 받았는데, 하루 반나절 4~5시간 일을 하고 20만원에서 30만원을 받았지요. 당시 통역사 기본 수당이 시간당 5만원이었거든요. 생각해보면 하는 일에 비해 정말 많은 돈을 받은 셈이었어요.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번역의 속도가 빨라지고 (거의 동시통역하듯이 하시니까요.) 옆에 앉은 조수가 빠진 부분을 확인해주니 작업이 수월했던 거지요. 번역 일을 많이 하셔서 손목이나 어깨가 아파 고생하신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타자를 학생에게 맡기니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아 좋고요. 나중에 제가 직접 출판사에서 번역의뢰를 받아 해보고 알았어요. 선생님이 번역료의 상당액을 조수로 일하는 학생에게 주셨다는 것을. 선생님 옆에서 번역 수업을 11로 받으면서 돈까지 벌었으니 당시로선 최고의 꿀알바였습니다.

그 알바는 궁극적으로 제가 통역사란 직업을 그만두고 PD가 된 계기가 되었어요. ‘선생님이 말로 불러주면 타자를 치는 게 내 일인데, 언젠가는 저걸 대신하는 기계가 나오지 않을까?’ 스타트렉 같은 SF 영화를 보면 컴퓨터에게 말로 지시를 내리잖아요? ‘음성 인식 기술이 발달하면 이런 일자리는 사라지겠는데?’ 기계가 대신하기 힘든 직업을 찾다 PD로 오게 되었습니다. 아마존의 음성 비서 알렉사’, 한국에서 나온 기가지니누구등의 음성 비서 서비스 등을 보니 음성 인식 기술의 발달이 놀랍네요. 곧 비서의 역할을 인공지능이 대신하는 시대가 올 것 같습니다. 제가 그렸던 미래가 지금의 현실이 되었네요. 문득 이창희 선생님이 요즘은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시리'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문서로 작업해줘. , 그리고 여기 원문에 나와 있는 핵융합기술에 대해 자료 검색 좀 해줘. 작업하는 동안 음악은 비틀즈 음반 애비 로드를 틀어주고. 안방 TV는 좀 꺼줄래?”

 

자동 번역 프로그램이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어요. 이창희 선생님의 번역은 확실히 달라요. 알렉사 등의 인공지능 비서의 도움을 받는다면, 오래 일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장시간 앉아서 키보드 작업을 하다보면 디스크나 손목 염좌가 와서 힘들 때도 있는데요. 그걸 인공지능 비서에게 맡기면 되니까요. 저는 지금 이 문서를 쓰기위해 동네 도서관 디지털 자료실에 앉아 30분에 한 번씩 허리를 돌리고 손목을 털어주며 일하는데요. 앞으로 5년 후에는 좀 더 편안하게 일할 것을 상상해봅니다. 발리 쿠타 비치의 한적한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책을 읽다가 문득 시리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티스토리에 새 문서 작성으로 적어봐.’ 할 것 같아요. 타이핑은 인공지능에게 시키고 저는 생각을 소리 내어 말만 하는 거지요. <로봇의 부상>을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아요.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냉정한 눈으로 보면서도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는 밝은 희망을 꿈꿀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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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글쓰기를 잘 하는 것이 제 오랜 소망입니다. 그래서 이 분야의 고수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사는데요, 그중 한 분이 기생충학자 서민 선생님입니다. 압도적인 비주얼로 자학 개그의 새 지평을 여신 분이지요. 저의 경우, 어설프게 못생긴 탓에 그렇게 나쁜 외모가 아닌데 왜 자꾸 그러시나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세상에 천사가 있다는 증명이지요. 저는 물론 세상에 천사가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예전에 저를 만나준 여자 친구들은 다 천사였거든요. (그렇지 않다면 저처럼 생긴 남자를 왜 만나겠습니까...^^)

 

서민 선생님의 인터뷰가 참여연대 소식지인 참여사회에 실렸는데요, 읽으면서 크게 공감하는 대목이 많았어요. 우선 선생님은 글쓰기의 보람이 타인의 인정이라고 하셨어요. 자존감이 낮아서 다른 사람이 자신의 글을 칭찬하면 희열을 느끼신다고. 저도 그렇거든요.

 

'의대 들어간 뒤 문화적 충격을 받았는데요. 나보다 못생긴 애들이 몇 명 보이더라고요. 지금까지 안 죽고 살아남은 게 기적이다 싶은 애들이 있더라고요. 제가 가서 너는 혹시 못 생겨서 죽고 싶은 마음은 없었냐?’ 물었더니 그런 게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걔네들은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더라고요. 한 가지라도 잘하는 게 있으면 죽고 싶지 않은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게 없어서 힘들었습니다. 고교 때부터 공부를 좀 했는데, 중학교 때까지 죽고 싶었습니다. 요즘 내가 사는 보람이 글쓰기입니다.'

(아래 인터뷰 중에서)

 

이 말씀에 확 공감했어요. 저도 고등학교 때까지 죽고 싶었어요. 연애도 안 되고, 거울을 보면 우울하기만 하고, 대학 1,2학년 때는 미팅 소개팅 과팅 나가서 스무 번 연속 차이고. 제 인생에 찾아온 첫번째 반전이 영어 공부였어요. 방위병 입대해서 영어 책을 외운 후, 자신감을 찾았어요. ‘한 가지라도 잘하는 게 있으면 죽고 싶지 않다.’ 정말 공감하는 말씀입니다.

 

어려서 공부를 잘 하지 못해서 괴로웠다면 어른이 되면 잘 할 수 있는 걸 새로 만들 수 있어요. 노래방 가서 춤 잘 추고 노래 잘 하는 것도 특기가 됩니다. 결혼 전, 아내가 저를 친구들 모임에 데려가 소개를 시켜요. 그럼 친구들 표정이 떨떠름하지요. ‘자존감이 낮은 아이가 아닌데 어쩌다 저런 남자를 골랐을까.’ 다음부터 아내는 친구들과 노래방에 갈 때 저를 불러요. 가서 한번 신나게 놀아드립니다. 랩하고 춤추고 개그도 하고 열심히 웃겨드려요. 그제야 분위기가 좀 풀리지요. ‘, 나름 서비스마인드는 있는 남자구나.’ 하고요.

 

열심히 살고 싶어요. 저처럼 생긴 사람이 노력도 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거든요. 오늘도 서민 선생님께 한 수 배웁니다. 아래 인터뷰를 읽어보시길, 강추합니다 

http://www.peoplepower21.org/Magazine/1508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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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요즘 영화 '공범자들' 관객과의 대화를 다닙니다. 영화를 본 후, 객석에서 많은 질문들이 나오는데요. 그중 가장 아픈 질문이 있어요.

'사장 하나 바뀌었다고 그렇게 조직이 망가지면, 그것도 문제 아닙니까?'

 

맞습니다. 저 역시 뼈저리게 반성하며 고민하는 대목입니다. 같은 고민을 동료 피디들도 하고 있는데요, 김재영 피디가 연재하는 MBC 몰락 10년사에서 그 고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어요.

 

그들은 지난 10년 MBC를 어떻게 망가뜨렸는가, 2편의 글을 공유합니다.

 

MBC 몰락 10년사⑦ 블랙리스트 파문, MBC를 집어삼키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40100&artid=201708211405001#csidx482765f4e8c568ca2af23830da05da0

 

MBC몰락 10년사⑧]‘공범자’들의 놀이터 된 MBC 시사교양국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40100&artid=201708270929001#csidxd5ef81f141c21a8885782ad13304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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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블로그 초반에는 PD지망생들을 위한 지식 공유의 차원에서 글을 썼어요. 학생들을 만나 강의를 하면서 생긴 궁금증을 스스로 해소하기 위해 공부를 했지요. '좋은 피디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매스 미디어로 가는 길이 좁고 험난하다면, 소셜 미디어를 즐기면서 창작자의 자세를 길러보면 어떨까요? 신문사 기자가 아니라도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방송사 피디가 아니어도 유튜브나 팟캐스트를 통해 재미난 무언가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지난 봄, '나에게는 왜 드라마 연출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가?' 괴로워하다, 문득, '잠깐, MBC가 내게 기회를 주지 않으면,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학생들에게 늘 해온 충고를 나 스스로에게 적용시켜야하는 것 아닐가?' 

그래서 휴대폰을 들고 페이스북 라이브로 '김장겸은 물러나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피디 지망생들에게 해준 충고를 저 자신에게 적용한 것이지요. 

시사 교양 피디를 꿈꾸는 분들과 공유하고 싶은 글이 있습니다. 작년 여름에 소개한 바 있는 서정문 피디의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

'시사 교양 PD를 꿈꾸시나요?' 

https://brunch.co.kr/@whomoon/37

 

<피디수첩> 피디들이 지난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방송 사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제작거부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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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지난 번, ‘인생은 리액션이다는 글을 통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내게 일어나는 사건보다 그 사건에 대한 나의 반응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때로는 타인의 반응이 나를 움직이기도 합니다. 2015년 드라마 <여왕의 꽃> 야외 연출로 일할 당시, 많이 힘들었어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젊은 조연출이나 공동연출이 하는 연속극 야외 연출을 늦은 나이에 하려니 체력적으로 많이 딸리더군요. 6개월간 꾸준히 일주일에 며칠씩 밤을 새우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 제가 B팀 감독으로 일하는 것을 놓고 임원회의에서 말이 나왔어요. ‘왜 김민식이한테 일을 시켰나?’ ‘그 나이에, 그 경력에 B팀 감독으로 일하는 건 징계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제작인데? 이번 드라마 끝나면, 두 번 다시 드라마 연출 하지 못하게 하세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힘들었어요. 전장에서 밤을 새워 싸우고 있는데, 정작 등 뒤에 있는 아군 초소에서 내 뒤통수에 총구를 겨누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그때 PD교육원에서 ‘PD 글쓰기 캠프를 한다는 공지가 떴어요. 촬영 쉬는 날, 가서 글이나 좀 써야겠다 싶었어요. 힘들 때는 어디 틀어박혀 글을 쓰면 마음이 좀 풀리거든요. 당시 글쓰기 캠프의 주제는 나는 PD가 아니다.’였어요.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마음을 추스리고 글을 풀어갔습니다.

 

나는 PD가 아니다.

고등학교 진로특강에 가면 아이들이 꼭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PD님은 언제부터 PD가 꿈이었나요?”

참 답변하기 난감합니다. PD가 꿈이었던 적이 없거든요.

 

한양대 자원공학과를 나왔지만, 엔지니어가 되기 싫어 한국 3M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했고 2년 만에 퇴사한 후, 영어 통역사가 되기 위해 외대 통역대학원에 진학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직업은 없을까, 고민하다 MBCPD로 입사했고요. 싫증을 쉽게 내는 제게, MBC 예능국은 최고의 놀이터였습니다. 조연출 시절, 6개월마다 새로운 프로그램에 배정되었는데, 그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졌어요. 가요 쇼를 할 때는 가수, 연예 정보 프로그램을 할 때는 탤런트와 영화배우, 코미디를 할 때는 코미디언 등등. 우리 시대 가장 예쁜 여자, 가장 노래 잘 하는 사람, 가장 잘 웃기는 사람, 이런 이들을 만나는 직업. 이것이야말로 제가 바라던 꿈의 직업이었어요.

청춘 시트콤 뉴 논스톱으로 연출 데뷔하고, 제목 그대로 논스톱으로 2년 반 동안 계속 일일 시트콤을 만들었습니다. 방송 편수로 시트콤을 700편 넘게 만든 어느 날, 그 재미도 시들해지더군요. 새로운 게 뭐 없을까 고민하다 사내공모를 통해 드라마국으로 옮겼습니다. 나이 마흔에 드라마 PD로 전직하고 이듬해 내조의 여왕을 만들었지요.

예능이면 예능, 드라마면 드라마, 매번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기회를 주는 회사, 세상에 이렇게 고마운 조직이 다 있나, 하던 참에 어느 날 새로 출범하는 노조 집행부에서 편성제작부문 부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나 같은 날라리 딴따라에게 그런 제안이 온다는 게 좀 이상했지만, 고마운 회사를 위해 그 정도 봉사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덥석 맡았지요.

집행부로 일하던 20121, MBC 노조는 파업에 들어갔고, 저는 집회 프로그램의 총연출을 맡았습니다. 170일 동안 싸우면서 온갖 다양한 포맷의 집회 시위를 기획한 결과, 회사와 나라로부터 그 공을 인정받아 정직 6개월, 대기발령, 교육 발령, 구속영장 2회 청구, 징역2년 구형으로 이어지는 과분한 배려를 누렸습니다. 회사의 징계나 검찰 수사는 별로 괴롭지 않았습니다. 지난 3년간 가장 괴로웠던 것은 더 이상 연출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술 담배 커피 골프를 하지 않습니다.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코미디 연출이 이미 최고의 취미생활인데, 더 이상 어떤 즐거움이 필요하냐고 되물었어요. 방송을 만드는 게 삶의 낙이었던 내게, 회사는 더 이상 일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지금 내가 괴로운 것은 나의 나라 사랑, 회사 사랑이 지나친 탓이구나. PD라는 일에 대한 애정이 너무 컸기 때문이구나.’

 

회사에서 일을 시키지 않는 것이 내게 괴로움이 되는 이유는, 일을 하고 싶은 욕망이 너무 큰 탓입니다. 일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면, 괴로울 일이 없지요. 오히려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이용하여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여행을 다니며 자기계발에 힘쓰면 될 일을.

 

그래서 다시 마음먹었습니다.

나는 PD가 아니다.’

 

어려서 피디를 꿈꾼 적이 없습니다. 그냥 살다보니 피디가 된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피디로 살지 못한다고 괴로울 일도 없어요. 파업이 끝나고 정직 6개월을 받고, 대기발령에 교육발령으로 일이 없던 시절,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낙으로 살았습니다. 그래, 연출을 하지 못한다고, 내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카메라와 편집기가 없어도 글은 쓸 수 있는 것을.

 

나는 PD가 아니다. 나는 이야기꾼이다. 글이든 말이든 영상이든 언제나 즐거운 소통을 꿈꾸며 산다.’

라고, 글을 맺고 싶습니다. 쿨하고 멋지게.

 

그러나 저는 알아요. 제가 쿨하지 못함을. 아마 전 앞으로도 PD로 일하고 싶은 마음과 씨름하며 살 것입니다. 야외 연출이든, B팀 감독이든, 조연출이든, 받아만 준다면 어떤 프로그램에 가서든 일하고 싶어요. 이 마음을 들키면, 일에 대한 내 사랑이 볼모가 되고, 징벌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티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세상에 이렇게 재미난 일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고, 사랑하는 그 마음을 들키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PD이고 싶습니다. 제대로 된 피디 노릇을 하고 살기에 너무나 힘든 세상이지만, 그럴수록 더욱 격렬하게 피디이고 싶습니다.

 

아이들 진로 특강에서 한 대답으로 글을 마무리하렵니다.

 

PD를 꿈꾼 적이 없어요. 그냥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무엇을 하면 즐거울까? 그것만 생각하고 그 순간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을, 가장 열심히 하면서 살았어요.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PD가 되어 있더라고요. 꿈이란 걸 미리 정해두지 마세요. 하루하루 즐겁게, 열심히 사세요. 그러다보면 어느 날 무언가 되어있을 거예요. 그러면 그때 가서 우기세요. 처음부터 그게 꿈이었다고.”

 

PD 글쓰기 캠프에 왔습니다. 언젠가 작가가 되고 싶은 게 꿈이라서?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읽고 싶은 책이 내 곁에 있고, 만나고 싶었던 작가가 내 눈 앞에 있고, 글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내 속에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이렇게 즐거운데 무엇이 되고 안 되고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지난 34, 즐거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글을 다 쓴 후, 피디 연합회보에 기고하라는 주최측 말씀에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공개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글을 사측에서 읽으면 연출에 대한 나의 사랑이 징벌이 되리라 생각했거든요. 글쓰기 캠프 마지막 날 각자 자신이 쓴 글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조용히 낭송을 했습니다. 그렇게 동료들 앞에서 한번 읽고 이 글은 지우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날 그 자리에서 있던 KBS 라디오 피디 한 분이 제 이야기를 들으며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2012KBS에서도 함께 파업을 했는데, 당시 KBS 새 노조 집행부로 일했던 그는 자신이 겪은 일, 동료들이 겪은 일이 떠올랐는지 글을 읽는 내내 울었어요. 끝나고는 달려와 고맙습니다, 선배님. 열심히 싸워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하고 또 우는데, 갑자기 저도 콧등이 시큰해지더라고요.

그 분의 반응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 바깥에서는 우리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모르는구나. 이 글을 통해 MBC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증언할 수 있다면 글을 공개해야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용기를 내어 글을 ‘PD 저널에 기고했습니다.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고 허핑턴포스트에서 연락도 왔고요. 글을 발행하고 한 달 후, 저는 드라마국에서 편성국으로 인사발령이 났습니다. 누군가 제 글을 본 건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알 수 없지만요.

 

돌이켜보면 그 때, 유배지로 좌천된 것이 제 인생 최고의 행운입니다. ‘영어 책 한 권 외워봤니?’를 내고,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에 나가 강연을 하고, 페이스북 라이브로 사장 퇴진 퍼포먼스를 했던 건 다 그 발령으로 시작된 연쇄 작용이니까요. 드라마국에서 밤샘 촬영하며 야외 연출로 계속 일했다면 책을 쓸 엄두도 못 냈을 것이고, 책이 없었다면 세바시에서 강연 요청도 오지 않았을 것이고, 드라마 연출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없었다면 김장겸은 물러나라페이스북 라이브도 없었을 테니까요.

 

인생은 리액션입니다. 내가 쓴 글에 대한 타인의 리액션이 다시 내 삶의 액션을 불러옵니다. 제 인생, 마지막 반전을 위한 행동, 그 행동을 위한 용기를 불어넣어주신 이진희 피디님께 감사드립니다. 피디님 덕분에 다시 싸울 용기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생은, 역시 리액션입니다.

언론노조 MBC 본부 조합원들은 총파업 투표에 돌입했습니다. 300여명의 피디 기자 아나운서 조합원들이 이미 제작거부에 나섰고요. 오늘 저녁 7시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이들을 만나주세요. 여러분의 리액션이 마봉춘과 고봉순을 살릴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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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몇 달 전 사내에서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외쳤다가 MBC 김장겸 사장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대기발령이 나고 징계를 받았어요. 인터뷰를 할 때마다 기자들이 물어봅니다. “어쩌다 코미디를 연출하는 피디가 이렇게 언론 정상화를 위한 싸움에 나서게 되었나요?” 회사에 대한 사랑이 너무 지극했던 탓이지요. 96년에 입사한 저는 시트콤, 버라이어티 쇼, 드라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다 해봤어요. MBCPD나 기자나 하고 싶은 일은 하게 해주는, 즉 개인의 제작 자율성을 존중해주는 문화가 있거든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낙하산 사장들이 MBC를 점령하고 나서 그런 분위기가 사라졌어요.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분들이 TV에서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신경민 앵커, 김미화 라디오 MC, 손석희 100분 토론 진행자 등등. 그 과정에 저항하던 시사교양 피디나, 라디오 피디, 기자들이 회사로부터 탄압을 받고 박해를 받습니다. 그걸 보니, 혼자 즐겁게 살아온 날들이 죄스럽게 느껴졌어요. 빚갚는 마음으로 노동조합 부위원장이 되어 2012170MBC 파업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 싸움이 패배로 끝난 후, MBC는 박근혜 정부에 의해 철저히 망가집니다.

지난 5, 권력이 언론을 상대로 어떤 폭력을 가하는지 MBC 내부에서 지켜보았습니다. 동료들이 해고되고, 일터에서 쫓겨나고, 징계를 받았어요. 그 후, 권력은 언론을 이용해 약자들에게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특히 세월호 전원 구조라는 방송사상 최악의 오보를 내어 구조 작업을 방해했던 MBC가 이후 세월호 유가족을 폄훼하고 비난 여론을 조성하는데 앞장 섰지요.  세월호 참사 이후 기자들을 부르는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기레기

MBC 해직 기자 박성제 선배가 책을 냈습니다. <권력과 언론 기레기 저널리즘의 시대> 우리는 어쩌다 기레기가 되었을까요? 오늘은 비즈한국 칼럼에 쓴 글을 공유합니다.

 

어쩌다보니 기레기, 그러다보니 투쟁.

 

http://www.bizhankook.com/bk/articlePrint/1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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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책을 고를 , 제목 - 저자 소개 -목차순으로 봅니다. 제목이 끌리면 일단 집어들고, 저자 소개를 읽습니다. 저자가 살아온 삶을 보고, ', 나도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 이렇게 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책을 읽으면 사람처럼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 목차로 넘어가지요. <솔직한 식품> (이한승 / 창비)의 저자소개는 이렇게 나옵니다.

 

'저자 이한승은 인류가 착륙에 성공한 해에 서울의 달동네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식품공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석사과정 때는 식품생물공학과가 되더니 박사학위를 받을 때는 생명공학과로 바뀌어 본인도 무슨 과를 나왔는지 모른다. 미생물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10 가까이 일본 동경대학교, ()제노포커스, 미국 조지아 대학교 등을 떠돌며 박사 과정으로 세계일주를 뻔했으나 2007 여름 부산의 신라대학교 바이오산업학부 식품공학 전공에 임용되어 재직 중이다. 대학원생 시절부터 심해 열수구, 온천, 소금 같은 극한 환경에 사는 미생물에관심이 많아 신라대학교에 해양극한미생물연구소를 설립하고 소장으로 섬기고 있다

유전자 분석(BLAST) 때문에 남들보다 일찍 인터넷 세계에 입문하여 정치, 사회, 과학 관련 온갖 부끄러운 잡글을 썼으나 지금은 아이디가 밝혀지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과학과 사회의 소통에 관심이 많아 부산MBC FM 아침 방송에서 과학 코너를 2 담당하였고 『경향신문』에 과학 칼럼을 2 동안 썼으나 잘리고 지금은 블로그와 트위터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어디서든 식품 이야기만 나오면 목소리가 커진다고 딸들에게 구박받는 것이 억울해서 식품 관련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런 유쾌한 저자 소개, 좋네요. 요즘 살충제 계란 파동도 그렇지만, 식품에 대한 정보는 때로 혼란스러워요. 어떨 지방이 성인병의 주범이라 하고, 어디서는 지방이 억울하다고 하고, 어디서는 과일을 많이 먹으라 하고, 어디서는 과일도 많이 먹으면 비만이 된다 하고... 도대체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할까요 

 

 

책에는 'PD수첩 광우병 편' 이야기가 나옵니다. MBC 고난은 거기서 시작되었어요. 이명박 정부가 MBC 죽이기에 나선 이유도 그것이고. 미국산 소고기를 먹고도 광우병 환자가 나오지 않으니 당시 보도가 과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문제는 인간 광우병의 위험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가 아니다. 위험에 대해 느끼는 바는 각자 다르다. 2008년의 사태는 인간 광우병의 위험성에 관한 문제라기보다는 정부의 신뢰와 사회적 합의에 관한 문제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이 인간 광우병의 위험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무시한 일방적으로 진행된 대한 저항이었던 것이다. 다만 인간 광우병에 대한 불안이 저항의 강도를 더욱 거세게 만든 측면이 있다. 설령 불안이 다소 막연했다 하더라도,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적절한 수준의 규제를 마련해 국민을 설득하고 불안을 잠재워야 하는 것이 정부의 몫이었다. 하지만 당시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준비 부족과 이후의 안이한 대처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어떤 식품이 위험한지 위험하지 않은지 과학이 단칼에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신중하고 신뢰할 만한 과학자라면 ' 연구해봐야 안다' 흔한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험은 어디에나 있다. 어디에 선을 그을 것인지는 과학이 아니라 사회가 합의해서 정하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차에 치일 위험이 있다고 운전을 금지하거나 보행을 금지하지는 않는 것처럼, 위험을 어디까지 통제하고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는 사회적 합의의 영역에 속한다. 합의를 위한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과학의 역할이다.'

 

(위의 책 68)


 

예전에 한 달 간 인도 배낭 여행을 다닐 때 소고기를 먹지 않았어요. 그곳 사람들이 싫어하는데 굳이 할 이유는 없잖아요? 요리사가 먹지 않는 요리는 저도 먹지 않습니다. 그게 식품 안전성에 대한 저의 기준이에요. 인도 네팔에 가면, 채식만 합니다. 소고기 한 달 안 먹어도 문제는 없더라고요.

 

'지방의 누명'이라는 다큐를 보고는 한동안 탄수화물을 줄이고 고기만 먹었어요. 저자는 그 방송이 지방의 누명을 벗기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그 죄를 탄수화물에 뒤집어씌웠다는 것은 문제라고 하시는군요. 방송에 소개된 정도의 철저한 탄수화물 섭취 억제와 지방 섭취는 지속하기 매우 어렵고 사회적 비용도 크다고요. 책을 읽은 후로는 맛있는 면요리를 죄책감 없이 다시 즐기게 되었어요. 이 맛있는 라면, 자장면, 파스타 없이 어떻게 살라고!

 

 

저지방이냐 저탄수화물이냐 보다 섭취량이 중요하답니다. 다이어트에는 식욕조절이 관건인데요. 다이어트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삶이 즐거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루종일 재미없는 일을 하고 종일 상사에게 시달리면 나도 모르게 야식과 회식을 달리게 되거든요. 먹는 것 말고도 삶의 낙이 많아야 다이어트가 쉬워지지 않을까요? 

 

다이어트는 금연이랑 같다고 생각합니다. 담배를 끊을 거면 그냥, 피울 거면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냥 피우는 거죠. 다이어트를 할 때는 그냥 하던가, 맛난 음식을 먹을 때는 그냥 먹던가. 둘 중 하나입니다. 맛난 음식을 인상 쓰면서 먹지는 말자는 주의지요. 기본적으로 저는 먹고 싶은 먹습니다. 대신 먹은 만큼 운동으로 소비하려고 노력합니다.

 

'행복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것을 함께 먹는 일'이랍니다.

오늘도 좋은 사람 만나, 맛난 점심 하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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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저는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동네 뒷산 약수터나 강변을 걷다보면, 테니스장 옆을 지나가는 경우도 많아요. 어느날 산책로를 걷는데 테니스 코트에서 운동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복식 경기를 하는데, 맞은 편 선수가 왼쪽 구석을 노려 공을 쳤어요. 앞 사람이 공을 뒤로 흘리자, 뒤에 있던 이가 한참 쫓아갔으나 늦었어요. 그때 뒷사람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아, 그건 앞에서 받아줘야지. 앞에 한발짝, 뒤에 열발짝이잖아."

 

복식 테니스에서 나온 말인가봐요.

앞에 한발짝, 뒤에 열발짝.

앞사람이 한발 거리, 뒷사람은 열발을 가야한다는 뜻이겠지요.


'내가 공을 흘려도, 뒤에서 어떻게 막아주겠지' 하지만, 공은 뒤로 갈수록 궤적이 벌어지기에 쫓아가기 쉽지 않습니다. 뒷사람에게 맡기지말고 내가 막는다는 각오로 뛰어야합니다. 내가 한 발 갈 거리, 뒤에서는 열 발을 가야하니까요.


생각해보면, 인생도 복식 경기입니다.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함께하는 복식경기. 오늘 내가 딛는 한걸음이, 10 뒤 나에게는 열걸음입니다. 좋은 습관 하나를 만들면, 그 습관이 계속 쌓이면서 훗날 큰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아직 퇴직까지 10년이 남았지만, 저는 매일매일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합니다.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지금 내가 부지런해야 10년 후 내가 고생하지 않으니까요. 스무 살 시절 영어책을 외운 나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삽니다. 그 덕분에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도 썼고, 유배지에서의 생활 더 즐겁게 보낼 수 있었어요.

 

 

 

요즘 MBC에서는, PD수첩 피디들의 제작거부를 시작으로, 싸움이 날로 커지고 있어요. 시사제작국, 보도국에 이어 아나운서도 제작 거부에 나섰고요. 라디오, 예능, 드라마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방송인으로 살면서, 방송을 멈춘다는 것이 개개인에게 얼마나 뼈아픈 선택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며칠 전 들은 강다솜 아나운서의 클로징 멘트에 마음이 아팠어요.

 

 


 

MBC의 몰락을 더이상 방관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순간 우리의 한걸음이, 10 열걸음이라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내딛는 이 힘든 한 걸음이,

MBC의 부활과 재건을 위한 힘찬 첫걸음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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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영화 <택시 운전사>를 보았습니다. 영화를 보니, 무엇이라도 하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책을 읽었습니다.

영화 <공범자들>도 그런 영화이기를 바랍니다. 영화를 보시고, 무엇이라도 하나 하고 싶어지는...

1980년 광주의 <택시 운전사>처럼,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2017년 공영방송을 지키는 <택시 운전사>가 되어주십시오. 극장에서 <공범자들>을 만나주십시오. 고맙습니다.  

 

[김민식 인생독서] 1980 광주, 2017 광화문

http://www.bizhankook.com/bk/article/13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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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집에서 저는 소수파입니다. 아내와 두 딸이 있는데, 셋은 똘똘 뭉쳐요. 저는 혼자 남자라 약간 구박데기지요. 요즘은 심지어 셋이서 저를 놀려요. 퇴근하면, "우리 집 울보, 오셨어요?" "오늘은 안 울었쩌요?" 이렇게...

 

네, 며칠 전 유튜브 영상 하나를 본 후로 그러고 있어요.

부끄럽지만 오늘은 그 영상을 공유합니다.

 

영화 <공범자들>을 본, 저의 솔직한 심경입니다.

영상을 보고, 영화를 찾아봐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영화를 보시면, 제가 저렇게 서럽게 우는 이유를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영화, <공범자들> 많은 관람, 부탁드립니다.

더 많은 분들이 보시면, 더 좋은 세상이 옵니다. 감히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MBC 정상화의 속도는, <공범자들>의 관객수와 정비례해서 빨라 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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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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