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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책들의 테마파크, 1 죽음

by 김민식pd 2016. 3. 7.
한 가지 주제의 책을 이어읽고, 같은 테마의 책끼리 묶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책들의 테마 파크, 그 첫번째 테마는 '죽음'이다.

테마 파크 나들이가 즐거운 이유? 살아있음의 축제이기 때문이다. 그 즐거움은 죽음을 희롱하는 데서 출발한다. 죽을 것처럼 무섭지만, 죽지는 않는다는 보장에서 롤러코스터의 유희가 시작된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죽음의 형태는 암이다. 암환자의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2016-43 아만자 (김보통 / 예담)

2014년 에이코믹스 선정 우리만화 베스트 5에 든 작품인데, 단행본으로 나왔기에 책으로 읽었다. 암환자(아만자)의 투병기를 만화로 풀 수도 있구나. 우리 만화의 수준이 날로 높아진다. 어떤 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비평이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나는 에이코믹스의 역할을 높이 평가한다. 만화를 좋아한다면, 에이코믹스는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만화 없는 만화 웹진인데, 만화에 대한 사랑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다독 비결 43 
2014 베스트 1위가 최규석의 '송곳'이었다. '미생' '송곳' '치즈 인 더 트랩' 등 웹툰이 원작인 화제의 드라마가 많다. 지금 이 시대, 가장 치열한 아이디어 원안의 격전장이 웹툰이다. 드라마 원작을 찾기 위해 열심히 만화를 읽는다. 일을 핑게로 만화책을 읽는 것도 다독비결? ^^


2016-44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지음 / 김희정 옮김 / 부키)

'아만자'를 읽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다. '어떻게 죽어야 잘 죽는 것인가?' 그래서 책을 샀다. 2015년 '올해의 책' 중 하나다.

'우리는 모두 태어난 순간부터 나이가 들다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삶의 비극을 피할 길이 없다. 하지만 죽음은 실패가 아니다. 죽음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죽음은 비록 우리의 적일는지 모르지만, 사물의 자연스러운 질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문제는 하나, 바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이다.'

(책의 뒷표지에서)

나이 들고, 죽는다는 것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어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불행해지기는커녕 오히려 긍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다는 사적인 느낌과 정신적 행복은 밀접한 관계가 있단다. 911 테러 직후 미국에서, 2003년 봄 사스 전염병이 창궐해 몇 주 만에 300명이 목숨을 잃은 홍콩에서도 비슷한 조사 결과가 나왔다. '생명이 덧없음을 두드러지게 느낄 때'면 삶의 목표와 동기가 완전히 변한다. 행복을 평가하는 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관점이다.

(같은 책 151~157 쪽 부분 요약)

죽음을 다룬 책을 읽다보면,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몇 년 전 아끼던 후배를 간암으로 잃었는데, 말기암 선고 후, 그는 자신에게 가장 충실한 시간을 보냈다. 어느날 그가 내게 그랬다. "형,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지금 해요. 내일은 의미 없어요." 스티브 잡스 역시 스탠포드 대학 졸업축사에서 그러더라. "만약 내일 죽는다면, 오늘 하고자 하는 그 일을 할 것인가?"

행복은 미루는 게 아니지만, 그렇다고 방종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간암으로 간 후배의 마지막을 지켜본 후, 나는 술을 끊었다. 과로의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건 절대 답이 아니더라. 담배를 피우는 이들에게는 금연을 권한고 싶은데 아마 쉽지는 않을 것이다. 끊기 쉽지 않다면, 이 책은 한번 읽었으면 좋겠다.

책에 나오는 어느 할머니의 사연이다.
'평생 담배를 피운 그녀는 폐암 진단을 받았고, 암을 극복한 뒤에도 담배를 끊지 않았다. 남편인 루 할아버지는 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이 은퇴한 지 3년 후 루스 여사는 뇌졸중을 일으켰고, 평생 그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점점 더 많은 것을 남편에게 의존해야 했다.'
(같은 책 131쪽)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제목이지만, 책을 읽고 나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나이든 부모가 있는 사람이나, 그 자신 나이 들어가는 사람이나,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결국 죽음이란 우리 중 누구도 피하지 못하는 문제니까. 책의 번역도 참 마음에 든다.


다독 비결 44.
이 책을 번역한 김희정 님은 외대 통역대학원 동문인데, 이 분이 번역한 책은 항상 믿음직하다. 장하준 선생의 경제학 서적이며, '견인 도시 연대기'같은 SF 펑크 시리즈며, 다양한 장르를 오가면서도 번역의 완성도가 꽤 높은데, 책을 고르는 안목도 좋아서, 이 분이 번역한 책은 믿고 주문하는 편이다. 때로는 믿음직스런 번역자의 이름은 외워두는 것도 다독의 비결~




2016-45 사는게 뭐라고 (사노 요코 / 마음 산책)

두 권의 책을 읽고 우울했다면, 마지막에는 좀 유쾌하고 끝내자. 같은 암 투병기이지만, 이 할머니의 투병기는 좀 다르다. '100만번 산 고양이'라는 동화를 쓴 일본의 작가인데, 암 투병기를 수필로 남겼다.

'역사상 최초의 장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게는 생활의 롤모델이 없다.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거리며 어떻게 아침밥을 먹을지 스스로 모색해나가야 한다. 저마다 각자의 방식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위의 책 14쪽)
 
장수 사회의 부산물이 암이다. 야생 상태의 토끼나 노루에게는 암이 없다. 늙어서 뛸 힘이 없으면 잡아먹히는 게 순리였다. 인간이 문명을 이루고 수명 연장의 혜택을 누리게 된 결과, 암이라는 종말을 피할 길이 없어졌다. 

일전에 소개한 오디오북 '소라소리'에서 성우 윤소라 님이 이 책을 읽어주셨는데, 이후 책을 읽을 때마다 저자 사노 요코의 목소리가 한국어 더빙 버전으로 귓전을 울린다. '소라소리'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다.

(팟캐스트 '소라소리'의 주소)

다독 비결 45.
책을 읽기 힘든 상황이라면 오디오북이라도 즐길 일이다. 책 소개 프로그램을 통해 책에 대한 구미를 돋우는 일이, 활자 중독자로 가는 지름길이다. 책 소개 프로그램으로 맛보기를 한 후, 자신의 취향이라 생각되는 책은 주문하면 된다. 책을 고르는 안목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애연가이던 사노 요코는 암 재활 치료를 하면서도 담배를 피운다. 노년에 한류 드라마 속에서 낙을 찾으며 지내던 할머니에게 다시 암이 재발한다.

이하, 책의 한 대목.


'"몇 년이나 남았나요?" "호스피스에 들어가면 2년 정도일까요." "죽을 때까지 돈은 얼마나 드나요?" "1천만 엔." "알겠어요. 항암제는 주시지 말고요. 목숨을 늘리지도 말아주세요. 되도록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럭키. 나는 프리랜서라 연금이 없으니 아흔까지 살면 어쩌나 싶어 악착같이 저금을 했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근처 재규어 대리점에 가서, 매장에 있던 잉글리시 그린의 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주세요." 나는 국수주의자라서 지금껏 오기로라도 절대 외제 차를 타지 않았다.

배달된 재규어에 올라탄 순간 '아, 나는 이런 남자를 평생 찾아다녔지만 이젠 늦었구나'라고 느꼈다. 시트는 나를 안전히 지키겠노라 맹세하고 있다. 쓸데없는 서비스는 하나도 없었고 마음으로부터 신뢰감이 저절로 우러났다. 마지막으로 타는 차가 재규어라니 나는 운이 좋다.

그러자 나를 시기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요코한텐 재규어가 안 어울려." 어째서냐. 내가 빈농의 자식이라서 그런가. 억울하면 너도 사면 되잖아. 빨리 죽으면 살 수 있다고. 나는 일흔에 죽는 게 꿈이었다. 신은 존재한다. 나는 틀림없이 착한 아이였던 것이다.

산 지 일주일 만에 재규어는 너덜너덜해졌다. 나는 주차가 서투른데 우리 집 주차장은 좁기 때문이다. 너덜너덜해졌을 뿐만 아니라 까마귀가 보닛 위에 매일 똥을 쌌다.

내게는 지금 그 어떤 의무도 없다. 아들은 다 컸고 엄마도 2년 전에 죽었다.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죽지 못할 정도로 일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남은 날이 2년이라는 말을 듣자 십 수 년 동안 나를 괴롭힌 우울증이 거의 사라졌다. 인간은 신기하다. 인생이 갑자기 알차게 변했다. 매일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건 자유의 획득이나 다름없다.'

(같은 채 242~243쪽) 

삶은 어찌보면 테마파크 놀이동산이다. 우리 바로 옆에 죽음이 상존한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순간 순간을 즐긴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것을 알고 살면, 어쩌면 우리는 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죽음을 직시하는 세 권의 책 덕분에 삶이 조금 더 풍성해진 기분이다. 
더욱 열심히,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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