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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공짜 연애 스쿨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겨야하는 이유

by 김민식pd 2016. 1. 28.

간만에 질의응답시간입니다.

방명록에 안타까운 사연 하나가 질문으로 올라왔네요.

Q:

예능 피디와 만나고 있어요. 남자가 워낙 바쁘다보니 연락도 자주 안 오고, 만날 짬도 없답니다. 남자가 호감은 있는 듯 한데, 바빠서 그런지 잘 표현하지 않네요. 주위에 예쁜 여자 연예인도 많다는데, 과연 우리 잘 사귈 수 있을까요?

(사생활보호를 위해 질문을 각색했어요. ^^)

A: 

네, 잘 찾아오셨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답해드릴 수 있는 사람, 바로 저 입니다. ^^

 

일단 예능 피디의 삶, 정말 바쁜 건 맞습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노동강도가 줄어야하는데, 예능 피디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노동강도가 세집니다. 자막이 생기면 자막을 써야하고, (80년대 예능엔 자막이 없었어요.) NLE 편집기가 나오면서 카메라를 10대씩 돌리고요, (90년대 예능엔 카메라를 1대만 돌렸어요. 편집할 촬영분량이 적었지요.) 액션캠이랑 드론이 나오면서 인서트해야할 비디오는 더 늘었고요, (10년전만 해도 헬기 한 대 띄우기 참 힘들었지요.) 심지어 CG 기술도 좋아져서 요즘 예능 피디는 거의 애니메이션 감독 정도의 상상력을 TV 화면에 구현하고 있지요. (5년전과 지금 예능만 해도 천지차이에요.) 시간이 갈수록, 기술이 발달할수록, 예능 피디의 일은 더 늘어나더군요.

20년전, 제가 예능국 조연출로 일할 때도 하루하루 정말 바빴지요. 그러다보니 덜컥 겁이 나더군요. '나, 이러다 결혼은 할 수 있을까?' 더 두려운건 결혼 후였어요. '결혼하고 가정 생활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아내를 만났어요.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앞뒤 안 가리고 그냥 들이대는 편이라 일단 연애부터 걸었어요. 마님은 당시 일하느라 바쁘기도 했고, 독립적인 성격이 강해서 남에게 의존하는 편도 아니었어요. 믿음이 가더군요. 이런 사람이라면 피디의 아내로도 잘 살겠다.

피디의 아내가 전업주부로 살면서 남편 퇴근만 기다린다면, 피디도, 아내도 돌아버릴 거예요. 퇴근하고 싶어도 퇴근할 수 없는 남자와, 기다려도 오지 않는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렇게 바쁘고 독립적인 마님도 신혼 초에는 힘들어하더군요. 저의 경우, 결혼하고 한 달 동안 집에 와서 저녁을 먹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명색이 신혼인데 허구헌날 새벽 2시가 넘어서 들어오는 겁니다. 자취도 한번 해본 적 없이 늘 집에서 엄마 아빠랑 살던 마님은 빈 집에서 혼자 자느라 외롭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대요. "이럴 거면 왜 결혼하자고 그렇게 졸랐어?" 투정도 하더군요.

그때 우리에게 천사가 찾아옵니다. 네, 결혼 석달만에 아기를 가진 거예요.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잖아요? 밤늦게 남편 기다리며 울던 울보 새댁이 열혈 엄마 모드로 변신해서 매일밤 뱃속의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아기를 기다리며 지내더군요. ^^

며칠 전 '혼자있는 시간의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 위즈덤 하우스)을 읽었어요. 책에 이런 글이 나와요.

 

 

'혼자 잘 설 수 있어야 함께 잘 설 수 있다.'

이게 연애의 정답입니다. 연애란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 둘이 만나, 서로의 존재에 감사하며 사는 겁니다. 내가 외로워서 너를 만나는 게 아니라, 혼자서도 잘 사는 내가 네가 좋아서 같이 살아보는 거다. 이런 자세로 만나야해요.

남자분 입장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네요.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본인은 잘 몰라요. 그때를 놓치면 (혹은, 님을 놓치면^^), 혼기를 놓칠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남자는 아마 이렇게 생각할거예요.

'인생에는 승부를 걸어야 할 때가 있다. 실패하지 않으려면 교제를 완벽하게 끊고 하고 있는 일도 철저히 정리하여 생활 전체를 점검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거의 모든 시간을 온전하게 활용할 수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 51쪽에 나오는 글이에요.)

PD로서 이름을 날릴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있죠. 2,30대에는 일이 우선이고 교제는 뒷전일거예요. 나는 항상 후배들에게 일과 연애, 양다리를 걸치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일은 언제든 나를 배신할 수 있어요. 시청률이 안 나올 땐 어쩔 수 없어요. 5천만 시청자의 마음이 꼭 내 마음 같을 수는 없으니까. 그럴 때, 내 곁을 지켜줄 가족이 필요하다, 라고 후배들에게 말하죠. "일은 너를 배신할 수 있지만, 가족은 너를 배신하지 않는다. 드라마가 망했을 때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때를 위해서 꼭 결혼은 해두는 게 좋아." 라고. (아마 후배들은 속으로 그럴 거예요. '저 형은 내가 자기처럼 망할 거라 생각하나?' ㅋㅋㅋ) 

남자들은 현명하지 못해요. 터널 비전이라고 하지요. 목표 지향적인 삶이거든요. 다른 말로 근시안 적인 삶.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 깨닫지 못해요. 이럴 때는 더 현명한 여성분이 느긋하게 기다려줄 수 있어야해요. 남자 입장에서는 사귀자고 말하기도 어려울 거예요. 연애에 올인할 형편도 아닌데 함부로 붙잡기 애매하거든요. 놓치기는 싫은데, 붙잡을 수도 없고... 이래 저래 고민이 많을 겁니다. 일단 조금 시간을 주고 지켜보세요.

시간을 줘도 철 안드는 철부지라면, 오로지 일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냥 보내주어도 됩니다. 그런 사람이랑 무슨 인생을 같이 하겠어요. 불쌍한 인생 구제해주려고 했는데, 뜻대로 안 되네... 하고 보내주셔야 합니다.

어디까지나 인생의 중심은 당신이니까요.

혹 피디 남편을 얻게 된다면,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예능 피디는 조연출이랑 초년병 때 많이 바쁘구요. 나이들면 좀 한가해져요. 그런 노동강도로 40대나 50대까지 가지는 않아요. 그러면 죽으니까요. ^^    

PD와 사귀려면, 혹은 사시려면, 좀더 본인의 삶에 충실할 필요가 있어요. 

어려운 길을 가시는 님을 응원합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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