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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마음껏 독서할 기회

by 김민식pd 2015. 4. 17.

요즘 청년들에게 취업이 참 어렵습니다. 이른 나이에 퇴직한 중년들에게도 일이 없어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90세까지 사는 시대라 하니 기나긴 노년을 어떻게 버틸지도 걱정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 가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글이 있답니다.

'이제 가문이 망했으니, 네가 참으로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구나!'

 

네, 죄를 지은 아비가 덤으로 출세길이 막힌 아들을 약올리려고 한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기뻐하라고 하는 말입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과거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열심히 글 공부를 했지요. 어떻게 하면 시험관의 눈에 드는 글을 쓸까 고민도 많이 했을 겁니다. 정약용이 보기에 가문이 망했으니 아들은 이제 그런 출세를 위한 공부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겁니다. 그냥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고, 본인 내키는 대로 글을 쓰면 된다는 거지요.

 

몇해전 개인적으로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구속영장에 6개월 정직에 대기발령에, 마흔 다섯 한창 일할 나이에 닥친 일이라 많이 힘들었지요. 하지만 그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역시 책 덕분입니다. '이제 출세길은 막혔으니, 읽고 싶은 책이나 실컷 읽으며 살아야겠구나.' 그렇게 마음 먹고 이곳 블로그 독서일지에 새 책 소개 올리는 낙으로 살았지요. 

 

요즘 새로운 책읽기 방법을 고민하다 낭송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낭송 공부를 하다 고미숙 선생님이 쓴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라는 책에서 이런 제 마음을 그대로 대변해주는 글귀를 만났습니다.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글이라 여기 함께 공유하고자 옮깁니다.

 

'바야흐로 백수의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앞으로도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절망할 것 없다. 백수가 지성을 연마하면 군자가 된다. 타의에 의한 가난은 빈곤이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가난은 청빈이고, 청빈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윤리다. 또 고정된 정체성이 없으니 사람이든 일이든 인연의 오고감에 따라 무상하게 흘러갈 수 있다. 이 '무상성'을 불안이 아니라 자유의 시공간으로 바꿀 수 있다면, 즉 화폐에 연연하지 않고, 국경을 뛰어넘어 세상 모든 이들과 친교를 나눌 수 있다면, 이게 군자가 아니고 무엇인가. 아니, 백수야말로 군자가 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이다. 더구나 지금은 정도전의 시대와 달리 신분적 장벽도 없고 지적 제한도 없다. 누구든 어디서건 최고의 지성에 접근할 수 있다. 디지털 문명이 선사한 멋진 선물이다.

 

그럼 이제 남은 건 윤리적 선택뿐이다. 주류에서 배제되었다고 스스로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그걸 기회로 삼아 자신의 삶을 고귀하게 만들 것인가. 자기포기 vs. 자기배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자기배려의 윤리가 대세였다. 자기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자만이 타인을 통치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존중하려면 무엇보다 자기 안의 욕망과 호흡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존재가 바로 '호모 큐라스'다. 백수가 군자가 되는 길도 여기에 있다. 자기배려의 달인, 곧 호모 큐라스가 되면 된다.'

<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고미숙 저 (북드라망)

 

'공짜로 즐기는 세상'의 주인으로서 저 역시 그렇게 믿습니다. 돈이 없어서 못 쓰는 게 아니라, 있음에도 아끼는 것이라면 근검 절약의 달인이 되고, 능력이 없어서 일을 못 하는 게 아니라 공부하겠다는 의지로 일 대신 책읽기를 선택했다면 군자가 될 수 있답니다.

 

세상에서의 쓰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쓰임이 없다하여 실패한 인생은 아닙니다.

세상에서의 쓰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삶을 어떻게 쓸 것인가, 그것입니다.

 

세상에 의해 굴려지기보다, 스스로의 힘으로 굴리는 인생,

그러기 위해서는 독서만한 공부도 없는 것 같습니다.

 

책 속에서 모두 모두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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