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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짠돌이 육아 일기

짠돌이 아빠의 육아법

by 김민식pd 2013. 12. 18.

87년에 서울에 처음 왔을 때 일이다. 대학 신입 원서에 주소를 적는 난이 두 개가 있어 총무과 사무실 경비 아저씨에게 물어봤다.

"아저씨, 여기 이 빈칸은 뭔교?"

"거기다 시골 주소 적으면 돼."

"시골예? 전 시골 출신 아닌데예?"

"학생 집이 어딘데?"

"울산입니더."

아저씨는 황당한 얼굴로 날 쳐다봤지만 정작 당황한 건 나였다. '울산은 시골 아닌데? 농서나 호계가 시골이지, 울산은 도시인데?' (울주군 농서면이나 호계면에서 온 친구들에게 시골 출신이라고 놀리던 고교 시절이 새삼 후회되더라. 젠장) 나중에 알았다. 서울 사람에게는 서울 외 모든 도시는 다 시골이라는 걸.

 

서울 사람들은 정작 도시와 농촌의 구분은 못하면서, 강남 강북 구분은 정확하더라. 강남 강북이 그렇게 다른가? 나같은 촌놈이 보기엔 다 같은 서울인데. 최근 들은 어떤 얘기로는 심지어 강남도 요즘엔 테남 테북으로 나뉜단다. 테헤란로 이남과 테헤란로 이북.

 

테헤란로 이남에는 교육 수준이 높은 전문직들이 산단다. 그들은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것이 교육이라 생각해 아이들 공부에 모든 자원을 집중한다. 그게 대치동, 도곡동으로 대표되는 테헤란로 이남의 특징이란다.

 

테헤란로 이북에는 강남 땅부자들이 산단다. 강남 개발로 큰 돈을 손에 쥔 이들이라 굳이 공부에 올인하지 않는다.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그냥 유학보내면 되고, 갔다와서 취직을 못하면 저 좋아하는 카페 하나 차려주면 된다. 그게 압구정동 청담동, 테헤란로 이북의 정서란다. 나같은 촌놈은 절대 이해못할 이야기다, 테남 테북의 차이.

 

부모가 자녀를 교육한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관을 물려주는 일이 아닐까. 좋은 대학 나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이들은 아이를 입시 경쟁으로 내몬다. 이들은 자녀가 돈을 잘 벌기를 바란다. 한편 압구정 부모들은 공부에 올인하지 않는다. 공부는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정도만 하고, 여차하면 재산을 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직장에 들어가 겨우 연봉 2,3천(?)에 혹사당하느니 그냥 저 좋아하는 일 하고 살라고 한단다. (갈수록 요지경~)

 

'공짜로 즐기는 세상'을 외치며, 짠돌이로 사는 나, 사교육에 올인할 돈도 없고, 그렇다고 물려줄 빌딩도 없다. 그렇다면 나같은 아빠는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할까? 

 

내 인생의 즐거움과 밥벌이의 원천은 학벌도, 재산도 아니다. 바로 책 읽는 습관이다. 한양대 자원공학과를 졸업해서 영업사원을 하던 내게, 방송사 피디라는 직업을 얻게 해 준 것도, 난관에 부딪힐 때 마다 친구가 되어주고 길잡이가 되어준 것도 책이다. 이 고마운 취미는 심지어 돈 들 일도 별로 없다. (대학 시절 1년에 200권을 읽어 시립도서관에서 다독상도 받았는데, 도서관 애용하면 돈 한 푼 안든다.) 그래, 결심했어! 이렇게 좋은 '책 읽는 습관'을 나는 물려줘야겠어.

 

느낌표 '기적의 도서관'에 출연하신 적이 있는 허순영 도서관 관장님을 만나, 평생을 도서관 운동에 헌신한 독서 전문가에게 여쭤봤다. 

"아이에게 책 읽는 습관을 기르게 해주려면 어떻게 할까요?"

"매일 30분씩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세요."

 

요즘 난 매일 밤 잠들기 전 아이에게 30분씩 책을 읽어준다. 짠돌이 아빠로서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것이다.

 

(어느날 민서가 퀴즈를 냈다.

"아빠, 누구게?" 전날 읽어준 백설 공주 이야기가 재밌었나 보다.

"잠든 공주님을 깨우려면 아빠 왕자님이 뽀뽀를 해야겠네?")

 

(아이를 위한 짠돌이 독서 교실은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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