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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짠돌이 육아 일기

사위한테 잘해야겠다

by 김민식pd 2013. 12. 9.

딸이 둘인데, 큰 애는 나를 닮았고 둘째는 아내를 쏙 빼닮았다. 외모만 그런게 아니라 성격도 판박이다. 음...  먼훗날 둘째 사위한테 잘해야겠다.

 

아내를 만나기전 다른 여자친구들과 끝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그건 100% 내 잘못이었다. 연애를 시작하는 계기는, 상대에게서 나와 다른 어떤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 경우, 서로의 차이에 반해 쫓아다니다 상대가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 빠른 속도로 그 호감이 식어버렸다. '결국은 나랑 비슷한 애였네?' 쫓아다니는 순간은 즐기면서 막상 상대가 넘어오면 열정이 식는 스타일, 생각해보면 후진 외모에 꼴같지않게 참 나쁜 남자였던 것 같다.

 

그러다 대학원 신입생 환영회 때 아내를 보고 첫 눈에 반했다. 외모에 반해 쫓아다니다 결국  결혼을 결심하게 된 건 아내의 성격을 파악하고 난 후다. 이 사람은 절대 내게 넘어오지 않을 사람이구나. 평생을 꽁무니만 쫓게될 사람 같았다. 드디어 오래오래 질리지 않을 상대를 만났군. (Be careful what you wish for.)

 

아내와 나는 사뭇 다르다. 나는 개과의 동물이다. 누군가를 길들이고 싶어하고, 그에게 길들여지고 싶어한다. 목줄로 묶는 건 싫어하지만 그래도 개는 개다. 좋아하는 누군가가 생기면 주위를 맴돌며 꼬리치고 난리다. 그러나 아내는 늑대다. 누군가를 길들이지도, 스스로 길들여지지도 않는다. 오롯이 혼자만의 삶을 산다.

 

아내를 만나 내게 목줄을 맬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에 결혼했는데, 요즘은 음... 이분, 제발 내게 목줄을 좀 매어줬으면 좋겠다. 마님은 나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정도가 아니라 밀림에서 방목하신다. 큰 딸을 낳고 MBA를 하겠다며 혼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겠다는 아내의 바지 가랑이를 잡고 매달렸다. 그리고 가지 말라고 치사한 협박도 해봤다. 

"나 명색이 청춘 시트콤 피디야. 신인 여배우들이랑 늘 작업하거든? 당신 없는 2년 동안 나 바람나면 어떡하려고 그래. 불안하지도 않아?"

아내는 한마디로 받아쳤다.

"여배우들도 보는 눈은 있겠지."

아이를 맡기는 문제로 처가집 근처로 이사하는 바람에 회사 가는 거리가 너무 멀어졌다. 출퇴근만 하루 3시간 넘게 걸린다고 불평을 했더니 아내는 간단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회사 근처에 오피스텔 얻어줄게."

아내는 심지어 해외 파견 근무를 신청해 아예 아이들을 데리고 외국으로 나가 살기도 했다. 기러기 아빠로 혼자 사는 나를 보고 주위에서 부러워하는 이들도 많았다.

"좋겠다. 중년에 자유를 만끽하겠구나."

고백하자면 중년의 자취 생활, 별로 아름답지 않다. 마트에서 햇반을 한아름 카트에 실고 엘리베이터를 탔더니 아주머니들이 자기들끼리 막 웃더라.

"아이구, 요즘은 혼자 살기 참 세상 좋아졌어." 

ㅠㅠ

무엇보다 가장 괴로운 건 딸들을 못보고 사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노는 것도 낙인데, 그깐 자유가 무슨 소용이랴. 아, 어려서 남의 딸 가슴 아프게 한 죄로 내 딸도 못 보고 사는구나... 

 

최근 마크 롤랜즈가 쓴 '철학자와 늑대'라는 책을 참 재미나게 읽었다. 술술 잘 읽히는 철학 서적이다. 책을 읽다가 문득 무릎을 쳤다. '그래, 역시 마님은 늑대였어.' 개와 늑대의 결정적 차이는 애정 표현에 있다. 개는 끊임없이 애정표현을 통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해야 하는데, 마님은 애정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다. 연애 시절, 극장에서 몰래 손 한번 잡았다가 난리난 적이 있는데, 결혼 13년차인 요즘도 스킨십은 여전히 박하다. 매일 아내에게 애정표현을 구걸하고 산다. 젊어서는 싫다는 여자 쫓아다니는게 스릴있어 좋았는데, 늙으니 스릴은 개뿔, 걸핏하면 상처 받기 일쑤다.

 

둘째는 자랄수록 아내와 똑같다. '이 아이만은 늑대로 키우지 않아야해. 나같은 희생자를 또 만들 수는 없지.' 하고 결심했던 적도 있다. 아이와 자주 놀아주고 자주 안아주고 그러는데, 요즘 민서에게 듣는 말. 

"아빠 싫어. 뽀뽀쟁이, 저리 가!"

좌절이다. 이젠 심지어 일곱살 난 딸에게도 상처를 받는다.

 

 

(예전에 연애 시절 들이대다 까여도 상처받지 않던 나, 딸에게는 상처받는다. ㅠㅠ)

 

이제야 깨달았다. 누군가 늑대로 사는 건, 자라온 환경의 탓이 아니었구나, 그냥 그렇게 타고나는 거구나. 둘째가 자라는 걸 보며, 이제 아내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늑대 아이'를 보면 육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늑대 인간과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어느 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 자신이 늑대인지, 인간인지. 그때 부모가 아이에게 어떤 결정도 강요할 수 없다. 결국 부모란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존재구나. 아이의 삶을 선택하는 건 부모의 역할이 아니구나... 

 

늑대로 살 것인가, 아닌가, 그 선택은 본인이 하는 것이다. 부모가 바꾸려고 한다고 바뀌는 것도 아니다.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이가 있다면, 아서라, 그건 불행을 부르는 일이다. 내가 겪어봐서 잘 안다. '철학자와 늑대'는 이질적인 존재와 살며 자신을 더 잘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한 철학자의 이야기다. 늑대를 보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나와 다른 아내, 아이들과 살면서 '나는 그럼 누구인가?'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철학자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아이를 키우며 어른이 되어가는건 오히려 내가 아닐까 싶은 정도? 

 

어쨌거나 나는 먼훗날 둘째 사위에게 술 한 잔 사야할 것 같다.


"이보게. 자네는 늑대의 품성을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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