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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로저 에버트, 당신에게 투썸업을 바칩니다.

by 김민식pd 2012. 11. 12.

로저 에버트, 난 늘 당신의 팬이었어요.

난 당신과 같은 영화광이랍니다. 나도 당신처럼 영화를 사랑해요.

나는 당신이 영화를 사랑하는 방식을 사랑합니다. ‘시스켈 & 에버트시절부터 당신이 투썸업을 날리는 영화는 다 재미있었어요.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는 너무 어렵지 않아 좋았어요. 때론 감독들이 예술가인양 하느라 점점 대중들로부터 멀어지는 사람이 있잖아요.

 

처음에는 쉽고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내던 감독들이 성공에 취하면 취할수록 점점 어려워져갔어요. 평론가들과 골수팬들에게 받는 열광에 취한 나머지, 대다수의 관객들에게서 등을 돌리는 감독, 별로거든요. 그런데 당신의 영화평은 절대 어렵지 않았어요. 재미있으면, 재미있다. 없으면 없다, 선명했죠. 영화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당신의 비평을 읽으며 무릇 무엇에 대해 평하려면 애정 없이는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영화를 향한 당신의 애정은 때로는 감독을 향한 엄한 질책으로 이어지기도 했죠.

'네 영화, 구려!'라고 말하는 당신의 표정은 정말 무서워요.

앙다문 입과 턱선!

하지만 당신은 이제 더 이상 그 무서운 표정을 지을 수 없죠.

 

 

당신의 글만 보던 나는 당신의 모습이 변한 걸 몰랐어요. 그러다 어제 테드 (TED.com) 강연을 통해 당신의 모습을 보았어요. 충격이었어요. 내가 알던 당신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침샘암에 걸려 죽을 고비를 맞고, 성대와 아래 턱뼈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니요. 영화 DVD의 코멘터리 트랙을 통해 늘 유쾌한 수다를 늘어놓던 당신이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니요. 말로 먹고 먹고사는 평론가가 말을 빼앗겼을 때 느꼈을 충격이 얼마나 클까 상상도 가지 않아요.

 

하지만 당신은 강연 내내 웃습니다. 그거 알아요? 당신은 웃지만, 당신의 웃음을 보며 우리는 운다는 거? 강연 내내 당신의 위트에 웃음 짓다가 끝내 지하철 안에서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어요. 영화평에서처럼 강연 앞에도 스포일러 경고를 띄워주시지 그러셨어요. 보다가 눈물을 흘릴 수 있으니 공공장소에서는 시청을 삼가라고...

 

 

 

잃어버린 목소리를 컴퓨터 기술 덕에 되찾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해나가는 당신을 보고 나는 어떤 선배를 떠올립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위해, 자신이 사랑하는 회사를 위해 피디라는 직업을 잠시 물리고 노조 위원장으로 일하던 그 선배는 결국 해고로 일터를 빼앗깁니다. 

 

방송을 통해 시청자를 만나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살던 사람에게, 방송을 빼앗기는 것은 병마로 목소리를 잃는 것 만큼이나 괴로운 일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선배는 늘 웃습니다. 그리고 빼앗긴 방송을 컴퓨터와 네트워크 기술의 도움으로 되찾아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네, 그 선배는 지금 '뉴스타파'를 연출하는 이근행 피디입니다. 세상이 우리의 소중한 걸 빼앗아가도, 웃을 수 있다면 다시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줘서 고마워요, 두 분.

 

그리고, 에버트. 당신은 당신이 찬양했던 그 어떤 영화의 히어로보다 더 멋진 인생의 주인공이에요. 주위에 이렇게 멋진 사람들이 많다는 걸, 우린 왜 평소에는 깨닫지 못하고, 꼭 시련을 통해서만 알 수 있을까요?      

 

에버트, 존경하고 사랑해요. 그리고 살아남아줘서 고마워요

죽음을 각오한 순간에 나도 당신처럼 아내에게 노래를 불러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I'm your man' 

 

이제껏 본 테드 강연 중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 한 편, '로저 에버트, 되찾은 나의 목소리'.

새로운 한 주일을 시작하는 여러분께 공짜 선물로 띄웁니다. 

http://www.ted.com/talks/lang/ko/roger_ebert_remaking_my_voice.html

한글 자막 지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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