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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플래너 이준길, 나만의 길을 찾는 법.

by 김민식pd 2012. 9. 12.

(지난번에 올린 희망플래너와의 인터뷰 후편입니다.)

 

2012/09/10 - [공짜 PD 스쿨/공짜 미디어 스쿨] - 희망플래너 이준길 님의 삶에서 발견한 희망

 

북한 식량 문제 전문 블로거로서 2008년에는 다음뷰 블로거 8만명 중에서 1위에 오른 이준길씨, 그러나 파워블로거가 되자마자 영장이 나와 군에 입대하게 된다. 그리고 전역 후 그의 삶에는 새로운 변화가 찾아온다. 바로 청춘 콘서트와의 만남.

 

작년 한 해, 희망플래너의 블로그는 안철수 신드롬을 만든 청춘 콘서트의 지상중계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어떤 계기로 청춘 콘서트를 알리게 되었나요?

 

군대 있을 때, 나이가 많아 후임병들의 상담역을 많이 했는데, 군대 내에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사병들의 자살이었습니다. 전역 후에는 다시 평화재단에서 봉사를 하다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 뉴스를 봤습니다. 굶어죽는 북한 어린이들도 안타까웠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남한 청년들이 많다는 것도 가슴 아팠습니다. ‘청년들에게 희망을 줄 방법이 뭐 없을까?’ 고민하다 평화재단에서 기획한 것이 안철수, 박경철, 법륜 스님, 김제동, 김여진 씨가 나오는 청춘콘서트였습니다. 2011성인의 날에 경희대 강당에서 첫 강연을 했는데요, 온라인 신청으로 4000명을 모집했는데 1시간 만에 매진되었습니다. 청춘들의 반응이 좋아 이 좋은 강연, 서울에서 한번 하고 말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전국 28개 지역에서 릴레이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저는 한 곳 빼고 다 쫓아다녔습니다.”

 

청춘콘서트가 대박이 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전에는 아무도 청춘들의 고민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없었던 거죠. 안철수 원장님이 청춘들의 하소연을 일일이 들어주며, 미안하다는 얘기를 되풀이했습니다. ‘희망이 없는 현실을 물려줘서 기성세대로서 정말 미안합니다. 힘내세요. 우리 다 같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청춘 콘서트 멘토들의 이야기를 강연장에 온 사람에게만 들려주는 것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강연 내용을 블로그로 소개해서 더 많은 청춘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청춘콘서트만 27차례 쫓아다녔습니다. 먼 지방에서 강연이 있는 날에는 오전에 서울에서 출발해 오후에 강연장에 도착해서 콘서트 준비를 돕구요. 저녁 7시에 강연이 시작되면 무대 뒤 계단에 앉아 강연 내용을 받아 적고 밤 열시에 강연이 끝나면 인근 피씨방으로 자리를 옮겨 새벽 3시나 4시까지 글을 정리해서 올리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강연의 내용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강연을 들은 청년들의 소감을 들어보고 그 느낌을 전달하는 것도 꼭 필요한 저만의 작업이었습니다. 그렇게 매번 올린 청춘 콘서트 지상중계가 베스트 글이 되고, 또 청년들의 소감을 모아 우리가 청춘콘서트에 열광했던 이유라는 글을 썼는데, 그것도 베스트 글이 되었습니다.”

 

안철수 "인생을 선택할 때 원칙 3가지http://hopeplanner.tistory.com/133

우리들이 청춘콘서트에 열광했던 이유http://hopeplanner.tistory.com/195

 

 

2011년 안철수 신드롬의 도화선이 된 청춘콘서트의 인기에는 파워블로거로서 열심히 전국을 누비며 강연 내용을 널리 알린 준길 님의 공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돈을 주는 일도 아닌데 자신이 직접 교통비까지 들여가며 전국을 쫓아다니는 일, 결코 쉽지 않을 텐데요. 준길 님이 평화재단에서 자원봉사를 한 것도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어떤 계기로 이런 삶을 선택하게 되었을까요?

 

저는 늘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10년 전 교대를 다니며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임용고시 경쟁률이 거의 11이어서 교대를 나와 초등 교원이 되는 것이 비교적 쉬운 시절이었습니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아프간 난민 구호 활동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아프간에서는 미군과 탈레반간의 전투로 전쟁 고아가 많이 생겼는데, 그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는다는 소식에 긴급 구호 활동을 떠났습니다. 식료품과 구호물자를 받아든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찍겠다는 생각에 아이들이 모여 있는 난민촌 막사 안에 들어갔는데요. 천막 차양을 걷고 들어서는 저를 보자 아이들이 놀라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습니다. ‘내가 그렇게 인상이 험악한 편인가?’ 실망한 저의 표정을 보고 현지 분이 사정을 설명해주시더군요. 전쟁통에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라 제가 어깨에 멘 비디오카메라를 총으로 오해하고 저렇게 놀란 거라고. 그때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나의 소명은 부모가 돌봐주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없이 굶어죽는 아이들을 돕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임용고시를 포기하고 자원봉사자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끝으로 20대들을 위해 한마디 해준다면?

 

무엇이든 경험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블로거가 되기 전에는 컴맹에 이메일도 쓸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도 내 속에 숨겨진 가능성과 소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자신의 진정한 재능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해보세요. 누구나 다 가는 제도권의 길을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만의 길을 찾는다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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