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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첫 직장을 성공적으로 그만두는 법

by 김민식pd 2012. 8. 21.

요즘 MBC 파업 징계자와 해고자들은 운 좋으면 하루에 김재철 사장을 세 번 본다. 로비에 앉아서 농성을 하는데, 앞으로 지나가는 그 반가운 얼굴. 사장을 향해 퇴진하시라고 권한지 벌써 반년이 넘었건만 꿋꿋하게 버티는 우리 김재철 사장님. 오늘은 사장님께 직장을 그만 두는 법에 대해 말씀드릴까 한다. 나는 1994년에 다니던 첫 직장을 그만두고 나온 적이 있다. 내 생애 가장 잘 한 일이 있다면, 첫 직장을 그만 둔 일이다. 

 

연애 비법 특강 중 가끔 막장 버전 연애 비법을 강의할 때가 있다. “기왕에 연애를 하려면 적어도 세 가지는 해봐야 합니다. 짝사랑, 양다리, 불륜, 말입니다.” 짝사랑에서 끄덕끄덕하던 여학생들, 양다리에서 살짝 갸우뚱 하다가, 불륜 소리에 미간이 찌푸려진다. 얼른 수습에 들어간다. “, 제가 말하는 불륜은 패륜의 사랑, 즉 부모님의 반대도 무릅쓰는 사랑 말입니다. 짝사랑, 모든 사랑의 시작이죠. 사람은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죠? 그러니 양다리도 걸쳐봐야 합니다. 부모님이 반대하는 불효의 사랑? 이것도 저질러봐야 합니다. 내 인생 내가 사는 거지, 부모님이 대신 살아주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사랑도 좋지만, 양다리에 패륜도 저지르라는 얘기에 마냥 수긍할 수는 없는 노릇, 학생들의 표정이 야릇해질 때 쯤 수습 굳히기에 들어간다., 사실 방금 이야기한 세 가지는 원하는 직업을 구하는 자세랍니다. 내가 공부한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도 해보고 싶은 직업이 있으면 짝사랑도 해보고요. 다니는 회사 몰래 다른 회사에 양다리도 걸쳐보고요. 부모님이 결사 반대하셔도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도 내봐야합니다.”

 

나는 첫 직장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면서 프리랜서의 삶을 짝사랑했다. 많은 직장인들이 근무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한다는 점에서 프리랜서의 삶을 동경한다. 짝사랑이 지겨워질 무렵 나는 양다리를 걸쳤다. 프리랜서로 영어 통역사를 꿈꾸던 나는 저녁에 종로에 있는 통역대학원 입시반 수업을 들었다. 저녁 6시에 퇴근하면 전철을 타고 학원으로 갔다. 김밥으로 간단하게 저녁을 때우고 7시부터 2시간 동안 수업을 들었다. 그 후엔 집 근처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밤 12시까지 공부했다. 그러고 아침 6시에 다시 일어나 회사로 출근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원 선생님을 찾아갔다. “제가 직장을 다니는데요. 회사 그만두고 6개월 동안 열심히 준비하면 올해 통대에 합격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엄하기로 유명한 선생님은 지긋이 넥타이 차림의 나를 보다 말했다. “확률은 반반이지만, 한번 해볼 만 합니다.” 다음 날 나는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사실 첫 직장을 그만두는 데 있어 최후의 관문은 부모님이었다. 직장에 사표를 쓰겠다고 말씀드렸다가 아버지가 홧병으로 쓰러질 뻔했다. ‘멀쩡한 회사를 그만둔다니 이게 무슨 소리냐. 아버지를 죽이려고 네가 작정을 했구나.’ 하지만 차분히 앉아 부모님을 설득했다. “어려서 아버지가 공부하라고 하셨을 때 안 한 게 뒤늦게 후회되어서 그래요. 이제라도 제대로 한번 해 볼 게요. 아버지가 반대하셔도 저는 회사 그만 둘 겁니다.” 부모님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밀어붙였다. 부모님 말 잘 듣는 효자가 되어 불행한 삶을 사는 것보다, 자식이 행복하게 사는 게 진짜 효도라고 믿었으니까.

 

첫 직장을 그만두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음의 도약 Leap of Faith’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두 눈 감고 몸을 앞으로 던지는 것. 스키나 보드를 탈 때, 경사가 가파르다고 엉거주춤 몸을 사리면 오히려 다치기 쉽다. 험난한 코스일수록 몸을 계곡 아래로 던져야 제동이 쉽게 되어 안전하다. 첫 직장을 그만 두는 것도 스키를 타는 것과 같다. 안 넘어지려고 버둥대다 더 크게 다친다. 평생 즐겁지 않을 직장에서 버둥버둥 버티는 것보다는 몸을 던져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편이 낫다. 초보 때 넘어지는 것이 흉이 아니듯이 20대에 직장을 그만두는 것도 흠이 아니다. 두려울수록 힘차게 몸을 던져 박진감 넘치는 인생 슬로프를 한번 즐겨보자.

 

 

 

사장님께 권해드린다. 올해 초 퇴진하라고 했을 때 자진사퇴하셨다면 이렇게 서로 험한 꼴은 안 봤을 것 같다. 이제라도 물러나시는 게 현명한 판단이다. 어떤 정권이든 새로 들어서면 구악 척결, 부패 척결을 항상 슬로건으로 내거니, 이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어제도 두번이나 사장님 얼굴을 뵈었는데, 많이 힘들어보이셔서 마음이 짠했다. 사장님, 힘내세요! 용기를 내시고 사직서를 던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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