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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타이난 걷기 여행

by 김민식pd 2025. 7. 24.

지난 2월에 다녀온 3주간의 대만 여행기, 짬날 때마다 조금씩 이어서 올립니다. 타이난, 이번에 처음으로 간 도시인데, 참 마음에 들었던 곳입니다. 

저는 장기 여행을 다니면, 한 도시에서 3박 4일을 지내며 도보 여행을 즐깁니다. 도보 여행의 시작은 그 도시에서 가장 큰 공원입니다. 뉴욕이라면 센트럴 파크, 런던이라면 하이드 파크, 그런 곳에 가면 현지 주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어요. 타이난에는 타이난 공원이 있어요.

따듯한 남국의 풍광을 가진 공원이네요.

재미난 광경을 봤어요. 3대3 배드민턴 시합. 보통 단식 시합을 하거나 복식을 하면 2명이 한 팀인데요. 노인 전용 배드민턴 시합인가봐요. 여기서는 3명이서 한 팀이 되어 뜁니다. 그냥 자기 자리에서 근처에 오는 공만 받습니다. 왜 이렇게 시합을 할까요? 부딪히지 않을까요? 괜찮아요. 이분들 노인들이라서 절대 안 뜁니다. 뛰지 않으니 부딪칠 걱정도 없고, 힘도 덜 들어요. 노인을 위한 변칙 배드민턴인 거죠.  

탁구도 비슷해요. 나이드신 고수들이 한 팀이 되어 시합을 하잖아요. 크게 움직이지 않아요. 받을 수 없는 공은 받지 않고, 칠 수 없는 공은 치지 않습니다. 승부에 과도한 욕심을 내지 않아요. 다만 시합을 즐기는 자세로 합니다. 이게 나이듦이 주는 여유라고 생각해요. 

공원 가운데 호수가 있고요,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붉은 기둥으로 된 정자도 있어요.

호수 가운데에는...

거북이와 두루미도 있네요. 동방삭은 어디에 있을까요?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이 노래 아시는 분?"  제가 어렸을 때 좋아하는 코미디 코너에서 나왔던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습니다.

다음으로 간 곳은 타이난 문화 창조 공원.

일제 강점기 당시 철도국 창고였던 곳을 개조해 만든 문화공간입니다.

특별히 볼만한 건 없는데요. 그래도 잠시 쉬어가기 좋아요. 사람들은 옆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지만, 저는 공원 한쪽 벤치에 앉아 쉽니다. 소비를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짠돌이의 삶. ^^

오전 반나절을 걸어다니니 배가 고프네요. 제가 좋아하는 쿠라스시를 찾아가 점심을 먹었어요. 타이난 기차역에서 멀지 않아요.

생선회와 초밥을 좋아하지만 혼자 다니는 제게 안성맞춤인 곳. 일본의 초밥 체인점인데, 대만의 대도시에도 입점해있어요. 무엇보다 혼밥할 수 있는 좌석이 있어 좋아요.

점심 먹은 후, 푸중제에 갔어요.

공자묘 앞에 외국인 단체 여행자들이 보여 갔더니 마침 타이난 프리 워킹 투어를 하고 있네요! 영어로 진행하는 투어인데, 타이난에도 있군요! 공자의 가르침을 유럽 여행자들에게 대만인 가이드는 어떻게 설명할까요?

중국은 엄청나게 넓은 땅에 수많은 이민족들이 살았습니다. 각각의 문화가 다르고 종교나 신앙도 달랐지요. 대륙을 통일한 후 왕들은 다른 민족을 한데 아우를 통치 이념을 찾는데요. 제자백가의 다양한 사상 중 유가, 즉 공자의 가르침이 눈에 띕니다. 충효를 강조하는 유교가 지배적인 이념으로 삼기에 가장 적합합니다. 왜냐하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라는 이야기니까요.

이 분, 공자의 가르침을 영어로 설명해주시는데 아주 명쾌하고 좋았어요. 명나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무척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관리를 선발할 때 유교 이념을 얼마나 공부했는지 공자님 말씀을 얼마나 잘 외웠는지로 시험을 봤어요. 그게 과거 제도이지요. 즉 왕에게 얼마나 충성을 서약할 수 있는지로 공무원 선발시험을 봤고, 심지어 만주족이 다스린 청나라도 이걸 그대로 이어갔습다. 만주족이 명을 무너뜨리고 보니, 나라의 통치 이념으로는 유교가 아주 편리한 거죠. 그래서 청나라도 유교를 숭상했습니다. 공자는 살아생전에는 성인으로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돌아가시고 수백년이 흐른 후, 중국 대륙을 통일한 왕과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라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이분 오른쪽에 있는 비석이 타이완 공자묘 앞에 세워진 하마비입니다. 청나라가 세운 공자묘인데요. 청나라 관리라도 여기서는 말에서 내려 공자님에게 예를 갖추어라고 지시한 거죠. 청나라 황제가 공자를 숭상하는 걸 보임으로써 명에 이은 지배를 공고히 했습니다. 비석에는 한자와 함께 당시 여진족의 글자가 새겨져 있어요. 청나라는 유교를 받아들이고 숭상한 덕분에 중국 본토를 오래도록 통치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 역시 유교를 받아들였습니다. 관료가 되기 위해서는 과거 준비를 해야 하는데 조선에서는 쓰지 않는 한자로 글을 읽고 쓸 줄 알아야 하는데요. 이게 엄청 힘들었습니다. 한자를 배우고 익히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게 자연스레 계급을 나누는 수단이 되지요. 어린 시절 10년 이상 한자 공부를 할 수 있는 계급만이 한자를 읽고 쓸 수 있어요. 

중세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정교일치의 시대에 가톨릭이 왕과 함께 권력을 양분했는데요.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실제로는 쓰이지 않는 라틴어를 공부해야 했습니다. 미사도 라틴어로 봤기에 일반 신도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걸 바꾼 게 루터의 종교 개혁이지요. 사제만이 독점하던 정보 권력을 일반 대중에게 나눈 겁니다.  

과거에는 동서양 모두 지배계급이 문자를 독점하고 정보를 독점했습니다. 세종대왕이 놀라운 점은 여기에 있어요. 그 정보 독점을 깨고 일반 백성도 쉽게 읽고 쓰도록 하기 위해 한글을 창제했지요. 베트남에 가보면 문자를 만든 게 프랑스인 신부입니다. 베트남의 고도인 후에에 가보면 수백년 전까지 베트남의 지배 계급도 한자를 썼어요. 일반 백성들은 글을 몰랐어요.

21세기, 이제 정보는 모두의 것이 되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무엇이든 배우고, 어떤 책이든 읽을 수 있어요. 대학 교육 또한 원하면 무상으로 온라인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들 무엇을 하고 있나요? 학문을 공부하고 지식을 탐구하고 있나요? 우리는 정보의 시대에 빠져 오히려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 아닐까요?  

타이난 시내를 걷다 보면 일본 식민지 시절의 건물들을 많이 만납니다.

일제 시대에 지어진 관공서 건물입니다. 나름 잘 지어진 건물이고 양식미가 있어요.

맞은편에 있는 이 건물도 똑같이 일제 시대에 지었는데요. 무척 허술하게 지어진 게 티가 납니다. 왜 그럴까요? 위의 건물은 일본의 전성기에 지어졌고, 다음 건물은 2차 대전으로 자원을 낭비하고 패색이 짙어지던 시절에 지어졌거든요.

하야시 백화점. 일제 시대에 지어진 상점인데요. 일본식 이름을 아직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우리라면 한국식 이름으로 바꿨을 텐데요. 한국과 대만 똑같이 일본 식민 통치를 겪었는데, 대만 사람들은 일본에 대해 더  우호적입니다. 왜 그럴까요? 대만인 가이드의 영어 설명을 들어보았습니다. 

2차 대전 패망과 함께 일본의 식민 통치가 끝나고 국민당 통치가 시작되었는데요. 이때가 더 가혹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일본 통치 시절이 더 나았던 거죠. 국민당은 기본적으로 백성들에 대한 침탈이 심했습니다. 중국 본토에서 왜 공산당에게 졌을까요? 인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으니까요. 루즈벨트가 그랬답니다. 국민당은 백성들을 상대로 노략질하는 집단이라고. 대만에 와서도 마찬가지였지요. 경제가 힘들어지고, 고위직은 대만 현지인들을 배제하고 국민당이 독점했습니다. 그래서 저항 운동이 일어났어요.

일본인 아버지와 대만인 어머니를 둔 변호사의 비극이 있어요. 일본이 패망하고 물러갈 때, 아버지의 나라로 갈 것이냐, 어머니의 나라에 남을 것이냐, 대만에 남을 것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대만사람이라 생각했고 모국에 남겠다고 했지요. 국민당이 공산당과의 싸움에서 패한 후, 대만으로 쫓겨와 대만을 통치하기 시작합니다. 국민당의 부정부패로 인해 대만인들의 저항이 시작되고, 시청사로 군중이 몰려가 폭동을 일으키려합니다. 그 때 그는 사람들을 말렸습니다. "이러다 국민당에게 폭력 진압의 빌미를 주면 안 됩니다." 경찰과 군중 사이에서 평화적인 해결을 유도했답니다. 나중에 국민당이 폭력 진압을 시작하고, 그를 잡아다 시청 앞 광장에서 총살형에 처합니다. 대만 시위대의 지도자라고요. 아마도 아버지가 일본인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후 오랫동안 대만에서는 계엄령과 국민당 독재가 이어집니다. 대만의 민주화도 참 험난한 길을 걸어왔네요.

개인적으로 참 많이 배운 시간이었는데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적감루에서부터 시작하는 투어를 처음부터 들어보고 싶어요. 때로는 현지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그 도시의 역사를 접하는 것도 재미있거든요. 영어로 진행하는 타이난 시내 도보 투어~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들어보고 싶어요.

과거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우리의 현재를 반추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대만 여행기, 다음편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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