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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세계여행

카파도키아 풍선 여행

by 김민식pd 2018. 12. 11.

2018 터키여행 2일차

풍선 여행 가는 날입니다. 열기구를 타고 카파도키아의 일출을 보기 위해 이른 아침에 출발합니다. 출발 시간이 새벽 5시 10분인데, 일어나니 4시더군요. 출장 오기 전날도 그랬어요. <토크노마드> 팀의 아침 집결 시간이 오전 8시 인천공항이었어요. 너무 설렌 탓인지, 중간에 깼는데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어요. 잠은 안 오고 말똥말똥 뜬 눈으로 샜어요. 눈만 감으면 런던의 풍광의 촤르르륵 펼쳐지는 통에 흥분되어 잠이 오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도 소풍 전날 잠이 오지않아 뜬눈으로 밤을 새다 급기야 새벽 2시에 울었어요. 이러다 늦잠 자서 학교에 지각하는 바람에 소풍 못 쫓아갈까봐...  놀러가기 전날 흥분으로 잠을 설치는 건 나이 50이 넘어도 여전하군요.


컴컴한 새벽 4시 50분부터 나가서 기다립니다. 5시 10분에 숙소 앞에서 픽업이라고 했는데, 다섯 시 반이 넘도록 차는 오지 않아요. 숙소를 통해 예약했으니 연락처도 따로 없고, 그냥 기다리는 수 밖에 없어요. 생각해보면, 기다리는 게 제 직업입니다. 촬영장에 나가면, 배우가 오기를 기다리고, 촬영 스탭이 모이기를 기다리고, 조명이 세팅되기를 기다리고, 배우의 메이크업이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기다릴 때는 마음 편하게 잘 기다려야 해요. 괜히 조바심을 내고 짜증을 내면 안 됩니다. 35분에 차가 도착했습니다. 역시 느긋이 기다리면 모든 일은 해결됩니다.

터키 벌룬이라는 열기구 여행사 2층에서 간단한 조식을 먹습니다. 

1층에 자리가 없어 2층 어두운 구석에 혼자 앉아 아침을 먹습니다. 갑자기 의자 뒤에서 누가 등을 툭 칩니다. 순간 오싹했어요. 내 뒤에는 아무도 없는데? 돌아 보니 검은 고양이 한마리가 탁자 아래로 총총히 사라집니다. 2층에서 혼자 밥먹는 저를 보고 슬쩍 엉기려고 왔다가 읽던 책에 정신이 팔려 눈길 한번 주지 않으니 슬쩍 치고는, 도도하게 사라지는 군요. '나, 음식 구걸하러 온 거 아니거든?'

터키 여행하며 느낀 점, 이 나라에는 길고양이가 참 많아요. 애묘인들이 참 좋아할 것 같아요. 낯선 동물이 내게 보여주는 신뢰가 반갑고 고마워요. 동물들에게 적의를 풍기지않는 인간으로 살고싶어요.

아침 먹고 기다리는데, 가이드가 와서 열기구 여행은 바람의 세기나 방향을 고려해야하므로 날씨를 지켜보며 조금 더 기다려야한다고 영어로 설명했어요. 옆에 중국인 커플이 있는데, 여자가 거의 동시통역하듯 남자친구에게 설명해주더군요. 남자친구는 영어를 거의 못하는 눈치였어요. '아, 저러면 한쪽이 많이 피곤할 텐데...'
문득 아내와 결혼한 이유 중 하나가 떠올랐어요. 저는 영어를 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를 바랐어요. 여행을 다니거나 평소 생활을 할 때도 불편함이 없어요. 통역대학원에서 만난 후배와 결혼한 덕분에 해외 생활도 자주 하고, 여행도 많이 다닙니다. 해외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여행도 이해해주기 쉽거든요.


우리가 타고갈 풍선에 더운 바람을 넣습니다. 실제로 옆에서 보니까 진짜 크군요. 열기구 크기가 3층 건물만 해요.

열기구에 타고 위로 올라갑니다. 

계곡 위를 풍선을 타고 날아갑니다.


카파도키아 상공에 무수한 풍선이 떠올랐어요. 그 자체로 장관입니다.


열기구를 타고 오르면 마치 구글 어스를 확대해서 본 것처럼 머리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어요. 같은 풍경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전혀 생경하지요.

뾰족뾰족한 바위가 많고, 길쭉한 기둥 모양의 바위도 있어요. '요정의 굴뚝' Fairy's Chimney라고 불리는 카파도키아의 독특한 지형을 만든 건 두 개의 화산입니다. 수천 년 전에 화산 두 개가 분화하면서 이 일대가 화산재로 뒤덮입니다. 용암이 굳으면서 단단한 현무암이 만들어지고, 화산재가 쌓여 부드러운 응회암이 만들어집니다.

화산활동의 여파로 지진이 일어납니다. 바위 틈이 갈라지고 계곡이 생겨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강이 흐릅니다. 경도가 다른 두 바위는 침식의 속도가 달라요. 물과 바람의 침식으로 절벽의 일부가 갈라지고 무너져 원뿔 모양의 바위 기둥이 남았어요. 오랜 세월에 걸친 침식과 풍화 작용으로 지구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이한 모양의 바위계곡이 형성되었습니다.

수천 년 전, 사람들은 이 지역의 바위가 유난히 부드럽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화산재가 굳어 만들어진 바위인지라 쉽게 속을 파낼 수 있어요. 부드러운 암석을 파내어 동굴을 만들어 그 속에서 살기 시작했어요. 동굴 속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듯하거든요. 식구가 늘어나면 방을 더 만들면 되고요. 아버지의 수고로 뚫은 굴은, 지속가능한 주거 형태인지라 대대손손 물려받을 수 있어요. 조상의 손길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집인 거죠.

카파도키아는 시간이 만든 땅이에요. 우리 삶에서 가장 위대한 것을 만드는 재료는 시간입니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인간은 바위에 구멍을 뚫어 집도 만들고, 교회도 만들고, 요새도 만들 수 있어요. 

화산 폭발이 만든 지형과, 선조들이 수백년 간 만든 동굴에, 현대 기술이 만든 대형 열기구까지. 카파도키아 풍선 여행은 인간과 자연이 공조해서 만든 위대한 작품을 감상하는 특별한 경험이에요. 

빈 들판을 향해 날아갑니다.

저기 풍선을 실고갈 트럭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네요.

줄을 당기며 즐거워하는 승객들의 모습입니다.

열기구에서 더운 바람을 빼는 것도 시간이 꽤 걸립니다.

바닥에 펼쳐진 풍선을 보니 정말 크기가 어마어마 하군요.

조촐한 파티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어요.

비행을 안전하게 마치고 다시 땅으로 무사히 귀환한데 대해 감사하는 의미로 다같이 샴페인 축배를 듭니다.


풍선 여행 인증서입니다. 

이날 최고고도는 500미터였고요. 레드밸리, 로즈밸리, 화이트밸리 등 3대 계곡의 상공을 55분간 비행했어요. 여행경비는 150유로였고요. (상당히 비싼 편인데요, 가격 담합이 잘 되어 있어 싼 상품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대목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글을 올릴게요.)

수백년 전 선조들이 바위를 깎아 집을 만들었어요. 그들이 만든 동굴 집은 이제 관광 코스가 되어 후손들을 먹여 살리고 있고요. 인간은 참 위대한 동물이에요. 시간만 주어지면 무엇이든 할 수 있거든요. 시간을 견디는 그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나는 시간을 들여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여행을 하며 그 고민을 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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