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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국내여행

바다를 보러 간 날

by 김민식pd 2018. 10. 29.

2018 자전거 전국일주 7일차 여행기


(지난 추석 연휴에 다녀온 자전거 여행기를 이어 올립니다.)


부산에 도착한 다음날, 하루 종일 쉽니다. 자전거 국토 종주 자체에 의미를 두는 이들은, 부산에 도착하는 순간, "국토 종주 끝!" 하고 버스에 자전거를 실고 돌아가는데요. 부산은 그 자체로 최고의 여행지입니다. 자전거로 애써 여기까지 왔으니 하루나 이틀 구경하면서 놀다 가도 좋아요.

아침에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습니다. 아들이 왔다고 활전복으로 장조림을 만들고 조기를 구워주십니다. 나이 쉰이 넘어 자전거를 타고 내려 온 철부지 아들도 반가우신가 봅니다. 

아침 먹고 조조영화 보러 극장에 갑니다. <서치>를 봤어요. 정말 놀라운 영화로군요. 컴퓨터 화면으로 시작해서 화면으로 끝납니다. 아버지와 딸의 페이스톡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스피디하게 달려갑니다. 아이디어도 대단하지만, 끝까지 반전을 거듭하며 몰아치는 대본의 힘도 놀랍네요. 

해운대 메가박스에서 영화를 본 후, 근처 초밥집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바다에 왔으니 회를 먹고 싶은데, 혼자 회를 먹기 쉽지 않으니 회전 초밥으로 대신합니다. 점심을 먹은 후, 만화방에 갑니다. 제가 좋아하는 만화방 놀숲이 해운대에도 있네요. 동굴처럼 구조가 되어 있어 뒹굴며 만화보다 낮잠자기 딱 좋습니다. 열흘간의 자전거 전국일주 동안 빼놓지 않고 즐기는 일과이지요. 아침에 5시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6시부터 자전거를 타다 점심 먹고 졸리면 한숨 잡니다. 낮잠 자고 일어나면 다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하루를 이틀로 쪼개쓰는 기분이랄까요? 이제 다시 놀러갑니다.



제가 좋아하는 걷기 여행의 명소, 해운대 달맞이길로 산책을 갑니다. 미포철길이 생긴 이후, 더욱 인기를 끌고 있지요.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존 그리샴의 데뷔작, <The Firm>의 국내 번역 제목입니다.

'법률회사'라는 건조한 소설 원작의 제목을 잘 옮겼어요. 아마 출판사에서 많이 고민한 것 같습니다. '변호사 출신 신출내기 작가가 쓴 법정 스릴러인데 이걸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존 그리샴은 이 데뷔작 한 편으로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오르지요.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의 국내판 제목은 '야망의 함정'이었어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힘들 때마다 그 문구를 떠올렸어요. 

'그래서 나는 바다로 간다.'

서울에서 자전거로 출발해 문경새재를 넘고 낙동강 강변을 달릴 때에도 제 머릿속에는 해운대 바다가 선명하게 떠올랐어요. 내가 좋아하는 바다, 내가 좋아하는 자전거를 타고 가니 이보다 멋진 추석 연휴 선물이 또 어디 있겠어요. 항상 최고의 선물은 나 자신에게 줍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나니까요.


다음날 버스로 울진으로 이동합니다. 동해안 자전거길은 울진에서 고성까지 나 있거든요. 해운대 시외버스터미널에 들러 물어보니 울진으로 바로 가는 버스는 없네요. 포항에서 갈아타야한답니다. 포항가는 아침 첫 차는 7시 40분에 있군요. 짐칸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지 확인합니다. 시외 버스나 고속 버스 짐칸에 자전거를 실는 건 문제가 없어요.  다만 다른 짐이 있을 때는 다음 차를 기다려야 합니다. 옛날에는 자전거 화물 추가 운임을 5천원 내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일도 없이 그냥 탑니다. 자전거로 여행하기에 세상 참 좋아졌어요.  


해운대길을 걷다 잠시 쉴 때는 휴대폰에서 킨들 앱을 열고 미국인 저자 토마스 벨칙씨가 쓴 한국 자전거 여행 책을 읽습니다. <Cycling South Korea> 미국인 여행작가가 쓴 한국 자전거 여행기를 읽다보면 타인의 눈으로 우리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어요. 


벨칙에 따르면 한국은 놀라운 경제성장의 나라입니다. 그가 동해안 자전거길을 달려 부산 해운대에 도착했을 때 반기는 풍경은 하늘높이 솟아 있는 바닷가 고층 아파트입니다. 과거의 모습을 아직도 간직한 감천문화마을도 인상적이고요. 부산의 과거와 현재를 본 미국인 저자의 소감, 한국인은 정말 근면성실하다는 거죠. 짧은 시간에 놀라운 성취를 보인 사람들이니까요.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도 타인에 대한 친절도 잊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책 곳곳에는 그가 만난 한국인들의 친절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가 나와요. 나도 여행을 다닐 때, 그처럼 지혜로운 노인이 되어 너그러운 시선으로 타인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행은 추석 연휴 기간 다녀왔지만, 당시 메모해둔 느낌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현재 시제로 씁니다. 아마 수십년이 지나고 노인이 된 김민식이 다시 이 글을 볼 때는 마치 시간여행을 한 것 같겠지요?

다음 편에서 동해안 자전거 여행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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