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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국내여행

충주호를 달리다

by 김민식pd 2018. 10. 8.

2018 자전거 전국일주 3일차


추석 연휴를 맞아 자전거 전국일주를 합니다. 연휴 전날인 금요일에 휴가를 내고 아침 7시 버스를 타고 충주로 갑니다. 버스 터미널에서는 자전거가 조신하게 저를 기다리고 있네요. 며칠씩 자전거를 지방 버스 터미널에 묶어 놓고도 마음 편한 이유? 20년된 낡은 자전거라 그렇습니다. 

저는 어떤 취미를 할 때, 돈 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지난 여름엔 하도 더워서 바깥에서 운동하기 힘들더군요. 그래서 실내에서 운동을 하려고 동네 문화센터에서 탁구를 했는데요. 코치님이 첫 수업하던 날, 제 라켓을 보더니 "이런 건 공이 잘 안 나갑니다. 25만원짜리로 새로 사세요."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씀에 갑자기 탁구에 흥미가 확 떨어졌어요. 취미삼아 하는 운동에 장비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자전거 전국일주를 하려면 좋은 자전거가 필요할 거라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자전거가 비싸면, 여행이 불편해집니다. 밤에 시골 모텔 앞에 세워놓지 못해요. 자전거를 방에 들고 들어가야 해요. 아름다운 경치가 나타나면 자전거는 길에 묶어두고 전망대에 오르거나 정자에 누워 쉬었다 가거든요. 자전거가 비싸면 이런 여유가 사라지지요. 자전거의 가격이 뭐 중요합니까, 제 다리가 백만불짜리인데...^^ 무엇보다 어떤 취미를 즐기는데 장비로 경쟁하는 문화는 마음에 들지 않아요. 비싼 장비를 찾기 시작하면 끝이 없거든요. 항상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삽니다.

오전 9시, 충주 터미널에 내렸는데, 비가 주룩주룩 옵니다. 우중 라이딩은 위험하니 터미널 한쪽에서 책 읽으며 날이 개기를 기다립니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후 3시까지 비가 계속 온다네요. 극장에 갑니다. 메가박스 충주에 가서 <안시성>을 봤어요. 와우, 조인성은 정말 멋있군요. 안시성의 성주는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입니다. 가진 병력이나 무기를 탓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묵묵히 싸웁니다. 자전거 여행자도 마찬가지에요. 내게 있는 장비로 최선을 다해 페달을 밟습니다.      

오후 3시, 비가 그친 후, 자전거를 끌고 나갑니다. 충주호에서 남한강 자전거길은 끝이 나고 이제 새재 자전거길로 접어듭니다. 

비온 직후라 바닥에 물이 고인 곳이 많습니다. 이럴 때는 자전거를 최대한 느리게 탑니다. 빨리 달리는 기술보다 더 중요한 건, 최대한 느리게 넘어지지 않고 가는 것입니다. 물이 고인 곳을 빨리 달리면, 흙탕물이 튀어 자전거가 상하기 쉽고요. 옷이나 가방이 젖어 체온이 떨어집니다. 물이 고인 곳은 최대한 느린 속도로 지나갑니다. 속도가 느린데도 넘어지지 않는 게 진짜 요령이에요.   

자전거길 옆으로 예쁜 정자도 있고, 꽃길도 있어요. 

낮잠 한숨 자고 가면 참 좋겠는데, 비 때문에 늦게 출발한 탓에 내처 계속 달립니다.

충주시에 있는 수주팔봉입니다. 자전거 여행이 아니라면 모르고 지나쳤을 곳입니다.

지방에 오니, 몰랐던 풍광이 많은데요, 가슴이 아픈 것은 주위에 실패의 흔적이 너무 많다는 거죠. 카페며, 펜션이며, 길 옆으로 문 닫은 폐건물이 너무 많아요. 지방에 사는 인구가 줄어든 탓일까요? 


서울의 경우, 실패의 흔적은 바로 지워집니다. 새로운 도전자가 공간을 채우거든요. 비싼 땅값 덕분에 노는 공간이 없는데요.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리다보면 실패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서울과 지역의 균형 발전... 참 쉽지 않은 문제라고 느낍니다. 


1시간 반을 달린 후, 수안보 온천에 도착했어요. 오늘은 사이판 온천 호텔에서 잡니다. 자전거 여행자 특가로 3만원에 독실을 씁니다.

점심은 롯데리아에서 먹었어요. 혼밥의 성지지요. 혼자 테이블 차지하고 먹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곳. 7천원.

저녁은 굴떡국을 먹었어요. 8천원.

버스비를 포함한 오늘의 총경비는 6만원입니다.

비가 와서 늦게 출발하느라 하루 25킬로밖에 못 달렸네요. 


4일차부터 본격적인 라이딩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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