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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최저라고 말하는 삶

by 김민식pd 2018. 10. 18.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들 하지만, 분명 더 존경받는 직업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경원시하는 직업은 있어요. 불법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힘든 직업이 있지요. 인생 가장 밑바닥에는 어떤 직업이 있을까요? 일본 성인용 비디오에 출연하는 한 여배우가 소설을 썼어요.

<최저> (사쿠라 마나 / 이정민 / 냉수)

김봉석 평론가의 글을 보고 궁금했던 소설이에요. AV라면 일본에서는 어덜트 비디오라고 하지만 흔한 표현으로 포르노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불법인 산업입니다. AV 여배우가 쓴 AV 업계의 이야기. 일본에서 AV 산업 종사자들은 사회적 경시의 대상입니다.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을 쓰는 데는 어떤 동기가 있었을까? 사쿠라 마나가 소속된 AV 제작사 대표가 문득 물어요. "AV 이외에 하고 싶은 게 있나?" 그때 "뭔가 써 보고 싶어요."라고 답했더니, 그동안 써둔 글이 있으면 가져와 보라고 해요. 가져다 주니 보고 하는 말. 

"읽는 사람이 다 창피할 만큼 허접하구만." 그 순간 얼굴이 화끈거려 글쓰기가 죽을 만큼 싫어졌대요. 그런데 사장이 이어서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런데 말이야. 자네 굉장하군. 에너지가 넘쳐. 글을 써 왔다는 사실에 굉장한 에너지가 느껴지네. 놀랄 만큼 허접하지만 글쓰기도 근육 단련처럼 꾸준히 해야 하지. 열심히 근육을 단련하게."

아, 그렇구나. 글쓰기도 훈련이 필요하구나. 그래서 그는 SNS를 통해 매일매일 글을 올리기 시작해요. 그러다 출판사 편집자를 만나지요. 책을 쓰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제가 책을 쓰는 걸 보고, 방송사 PD라는 좋은 직업 덕분에 가능한 게 아닌가 라고 느낄 수도 있어요. 물론 직업의 도움도 크지요. 저는 어려서부터 꾸준히 책을 쓰고 문집을 묶어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그랬어요. 내가 PD가 되었기에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쓰다보니 PD가 되어 있더라고요. 직업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글쓰기의 욕망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건 표현해야 한다고 믿어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는 AV 여배우도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책을 써요. 제목이 아예 '최저'입니다. 당신의 직업도 최저인가요? 저는요, 진짜 최저는 무엇도 할 수 없다고 자포자기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글을 쓸 수 있다면, 최저는 아니에요. 


SNS로 글쓰기를 연습한다는 사쿠라 마나는, 저자의 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SNS에는 돈을 들이지 않고 글을 올릴 수가 있다. 내 말이 사람들 마음에 전해졌는지는 리트윗이나 좋아요 같은 형태로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기시화된 공감을 격려 삼아 매일 반복하는 것이다. 똑같이 '쓰는 작업'이라도 상품화되는 글과 '단순히 확산'되길 바라는 글의 근본적인 차이를 느꼈다. 첫 작품의 소재를 '여자 AV 배우'로 정한 것도 에로장이인 내가 AV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 상품으로 선택받으려면 이것밖에 없다고 굳게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도록 진심을 담을 수가 있었다.

(위의 책 238쪽)  


진심을 담은 글, SNS를 통해 연습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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