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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실연의 고통을 잘 보내는 방법

by 김민식pd 2018. 9. 7.

방명록에 고민 상담 신청사연이 올라왔어요.


Q:

안녕하세요...우연히 세바시 강연을 보고 피디님의 책은 모두 읽었습니다. 여러가지로 많이 배울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답답한 마음에 조언을 구하고자 글을 남깁니다 .

저는 대학졸업후 2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다가 몇 달 전 너무 힘들어서 퇴사 후 백수생활중입니다. 40대초고 여자 싱글입니다. 처음엔 이것저것 해보고싶은것도 있고 뭐라도 할 수 있을 것같았는데, 꽂히고 좋아하는일이 없어 결국 무기력해지는 기분으로 매일 아침 힘들게 눈을 뜹니다.


그냥 좀 쉬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지만, 반면에 이렇게 늘어져있는 저를 용납못하는 제가 또 있습니다. 당장은 회사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도 않고 사실 구해도 들어갈 수 없을 거 같은 맘이 더 커서 괴롭고, 그렇다고 이렇게 있는 저를 가만히 둘수도 없고..... 괴롭습니다. 

뭔가 열중해서 열심히 해보라는 pd님의 강연, 글, 다 옳으신 말씀이지만, 전 뭔가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안드네요.. 최선, 노력, 이런거를 꼭 하고 살아야되나 싶기도 하고요.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살아야할지, 각자 자기가 빛나는 자리가 있다는데 그 자리가 저에게도 있는건지... 글쓰기를 해보려하는데 그냥 넋두리만 쓰게 되네요..

바쁘시겠지만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 한말씀해주시면 큰 힘이 될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A: 

방명록에 올라온 글을 읽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어요. 뭐라고 답을 드려야할지 난감하더군요. 저는 가끔 이렇게 반성합니다. 사람들에게 너무 열심히 살라고 강요하는 게 아닌가 하고요. 저는 운좋게도 경제 활황기에 태어났어요. 교육열이 높은 부모님 밑에서 고등교육을 받았고, 98년도 IMF가 터지기 전에 취업에 성공했지요. 대한민국 대기업의 정규직 남자. 여러모로 운이 참 좋아요. 

제가 매일 책을 읽는 이유는, 먹고 살만하니 그렇습니다. 매일 글을 쓰는 이유는 삶의 여유가 있어서 그래요. 제가 열심히 즐기며 사는 건 타고난 운의 영향이 큽니다. 질문을 올리신 분과 저는 주어진 환경이 다르고요. 저보다 훨씬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게 일하며 살아오셨을 거예요. 회사에서도 저보다 더 많은 노력을 들여도, 저보다 덜 인정받을 수 있고요. 그게 현실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감히 님에게 뭐라 드릴 말씀이 없더라고요. 하고 싶은 게 없을 수도 있고, 열정이 바닥나 무기력할 수도 있으니까요. 답을 드릴 자신이 없어, 그냥 모른 척 지냈어요. 죄송해요. 저는 그래요. 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붙들고 너무 오래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냥 평소에 제가 좋아하는 일, 즐기는 일을 하며 그냥 삽니다. 대개의 경우, 독서지요. 며칠 전 저자님의 북토크에 갈 일이 있어 읽은 책이 있어요. 

<마음아, 넌 누구니> (박상미 / 한국경제신문)

'나조차 몰랐던 나의 마음이 들리는 순간'이라고 부제가 나와있네요. 마음치유 전문가인 박상미 선생님이 실연당한 이에게 들려주는 위로가 있어요.


실연을 당하면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두려워지고, 혼자 집에 머물고 싶고, 이불 밖은 두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울과 무기력이 수시로 엄습합니다. 물귀신처럼 나를 과거의 늪으로 끌고 들어가려할 것입니다. (중략) 이별한 사람을 더는 미워하지 마세요. 잘 보내고 그를 축복해줄 때, 더 멋진 사랑이 내게 또 찾아옵니다.

둘이 있을 때 하지 못했으나,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을 구체적으로 노트에 써보세요. 나는 좋아하지만 상대가 싫어해서 같이 먹지 못했던 음식도 써보세요. 둘이어서 못 했지만 혼자여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요. 당분간은 혼자여서 누릴 수 있는 장점에 집중하세요. 운동도 좋고, 여행도 좋고, 춤을 배우는 것도 좋고,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다니는 것도 좋습니다. 마음이 많이 아프면 상담을 받는 것도 좋아요. 중요한 것은, 오늘 바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사고 싶었던 옷이나 물건을 사서 자신에게 선물도 하세요. 지금 나는 몸과 마음이 아프고 위로가 필요하니까요. 나를 충분히 위로하고 아껴주는 것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투자입니다. 나 자신을 회복하기 위해서 당분간 오로지 나만 생각하세요. 그 사람을 '잘 보내는' 방법이자, 홀로 남겨진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입니다.

(위의 책 143쪽)    


문득 이 글을 방명록에 대한 답글로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사와의 이별도 이별이거든요. 원하는 기업 면접 전형에서 낙방한 건 짝사랑하는 여인에게 실연 당한 것과 비슷하지요. 그러니 박상미 저자의 충고대로 살아보시면 어떨까요? 가까운 문화센터에서 새로운 취미를 찾아보고,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찾아보고, 여행 사이트에서 저가 여행 상품을 찾아보고. (참고로 저는 요즘 터키 여행에 관한 책을 뒤져보고 있어요. 환율이 갑자기 떨어져서 여행 물가가 기록적으로 저렴하다는 이야기에...)    

알아요. 이것이 명쾌한 답은 아니라는 것을...

삶에서 명쾌한 답은 없어요. 그런 걸 줄 수 있는 사람도 없고요.

고민이 생기면 저는 책을 읽습니다. 이 책 저 책, 다양한 책 속에서 답을 찾아봅니다

이건 저만의 방식이고요. 제가 시간을 보내는 방식입니다.

님은 어떤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시렵니까? 나이 들어 너무 늦은 때에 이런 일을 겪는 것보다 어쩌면 지금, 다시 일어날 힘이 있을 때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요. 

이번 기회에 잃어버린 즐거움을 찾아내시길, 응원합니다. 즐거움의 힘으로 활력을 재충전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기를 감히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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