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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아님 말고의 정신

by 김민식pd 2018. 8. 28.

다양한 직업에 도전한 터라, 나름 다양한 프로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업사원, 통역사, 예능 PD, 드라마 PD, 작가, 동기부여 전문 강사 등등. 경력만 보면, 도전하는 직업마다 다 뜻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실은, 실패한 꿈이 훠~얼씬 더 많아요. 

대학 다닐 때, 꿈은 '제비'였어요. 지금은 사라진 단어, 제비족. 강남 가서 사모님을 모신다는 그 제비. '그게 무슨 꿈이야?' 싶은 분도 계시겠지만, 20대의 저는 무척 진지했어요. 전공 공부가 너무 적성에 안 맞는 거예요. 공부는 재미가 없고, 당시 저는 춤추는 재미에 빠져 있었어요. 춤추는 게 이렇게 재밌는데, 이걸로 먹고 사는 방법은 없을까? 하다 사설 댄스 강습 선생님의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나이트클럽에 가서 "사모님, 한 곡 땡기시겠습니까?" 하고 춤을 가르쳐 드리는 거죠. (여기서 풋! 하고 이 양반이 웃기려고 개그 글을 쓴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정말 스무살 때 진지했다니까요?) 그 꿈을 포기하게 된 건... 현실 자각 덕분이었지요.... 제 외모로는 제비노릇이 불가능하더군요. ㅠㅠ '아, 외모만 좀 더 받쳐줬더라면!'

SF 작가를 꿈꾼 적도 있어요.  '뉴스타파'에 'UFO추격자들'이라는 시사 풍자 코믹 SF를 연재했지요. 4대강 사업은 UFO의 수중 이동 통로 확보를 위한 사업이다! 뭐, 이런 개그를 치려고 했는데, 야심차게 블로그에 올린 SF 단편은 반응이 없고, 가끔 올린 영어 공부 비결에만 댓글이 달리더군요. 그래서 영어 학습서를 쓰는 걸로 방향을 틀었어요. 

저는 꾸준히 실패합니다. 실패가 힘들거나 괴롭다고 느끼지는 않아요. 어차피 다 재미로 하는 일이거든요. 춤을 배우는 것도, SF 꽁트를 쓰는 것도... 결과가 부실해도, 과정을 즐겼으니 된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얼른 포기하고 다른 꿈으로 옮겨 갑니다.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 예담)을 읽었어요. 독서가 즐거워지는 여러 방법이 소개됩니다. 그중에서 책을 즐겁게 읽기 위해 완독에 매일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 와닿았어요. 읽다가 재미없으면 언제든 덮고 다른 재미난 책을 찾아도 떠나라는 거죠. 완독의 의무감에서 벗어나야 독서가 즐거워요.


박찬욱 감독의 딸이 중학생이던 시절에 학교에서 가훈을 붓글씨로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고 해요. 우리 집 가훈이 뭐냐고 묻는 딸에게 박찬욱 감독이 '아님 말고'라고 했다죠. 정말 명쾌하고 좋은 말 아닌가요? '아님 말고'라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정말 인생이 행복할 수 있어요. 내가 이것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면, '아님 말고'라는 태도만 갖게 되면 다른 사람 앞에서 당당해질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 삶에서는 절박한 상황 때문에 '아님 말고'를 외치기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는 그렇지 않지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면 과감히 '아님 말고'라고 생각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아무리 유명한 책이라고 해도,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강추'한다고 해도 내가 읽을 때 재미가 없고 안 읽힌다면, '아님 말고'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저는 인생에서 꼭 읽어야 하는 책은 없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위의 책 35쪽)


독서도 그렇고 인생도 그래요. 시작했다고 해서 꼭 끝까지 가야 하는 건 아니에요. 가다가 아니면 돌아설 수도 있어야죠. 그래야 다음에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또 마음편히 책장을 펼치고,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도전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꼭 읽어야 하는 책도 없고, 꼭 해야 하는 일도 없어요. 모두가 좋다고 다들 입을 모아 말해도, 내가 재미없으면 언제든 그만 둘 수 있어요.

'아님 말고'의 정신, 좋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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