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예능의 간략한 변천사와 버라이어티 쇼의 종류에 대해 살펴보았다. 오늘은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5단계에 대해 알아보자.
1. 기획
- 편성 시간 확인
- 시간대 시청자 인구 분포 및 동향 파악
- 포맷 및 컨셉, 출연진 구상
예능 프로그램은 시청자 행태 변화에 민감하다. 메인 드라마는 지난 수십년간 저녁 10시 편성에서 바뀐 적이 없지만, 예능 프로그램은 방송중에도 시간대를 옮기기도 한다. 2000년대 초, 방송 3사 저녁 7시대를 장악했던 청춘 시트콤이 지금은 사라진 이유? 시청자 트렌드 변화 때문이다. 10년전에는 저녁 7시, 학교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TV앞에서 저녁 먹던 청소년들이 어느 순간, 시청율표에서 사라져버렸다. 학교에서 학원으로 직행하고, 밤 12시에 돌아와 다운로드로 시트콤을 시청하는 것이다. 결국 저녁 7시대 청소년 대상 시트콤이 폐지되고, 저녁 8시대 주부 대상 시트콤이 신설되었다.
예능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연출자는, 항상 방송시간과 시간대 메인 시청층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또는 역으로, 아이템을 먼저 기획한 경우라면, 시장분석을 통해, 주시청층이 많은 시간대를 잡아야 한다.
물론 시청자들의 성향 분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연출자 자신의 성향이다. 기획하는 이가 스스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아이템을 찾는 것이 최우선이다. '나한테는 재미없는데, 사람들은 재미있겠지...' 망상이다. 만드는 사람이 흥이 나지 않는데, 잘되는 예능 프로그램 없다. 본인이 하고 싶고, 즐겨하는 컨셉을 정하라.
예능 기획에 대해서는, 이전 글을 참고하시길.
2011/08/29 - [공짜 PD 스쿨] - PD, HOW? (프로그램 기획안 작성법)
2011/08/30 - [공짜 PD 스쿨] - PD, HOW? 2 (기획안 차별화 전략)
2. 구성
- 프로그램 큐시트 구성
- 방송 시간의 효율적 배분
코너 기획안이 잡히면, 그다음에는 큐시트를 구성한다. 누가 어떤 내용을 촬영하는지 촬영 구성안이다.
일밤에서 '러브하우스'를 연출 할 때, 가장 중요한 고민은 시간 배분이었다. 주인공 가족의 사연 소개, 수리해야 할 집 점검, 공사 장면, 수리한 집 공개... 이 모든 것의 시간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사연 주인공 소개가 너무 길면, 초반에 분위기가 처진다. 그런데 너무 짧으면, 사람들이 주인공 사연에 공감할 수 없어 시청 집중도가 떨어진다. 결국 연출은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3. 섭외
- 출연자 섭외 (MC, 패널, 게스트 스타, 사연 주인공 등)
'어려서 글쓰기를 좋아해서 예능 프로그램의 구성 작가가 되었더니, 하루 종일 전화 돌리는 일만 시키더라'는 푸념이 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예능 프로그램 구성 작가의 최대 경쟁력은 문장력보다는 섭외력이다. 드라마는 작가가 써주는 대로 배우가 대사를 하지만, 예능은 어떤 사람을 섭외하느냐가 어떤 글을 쓰느냐보다 더 중요하다.
MC의 진행 솜씨에 따라 예능 프로그램의 성패가 좌우되니, 섭외 역시 예능 연출의 중요한 역할이다. 이때 무조건 잘나가는 연예인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소 다양한 사람들의 성향과 장단점을 살펴두어 적재 적소에 출연자를 배치하는 것도 능력이다. '놀러와'에서 다양한 출연자를 독특한 특집으로 매주 엮어내는 것도 연출의 기획력과 섭외력 덕분이다.
4. 촬영
- 야외 촬영과 스튜디오 녹화
포맷의 특징에 따라 어떻게 촬영할지 정해야 한다. 개방된 야외에서 뛰고 구르며 생동감을 살릴 것인지, 스튜디오에서 자기들끼리 수다 떨도록 유도할 것인지, 촬영 방식에 따라 프로그램의 성격은 바뀐다. 예전에는 스튜디오에서 카메라 3대로 녹화하며 부조에서 카메라 커팅하는 방식이 주류였으나, 요즘은 편집 기술이 발달하면서 야외에서 멀티카메라(10대 정도)로 촬영해서 다수의 출연자를 동시에 잡아내는 방식을 선호한다.
5. 편집
- 편집, 자막, 음악 연출
카메라를 1대만 쓰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파이널 컷 프로나 프리미어같은 넌리니어 편집방식이 도입되면서, 10대의 카메라 화면을 동시에 보며 편집한다. 세월이 흘러 기술이 진보할수록, 예능 연출의 작업은 더 노동집약적으로 변해간다. 그래서 요즘은 방송사 조연출 중, 예능국의 노동강도가 가장 혹독하다. 물론 예능 대세의 시대라 그만큼 일이 많아진 탓도 있다. 결국 모든 기회는 위기를 동반하고, 모든 고난에는 보상이 뒤따른다.
시대에 따라 예능 프로그램이 변하듯, 편집 방식 역시 많은 변화를 겪었다. 1980년대에는 방송국 무대에서 가수와 MC가 서서 노래하고 이야기했다. 이때는 편집이 크게 없었다. 1990년대 들어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막이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연출의 중요한 역할로 등장했다. 무한도전의 김태호PD처럼, 연출자가 쓰는 자막이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하고, 재미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난 예능 PD는 우리 시대의 음유시인이라 생각한다. 500년 전 아무리 뛰어난 시인이라도 그의 글을 읽은 당대 사람들은 수백, 수천에 불과했다. 하지만 요즘 주말 예능 프로그램의 조연출이 화면에 자막을 쓰면, 수백만명이 그 글을 읽는다. TV 화면에 글을 입히는 예능 PD는, 우리 시대의 음유시인이다.
방송사 입사 시험에서 작문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 잘 쓰는 비결? 많이 읽는 것 말고 다른 비결은 없다. 많이 읽고, 자주 쓰라. 그대가 타고난 천재가 아니라면...
이상으로 예능 프로그램 제작 5단계를 살펴보았다.
다음 이시간에는,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PD의 자질과 품성에 대해 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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