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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

김승섭 교수님의 4가지 조언

by 김민식pd 2018. 11. 14.

김승섭 교수님이 2013년에 페북에 올리신 글인데요, 저 역시 깊이 공감하는 바가 크기에 블로그에 공유합니다. 어쩌면 PD지망생들에게도 똑같은 조언을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귀한 글을 써주신 김승섭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석/박사 과정 진학을 고민하는 학부생들을 위한 4가지 조언>


지난 몇 개월동안, 학부 학생들 요청으로 1대1 상담을 한게 총 6번 가량 됩니다. 그 6명의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물었던 질문 중 하나가, 2년 혹은 1년 뒤 석사과정에 진학해서 제 연구실에서 공부하고자 하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을 정리해봤습니다. 전적으로 제 전공, 보건학/사회역학에 한정지어 말합니다


첫째. 영어공부보다, 좋은 책을 '전투적으로' 많이 읽으세요. 

석사를 하고 싶다는 학부 학생들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냥 시간을 아껴서 한달에 한권, 두권 책을 읽는 것 말구요. 한 학기 정도 정해서, 하루 5시간 정도 '전투하듯이'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학생들은 어떤 책을 읽어야 하냐고 묻는데, 거기에 답을 제가 할 수 없어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좋은 책은 없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책을 읽고 나서 짧게라도 서평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느꼈던 것들을 언어로 정리하는 연습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글들을 블로그든 페이스북이건 주변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feedback을 받을 수 있도록 하세요. 

석/박사 진학을 준비하며, 영어공부에 힘을 쏟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물론 진학을 위한 기본 점수는 갖춰야하지요. 수업에 쓰는 교재도 영어 교과서이고, 논문도 영어로 쓰니까요. 그런데, 영어는 실은 그렇게 급하거나 본질적인 무엇이 아닙니다. 영어는 도구일 뿐입니다. 영어를 못하면 고생스럽지만, 국어를 잘 못하는 것은, 논리적인 사고 전개를 하지 못하는 것은, 글쓰기가 안되는 것은 그와 비할 수 없이 치명적입니다. 그런 학생들은 도와줄 길이 없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영어는 '외국어'입니다. 아무리 잘 배워도, 외국어가 모국어보다 더 섬세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모국어로 사고하지 못하는 것을 영어로 사고할 수는 없습니다. 정확한 발음으로 유창하게 외국인과 대화할 수 있는데, 논문 쓰기가 안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영어가 문제가 아니니까요. 

논문을 쓴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글쓰기'입니다. 글쓰기를 잘 하려면, 맹자가 말했던 것처럼 좋은 글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보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지점은 단연코, 많이 읽는 것입니다. 좋은 책들은 대체로 어려워 읽다가 지치기 쉽습니다. 그럴 때는 도움을 받으세요. 최근에는 학교 밖에서 여러 인문학 강좌를 들을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시간이 나지 않는 경우에는 팟캐스트를 이용해도 좋습니다. '강유원의 라디오 인문학'이나 '라디오 책다방' 같은 방송들은 어렵다고 알려진 고전들이나 글들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친절히 알려줍니다. 


둘째.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되, 토론에서 설득당하는 법을 배우세요.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세요. 학생시절에 간혹 책을 읽고 세미나를 하거나 토론을 하다가 의견이 다른 경우가 생기면, 최대한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문이 막히게되면, 왠지 '이긴 것' 같은 착각에 기뻐한 적도 있습니다. 어리석은 일이지요. 당연한 말이지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 사이에서도 같은 경제정책을 놓고서 입장이 갈립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옳고 그름에 대한 진리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서있는 지점에 따라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절감합니다. 

돌이켜보면, 타인에게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있었을 때, 내 의견보다 저 사람의 고민이 더 깊을거라고 생각하며 질문을 했을 때, 그것이 사실 여부인가와 상관없이 그 대화에서 가장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토론에서 이기려고 하기 보다는,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을 파악하고 그 내용을 그 사람이 살아온 맥락과 환경속에서 이해해보려고 하는 시도, 그래서 나와 다른 관점에서 말하는 사람들의 논리와 사고의 결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제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은 누구와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보건학은 population수준에서 사람의 건강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학문입니다. '아픈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한 것처럼, 보건학은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합니다. 권력과 자본이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항상 박탈당한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남성보다는 여성이,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더 나아가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빈곤층이 덜 건강하지요. 보건학이 주목하는 1차적인 대상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결국, 그러한 소수자들의 건강을 어떻게 증진시킬 수 있을가에 대한 고민인 것이지요. 기회가 닿을 때마다, 소수자들과 관련된 토론회나 특강에 참여하도록 하세요. 


셋째, '획기적'이거나 '창조적'이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어떤 문제가 가장 절실한지를 먼저 생각하세요.

스티브 잡스 등을 인용하며, '획기적'이거나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유령처럼 사람들 사이를 배회하는 것 같습니다. 공부를 하게 되면, 무언가 새로운 방법론이나 치료약을 개발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질문이 필요한 것이지요. "왜 우리는 창조적이어야 하는가?"라는. '창조적'이지 못했던 것이 실패의 원인인가라는 질문이요. 그 질문에 대한 진지한 답변이 없을 때는, 과연 무엇을 위한 '창조'인가에 대해 의심을 해봐야지요. 

만약 우리가 다루고 있는 문제가 보건학에서 절실한 문제라면, 장담하건데 이미 많은 학자들이 그 문제와 오랫동안 씨름을 해왔고, 그 실패와 성공의 흔적들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물론 거기서 정확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과정에 대한 성실한 검토없이 '창조적'인 해결책을 만들려고 하는 경우는, 실은 그냥 무모하고 불성실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까운 노동을 낭비하게 되지요.

물론, 문제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담대해질 필요는 과감해질 필요는 있습니다. 특히나, 2013년의 한국처럼 사회가 급변하는 과정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기술적 변화가 사회전체를 변화시키고 있는 경우에는, 과거와는 다른 해결책들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경우에도 여전히 과거의 시도들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말해주고, 설익은 '새로운 해결책'을 창조하는 것보다는 훨씬 효율적인 길을 알려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석/박사 과정을 시작하게 되면, 오히려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기 어렵습니다. 배우고 익혀야 하는 방법론이 있기 때문이지요. 자신이 이후 공부를 하며 다루고 싶은 주제는, 그 내용이 추상적이고 막연할 지언정, 학부시절에 결정하는 게 맞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 제약으로 인해 대학원에서 그와 똑같은 주제를 공부하거나 연구하지는 못할 지언정, 보건학 연구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사회를 바라보며 느꼈던 고민은 어떤식으로든 이후 연구와 닿아있기 마련입니다. 


넷째, 운동(exercise)를 하세요. 

대학원에 입학해서 제 연구실에서 함께 공부하게 되면, 체력적으로 힘들거예요. 대학원 진학하기 전에, 몸을 튼튼히 만들고 공부를 하면서 어떻게 건강관리를 할지 계획을 세워서 오도록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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