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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날라리와 짠돌이 사이

by 김민식pd 2018. 8. 7.

가끔 사람들은 저를 보고 정체를 헷갈려 합니다. "그래서 너는 날라리야, 짠돌이야?"

저는 노는 걸 좋아합니다. 춤추는 걸 좋아하고, 놀러다니는 걸 좋아해요. 오죽하면 TV PD로 MBC에 처음 입사했을 때, 시사 교양이나 드라마보다 예능 피디를 지원했겠습니까. 노래하고 춤추고 유흥을 즐기는 날라리 딴따라가 제 천성입니다. 지금도 저는 '즐거움', 즉 쾌락을 인생의 최고의 미덕이라 생각하며 삽니다. 노는 게 좋아요. 

그런 제가 술 담배 커피 골프 도박 등 일절 즐기지 않는다고 하면, 약간 모순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어요. '노는 걸 좋아하는데 어떻게 돈을 쓰지 않고 논다는 거지?' 제가 생각하기에, 쾌락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지속 가능성'입니다. 어떤 쾌락이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느냐, 이게 중요해요.

20대에 나이트클럽에 가서 춤추고 노는 걸 즐겼어요. 그런데 그 재미도 허망하더라고요. 아무리 미친듯이 춤을 추고 놀아도, 새벽에 이태원 나이트클럽을 나설 때 그 스산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더군요. 한때 술도 꽤 마셨어요. 그런데 술을 마시고 친해진 사람들이, 제 정신으로 만났을 때는 서먹서먹하더라고요. 회의감이 들었어요. 술기운을 빌지 않으면, 서로의 본심을 털어놓지도 않는 관계가 과연 좋은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술이 좋다는 건 아는데요, 그 좋은 술도 너무 과하면 꼭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더라고요. 술도 담배도 과하면 건강을 해치고, 건강을 해치면 더 즐길 수가 없어요. 제가 영화나 책을 좋아하게 된 건 그래서입니다. 영화와 책에 대한 사랑이건강을 해치지는 않거든요. 영화보다 요즘 책을 더 좋아하게 된 건, 후자가 더 남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영화를 보고 재미있으면 그냥 끝인데, 책을 보면 깨달음을 얻거나 인생에 남는 여운을 주더라고요. 

쾌락주의자로서, 저는 지속가능한 궁극의 쾌락이 책 읽는 즐거움,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영어로 철학, Philosophy는 ‘지혜에 대한 사랑’을 뜻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란, 삶을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깨달음이 아닐까요? 결국 철학은 우리의 ‘삶을 사랑하는 기술’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배우는 지혜로, 현대인의 삶이 더욱 윤택해지는 것, 이것이 고전의 힘이요, 철학의 힘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기술> (줄스 에번스 / 서영조 / 더 퀘스트)

소크라테스, 세네카, 피타고라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등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가르침에서 '삶을 사랑하는 기술' 즉 철학의 깨달음을 찾는 책입니다. 저는 책에서 에피쿠로스가 권하는 '지금 여기, 삶을 즐기는 기술'이 와닿았어요.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추구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는데요.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쾌락은 무분별한 욕망의 추구가 아니에요. 


에피쿠로스철학을 실천하는 사람이 평온하게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망을 관찰하고, 그 욕망이 자연스럽고 필요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 욕망이 이끌어낼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 그로 인한 고통과 불편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중략)

합리적 쾌락주의자는 온전한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만 욕망하는 법을 배운다.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썼다. "건강에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하고, 위축되지 않고 삶의 요건들을 충족해주며, 운을 두려워하지 않게 해주는, 소박하고 값싼 음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욕망이 적고 단순할수록 충족시키기가 쉽고, 일을 덜 해도 되며, 친구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많아진다. 

(삶을 사랑하는 기술 146쪽)


그래요, 제가 날라리 딴따라이자 짠돌이인 이유를 에피쿠로스가 설명해주고 있네요. 저는 합리적 쾌락주의자인 겁니다. 나의 쾌락이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거나 나 자신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을 찾다보니, 궁극의 쾌락이 독서와 공부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저는 새로운 외국어를 공부하고, 새로운 책을 찾아 읽고, 새로운 글을 쓰는 걸 궁극의 도락으로 삼게 되었나봐요. 

삶을 사랑하는 기술,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배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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