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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꿈이라는 건

by 김민식pd 2018. 8. 13.

저는 좋아하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재미난 책을 읽으면 책을 쓰고 싶고, 재미난 시트콤을 보면 시트콤을 만들고 싶고, 재미난 영화를 보면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통역대학원 다니던 시절에는 영화 감독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마침 친한 통역대학원 교수님 중에 배유정 선생님이 있었어요. 1996년 당시 MBC에서 <배유정의 영화음악>을 진행하고 있었지요. 영화 <아름다운 날들>에 출연하기도 하셨고요. 어느날 만나뵙고 여쭤봤어요.

"제가요, 영화 만드는 게 꿈이거든요. 졸업하고 충무로에 가서 일을 배우면 어떨까요?"

"민식씨는 영화쪽 일을 해본 적이 없어 쉽지 않을 텐데요?"

"생계는 통역 아르바이트로 꾸려가고, 연출부에서 한 10년 배우면 입봉할 수 있지 않을까요?"

"민식씨, 영화 일은 너무 힘들어서 다른 일과 동시에 하기 힘들어요. 영화 연출부 생활은 쉽지 않아요. 내가 아는 영화 조감독은 1년 내내 일하고 연봉이 200만원이에요."

영화 감독과 통역사 겸업은 순진한 꿈이구나 싶었어요.

"민식씨, 충무로에서 영화 감독 데뷔는 쉽지 않은데, 여의도로 가는 건 어때요? 방송사 피디는 생활도 안정적이고 방송도 만들 수 있거든."

기왕이면 제도권에서 제대로 영상을 배우라는 말씀에 방송사로 진로를 틀었어요. <쇼코의 미소> (최은영 / 문학동네)를 읽으며 문득 옛날 영화 감독의 꿈이 떠올랐어요. 주인공 역시 영화 감독을 꿈꾸지만 그 길은 너무나 험난해요.  


창작이 나에게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고, 나로부터 나를 해방시킬 것이고 내가 머무는 세계의 한계를 부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늘 돈에 쫓겼고, 학원 일과 과외 자리를 잡기 위해서 애를 썼으며 돈 문제에 지나치게 예민해졌다. (중략)

영화를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늘 그들의 재능과 나의 재능을 비교하며 열등감에 휩싸였다. 영감은 고갈되었고 매일매일 괴물 같은 자의식만 몸집을 키웠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알코올중독자가 된 감독 지망생과,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며 야근 수당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시나리오작가 지망생을 보며 내가 그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꿈은 죄였다. 아니, 그건 꿈도 아니었다.

영화 일이 꿈이었다면, 그래서 내가 꿈을 쫓았다면 나는 적어도 어느 부분에서는 보람을 느끼고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지 감독이 되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나 자신도 설득할 수 없는 영화에 타인의 마음이 움직이기를 바라는 건 착각이었다.

<쇼코의 미소> 33쪽


꿈이란 과연 무엇일까. 때로 우리는 꿈을 좇는다는 이유로 현실 도피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사랑하는 마음을 책임지며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에 대한 사랑도 그렇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도 마찬가지지요. 

<쇼코의 미소>,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에요. 다양한 고민 덕분에 내 삶이 풍성해지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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