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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우리 모두 저자가 됩시다

by 김민식pd 2018. 4. 17.

요즘 한창 드라마 연출 준비하느라,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합니다. 이럴 땐, 신문에 나오는 신간 소개 기사를 읽는 걸로 활자에 대한 허기를 달랩니다. 한겨레 신문 금요판 책소개도 좋아하고, 경향신문 토요판에 나오는 신간 소개도 좋아합니다. 평소 은유 작가님의 글과 책을 좋아하는데, 새 책을 내셨더라고요. 

<출판하는 마음> (은유 인터뷰집/제철소)

책을 만드는 사람들을 단계별로 한 사람 한 사람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편집자부터, 저자, 번역자, 북디자이너, 마케터, 서점 주인까지 책을 다루는 모든 직업이 총망라되는데요. 저 역시 늘 궁금했어요. 책을 한 권 낼 때마다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는데, 그 분들의 일이 어떤 것인지 늘 궁금했거든요. 

책을 내려는 사람이 가장 먼저 만나는 건 편집자입니다. 편집자는 때론 문이고, 때론 벽이에요. 그 문을 통과하면 글이 책이 되고, 벽을 넘지 못하면 글은 세상과 만나지 못합니다. 

은유 작가가 계간지에 게재했던 원고를 책으로 묶어낼까 했더니 편집자가 이렇게 말했대요.

"그 글은 좋지만 그게 책이 될 순 없어요."


나는 글과 책을 분간하지 못하고 있었다. 글이 내 안에서 도는 피라면, "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만 박동하는 심장이다." 책은 누군가에게 읽힐 때만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모호한 자의식은 제쳐두고, 비용을 지불하고 책을 사는 독자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지,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는 독자가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지를 독자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중략)

글의 총합이 책이 아니라는 것. 좋은 글이 많다고 좋은 책은 아니라는 것. 한 권의 책은 유기적인 구조를 갖고 있으며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와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 그 일을 과단성 있게 솜씨 좋게 해내는 사람이 편집자라는 것. 저자는 외부자의 시선을 갖기 어렵기에 편집자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 좋은 출판사보다 좋은 편집자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는 것.

(위의 책 12쪽)


지난 몇 년, 회사가 제게 드라마 연출을 맡기지 않으니 바보가 된 기분이었어요. 드라마 감독이 대단한 직업인줄 알았는데,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바보더라고요. 작가가 대본을 쓰고, 배우가 연기를 하고, 카메라 감독이 촬영을 해야 뭔가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블로그를 하고 출판 작가의 삶을 동경했어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라 믿었거든요. 책을 내면서 깨달았어요. 블로그는 혼자 할 수 있는데요, 출판은 좋은 편집자의 도움이 필수입니다. 결국 출판도 협업의 결과라는 걸 깨달았어요. 

궁극적으로는 모든 글이 책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아니, 언젠가 책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글을 씁니다. 그래야 글쓰기가 더 즐거워져요. 의미를 부여하는 거죠. 벽돌을 쌓고 있다는 생각으로 일하는 일꾼과, 하느님께 바치는 성전을 짓는다는 생각으로 일하는 사람의 자세가 다르듯이, 글을 쓸 때도 언젠가 책이 될 원고를 모은다는 생각으로 써야해요. 

몇 권의 책을 낸 후, 주위에서 출판에 대해 물어오는 사람이 많은데요.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할 생각입니다. 어떻게 작가가 되는지, 작가가 되면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일하는지 알 수 있어요. 무엇보다 글쓰기 선생님이기도 한 은유 작가의 글 자체가 좋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요. 

내가 평소 즐기는 요리를 누가 어떤 식으로 준비하는지 알고 먹으면 더 감사한 마음이 생길 테니까요. 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출판하는 마음>

책을 읽고 나니 문득 욕심이 듭니다.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드라마를 만드는 모든 직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보면 어떨까? 작가, 배우, 촬영 감독, 조명 감독, 동시 녹음 기사, 편집자, 음악 감독, 제작자까지. <드라마를 만드는 마음> 소중한 마음을 하나하나 지면에 모아보고 싶네요.

(추신: 어제 첫 촬영 소식에 축하한다는 댓글을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촬영하는 틈틈이 여러분의 글을 읽으며 뿌듯하고 감사했어요. 즐겁게 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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