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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도박에 빠지는 이유?

by 김민식pd 2018. 8. 6.

아버지를 모시고 가끔 등산이나 산책을 갑니다. 사당동에 위치한 현충원 둘레길을 걷는 걸 좋아하는데요.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노인복지회관에 가면 이 동네에 가난한 노인이 의외로 많아. 왜 그런지 알아?"

"왜 그런데요?"

"사당역에서 가까워서 그래. 4호선을 타고 몇 정거장만 가면 과천 경마장이 나오거든. 퇴직하고 심심해서 경마장에 놀러 다니다가 재산 홀라당 탕진하고 아이들과 마누라 눈치보면서 사는 남자들이 많더라구."

아버지 주위에는 도박하다 돈 잃고 건강 잃고 친구 잃고 가족도 잃은 사람이 많아요. 사람들은 왜 도박에 빠지는 걸까요? 

<위장 취업자에서 늙은 노동자로 어언 30년>(이범연 / 레디앙)에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대기업 노동자들 사이에 도박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경우도 있고, 심지어 도박 빚 때문에 목숨을 끊은 경우도 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도박에 빠져 있는 노동자들은 많다. 왜 그럴까? 장시간 노동으로 여가 시간이 없다. 시간의 여백을 채울 수 있는 취미나 문화생활을 가지지 못한다. 그런데 돈은 있다. 짧은 시간에 짜릿한 흥분을 느끼며 보낼 수 있는 취미로는 도박만한 게 없다. 그렇게 돈은 '비어버린 자기를 채우는 대체물'이 된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능력, 일상의 삶의 내용을 채울 수 있는 '문화와 여가를 즐기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위의 책 100쪽)

제가 술 담배 커피를 즐기지 않는다고 말하는데요. 생각해보니, 이건 제가 시간이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으니 가능한 일입니다. 야근에 찌든 사람은 잠깐 시간이 나면 폭탄주를 돌려요. 휴식의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짧은 순간 가장 쉽게 만족감을 안겨주는 건 흡연이고요. 피곤할 때 졸음을 쫓는 가장 쉬운 방법이 커피를 마시는 거죠. 독서와 여행, 글쓰기를 사람들에게 권하지만 사실 셋 다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 취미에요. 책을 읽으려면 적어도 10분 이상 진득하니 들여다봐야 빠져들 수 있어요. 여행도 마찬가지고, 글쓰기 역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여력이 있을 때 가능하지요. 문득, 그동안 내가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부끄럽군요. 

그럼에도 꿈은 꿀 수 있어야지요. 이범연 작가는 이어지는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이 되는 것이 꿈이고 정규직의 삶을 부러워한다. 그런데 과연 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부러워할까? 단지 정규직이 벌어들이는 돈과 안정된 고용을 부러워 할 뿐이다.

그래서 정규직 노동자의 꿈은 노동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삶의 표준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벌어들이는 돈의 크기가 아니라 여가를 누리고, 문화적 삶을 향유하고,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다양하게 참여하는 풍부한 '삶의 형식'을 만들어야 한다. '노동자가 이 정도의 삶은 살아야지'라는 '삶의 모범'을 만들어야 한다. 왜 노동자는 음악 감상, 미술 관람, 독서 등의 문화 생활과는 동떨어진 세상에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중략) 책을 빌려 볼 수 있는 도서관은 주변 어디든지 있고, 잘 찾아보면 유익한 인문학 강좌도 많다. 더 이상 문화와 독서가 돈이 많이 드는,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101쪽)


어려서는 서점에 가서 그 많은 책을 보면 가슴이 뛰고 설레었어요. '언젠가 돈을 벌면 책을 사야지.'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도서관에 가면 가슴이 뜁니다. '언젠가 은퇴하면 하루 종일 책만 읽으며 살아야지.' 

돈이 많은 사람보다 시간이 많은 사람이 진짜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노동자로서 누려야 할 삶의 표준을 만든다는 말씀이 참 좋네요. 돈을 더 벌기보다 시간을 얼마나 풍족하게 누리느냐가 앞으로 관건입니다. 

일하는 틈틈이 취미 생활도 했으면 좋겠어요. 놀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도박에 빠지거든요. 제대로 노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굳이 도박이라는 자극에 빠질 이유가 없어요. 돈 많고 시간 없는 사람이 도박을 한다면, 돈 없고 시간 많은 사람은 도서관을 가지 않을까요? 책 읽는 취미, 꾸준히 갈고 닦아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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