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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세계여행

행운의 여신은 누구의 편인가

by 김민식pd 2018. 4. 6.

지난 2월에 다녀온 런던 여행기입니다. (일하면서 짬짬이 여행기를 쓰는 걸 좋아합니다. 여행의 즐거움을 오래오래 되새기는 방법이거든요. ^^)


대영박물관을 다녀온 후에는 내셔널 갤러리로 향합니다. 그 옆에 자그마한 건물이 있는데요. 바로 초상화 미술관입니다. 

영국 왕실이나 귀족들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나같이 높은 분들 뿐이네요. 옛날엔 자신의 모습을 보거나 남기는 것 자체가 권력의 상징이었어요. 화가가 흔한 시절도 아니고, 그림 한 장 그리는데 엄청난 공이 들어가던 시절이니까. 그런 점에서 셀카를 마음껏 찍고 저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린 복받은 세대가 아닌가 싶어요. 어디서나 카톡 프로필이나 인스타로 자신의 모습을 남길 수 있으니까요. 누가 사진은 권력이다라고 말하던데, 우린 정말 엄청난 권력을 누리고 사는 듯. 


런던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그 건물도 멋있습니다. 운치있고 기품이 있어요. 건축물 감상과 그림 감상을 겸해 이 방 저 방 산책하며 다닙니다. 

'VOTES FOR WOMEN'

여성 참정권 특별 전시관이이에요. 100년 전 영국에서 일어난 여성 참정권 운동. 수많은 사람들이 여성의 투표권을 위해서 싸웠군요. 그 시절, 감옥에 갇히고, 경찰들에게 맞아가며 싸우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가 모여있습니다.


투표권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권리인데요. 그 소중한 권리도 처음부터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건 아니더군요. 목숨 걸고 싸운 사람들이 있기에 얻어진 것이에요. 영화 <서프라제트>를 보면서 느꼈어요.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은, 실은 많은 사람의 노력을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런던 초상화 미술관 역시 참정권 운동의 현장이었어요. 1914년에 여성 운동가들이 초상화 미술관에 들어와 그림을 훼손합니다. 여성 참정권 운동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의 초상화를 공격하지요. 정치인에 대한 테러가 아니라 그들의 권력의 상징인 초상화에 대한 공격. 그 공격을 다시 참정권 운동 역사의 한 줄기로 담담히 기억하는 초상화 미술관. 인상적이네요.


부조리나 불평등이 있을 때 그냥 참고 사는 사람도 많지요. 하지만 세상은 참지 않고 앞서 싸우는 소수에 의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요. 


초상화 미술관의 외관입니다. 이제 갤러리를 나와 점심 먹으러 갑니다. 오늘은 맥도날드로 갑니다. 물가 비싼 런던에서 가성비 최고의 식당이지요. ^^ 레스터 스퀘어에 있는 가게는 사람이 많아 줄을 서서 먹습니다. 혼자 먹고 있으니 어떤 아가씨가 잠시 앞에 앉아도 되냐고 물어보네요. 그녀의 완벽한 영국식 발음에 혼자 감탄을 합니다. 


"와, 발음 좋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영국 사람이 영어하는게 뭐가 신기해요? 한국 사람이 영어하는게 더 신기하지. 다시 어깨를 폅니다. 자부심을 갖고 기죽지말자고요. 

광장에서 사람 구경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런 노래가 있지요.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

어려서부터 그 노래가 정말 좋았어요. 그 기개가 좋잖아요. 직진만 계속하면 지구를 한바퀴 빙 돌아 언젠가 다시 집으로 오게 된다는... 언젠가 꼭 그런 세계일주를 할 거예요. 한 방향으로 직진하는, 그래서 온 세상 사람들을 다 만나고 오는... 

다만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그냥 피카딜리 서커스 한 편에 가만히 서 있습니다. 그럼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지나쳐갑니다. 세계 곳곳에서 온 각양각색의 여행자를 만날 수 있는 곳. 뉴욕의 타임즈 스퀘어도 그렇고, 런던의 피카딜리 서커스도 그렇고, 사람 구경하는 맛에 가는 곳이지요. 

트라팔가 광장을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많아요. 아이들이 손에 풍선을 들고 지나가고요. 물어보니 퍼레이드가 온다고.

저는 마트에 가서도 사람들이 줄을 선 곳을 보면 달려갑니다. 가보면 '타임 세일'을 해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때는 이유가 있겠지요. 인파가 몰린 곳을 보면 무조건 달려가서 무슨 일인지 물어봐요. 



기다리니까 진짜 오네요. 이건 웬 퍼레이드일까? 보니까 중국 탈춤도 나오고



용의 모습을 새긴 꽃마차도 지나갑니다. '차이니즈 뉴 이어 페스티벌' 즉 중국식 구정 축제이군요. 


싱가포르에서 본 구정 축제보다는 못한 것 같은데, 서양 사람들에게는 무척 신기한 행사인가봐요.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가족들이 많이 보이네요. 퍼레이드 행렬을 이끄는 중국 이민자들보다, 구경하는 영국 가족들을 구경하는 게 더 재미있었어요. 


퍼레이드 하는지 모르고 나왔는데 이런 흥겨운 행렬을 만나다니, 어쩜 저는 행운의 여신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걸까요? 여행에 관한 한, 특히 운이 좋아요.

1994년에 첫 직장 그만두고 나옵니다. 사표 내고 나와서 통역대학원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요. 호주 대사관에서 영어 경시대회를 한다는 공고를 봤어요. 1등 상품이 호주 여행권 (왕복 항공권 + 3주간 체류 경비)이었어요. IELTS로 본 시험에서 만점을 맞고 상품을 타고 배낭 여행을 갑니다. 불과 몇 달 전만해도 회사를 다니며, 상사의 구박에, 치과 의사들의 타박에 괴로웠던 외판 사원이 한달 반 동안 호주 여행을 다니는 행운을 누렸어요. 

행운의 여신이 나를 아껴주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잘 들이대기 때문입니다. 

길을 가다 아기를 안고 서 있는 젊은 엄마에게 물어봤거든요. "오늘 왜 이리 사람이 많나요?" 그 덕에 퍼레이드를 하는 걸 알았어요.

도서관 게시판에 붙은 안내문을 보고 영어 경시 대회에 응시했거든요. 한번도 본 적 없는 시험이지만, 혼자 책을 외워 공부한 영어에 자신이 있었어요. 

여행을 하면 항상 좋은 추억이 남습니다. 운이 좋은가 봐요. 다시 생각해보니, 이게 내 머리의 한계입니다. 여행 가서 힘든 적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다 잊어버리고 좋은 추억만 남기는 거죠.

행운의 여신은 누구의 편일까요? 여신이 나의 편이라고 믿는 사람에게 행운의 여신은 찾아갑니다. 매번 행운을 안겨줬는데도, '왜 내게는 행운이 오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여신이 삐져버릴 지 몰라요.

매사에 작은 일에 감사하며 살기. 

그게 행운의 여신을 부르는 습관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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