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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함께 비를 맞아야한다

by 김민식pd 2017. 11. 15.

전철로 출퇴근하는 2시간 동안 주로 책을 읽습니다. 서서 책을 읽다 좋은 글귀를 만나면 휴대폰에 쪽수를 메모해둡니다. 새벽에 메모된 페이지를 찾아 다시 필사합니다. 책 속의 글귀를 받아쓰고, 그 글이 왜 내 마음을 울렸는지 함께 적어봅니다.  

며칠 전 소개한 '아픔이 길이 되려면'(김승섭 / 동아시아)에서 만난 글들입니다.

2017/11/13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우리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스무 살 무렵 학교 앞 인문사회과학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 작은 서점에서 온종일 앉아 책을 정리하고 포장하면서 수많은 책을 만났지요. 놀라운 이야기가 담긴 책들을 읽다가, ‘언젠가는 나도 세상에 책 한 권을 내놓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 글로 책을 낸다는 그 무게감이 두려워 입 밖에 내본 적은 없는 이야기입니다.’

서문 8쪽


공간의 힘이 있어요. 사람이 어떤 장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느냐가 미래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칩니다. 저는 어린 시절 도서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요, 요즘도 한가한 날이면 가장 가고 싶은 곳이 도서관입니다. 도서관에서 책에 둘러쌓여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요, 무수한 저자들이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언젠가는 나도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지요. 책을 쓰는 첫걸음은, 책의 글귀를 필사하는 것이고요.


'의과대학에 다니던 시절, 졸업 후 병원에서 일하는 선배들로부터 항상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학생 때 무엇이건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여행을 가고, 연애를 하고, 읽고 싶은 책을 읽으라고 선배들은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인턴 시작하고 나면, 시간이 없다고요.' 

130쪽 


저도 대학 특강을 가면, 독서 여행 연애 3가지를 권합니다. 취업하고 나면 시간이 없거든요. 특히 한국 사회는 직장 초년병에게 가혹한 신고식을 치르게 합니다. 조연출도 그렇고 수습기자의 삶을 봐도 그렇더라고요. 무엇보다 저는 사람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으로 독서 여행 연애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함께 비를 맞아야한다'는 글을 소개합니다. 20175, 육군군사법원이 동성애자 군인 A 대위에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사적 공간에서 업무와 관련 없는 합의된 상대와 맺은 성관계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광화문에서 유죄 판결 규탄 집회가 열렸는데요,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김승섭 교수가 달려가 발언을 합니다. 아래는 김승섭 교수의 발언입니다.

 

저는 얼마 전 한국 성소수자 자살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다 깜짝 놀랐어요. 한국은 10세부터 39세까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인,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거든요. 그런데 성소수자의 자살 시도 비율이 그런 한국의 일반인들보다도 9배가 높은 거예요. (중략)

2014년 인권위 연구에서 중고등학교 교사 100명을 상대로 조사했는데, 그중 39명이 동성애는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라고 답했어요. 그 교실에 앉아 있었을 10대 성소수자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얼마나 자주 스스로를 학대하고 부정해야 했을까요? 이제 그들 중 절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대에 가야 하는데, 이번 판결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요?

마지막으로 이 순간에도 힘들어하고 있을 10대 성소수자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고 치료가 필요한 건 여러분이 아니라 이 사회라고. 인간의 가치는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라, 얼마만큼 상대를 진실하게 사랑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요.

아무리 우아한 이론을 가져와도 혐오는 혐오이고, 어떤 낙인을 갖다 붙여도 사랑은 사랑이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혐오로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저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분명 그럴 거라고 저는 믿어요.

혐오의 비가 쏟아지는데, 이 비를 멈추게 할 길이 지금은 보이지 않아요. 기득권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합니다. 제가 공부를 하면서 또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작게라도 배운 게 있다면,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피하지 않고 함께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218쪽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 이 글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김장겸 전 사장의 해임안이 가결되었을 때, 많은 분들의 얼굴이 떠올랐어요.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함께 외친 동료, 아침마다 상암동 사옥에 달려와 '김피디 징계 철회하라'고 피켓을 들고 서주신 시민, 금요일마다 광화문에 달려와 '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을 외치시는 많은 분들의 모습이요.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 응원해주시는 얼굴 모를 많은 분들도 생각했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앞으로 저도, 누군가 비를 맞을 때, 함께 비를 맞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진 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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