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로 출퇴근하는 2시간 동안 주로 책을 읽습니다. 서서 책을 읽다 좋은 글귀를 만나면 휴대폰에 쪽수를 메모해둡니다. 새벽에 메모된 페이지를 찾아 다시 필사합니다. 책 속의 글귀를 받아쓰고, 그 글이 왜 내 마음을 울렸는지 함께 적어봅니다.  

며칠 전 소개한 '아픔이 길이 되려면'(김승섭 / 동아시아)에서 만난 글들입니다.

2017/11/13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우리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스무 살 무렵 학교 앞 인문사회과학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 작은 서점에서 온종일 앉아 책을 정리하고 포장하면서 수많은 책을 만났지요. 놀라운 이야기가 담긴 책들을 읽다가, ‘언젠가는 나도 세상에 책 한 권을 내놓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 글로 책을 낸다는 그 무게감이 두려워 입 밖에 내본 적은 없는 이야기입니다.’

서문 8쪽


공간의 힘이 있어요. 사람이 어떤 장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느냐가 미래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칩니다. 저는 어린 시절 도서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요, 요즘도 한가한 날이면 가장 가고 싶은 곳이 도서관입니다. 도서관에서 책에 둘러쌓여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요, 무수한 저자들이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언젠가는 나도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지요. 책을 쓰는 첫걸음은, 책의 글귀를 필사하는 것이고요.


'의과대학에 다니던 시절, 졸업 후 병원에서 일하는 선배들로부터 항상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학생 때 무엇이건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여행을 가고, 연애를 하고, 읽고 싶은 책을 읽으라고 선배들은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인턴 시작하고 나면, 시간이 없다고요.' 

130쪽 


저도 대학 특강을 가면, 독서 여행 연애 3가지를 권합니다. 취업하고 나면 시간이 없거든요. 특히 한국 사회는 직장 초년병에게 가혹한 신고식을 치르게 합니다. 조연출도 그렇고 수습기자의 삶을 봐도 그렇더라고요. 무엇보다 저는 사람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으로 독서 여행 연애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함께 비를 맞아야한다'는 글을 소개합니다. 20175, 육군군사법원이 동성애자 군인 A 대위에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사적 공간에서 업무와 관련 없는 합의된 상대와 맺은 성관계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광화문에서 유죄 판결 규탄 집회가 열렸는데요,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김승섭 교수가 달려가 발언을 합니다. 아래는 김승섭 교수의 발언입니다.

 

저는 얼마 전 한국 성소수자 자살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다 깜짝 놀랐어요. 한국은 10세부터 39세까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인,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거든요. 그런데 성소수자의 자살 시도 비율이 그런 한국의 일반인들보다도 9배가 높은 거예요. (중략)

2014년 인권위 연구에서 중고등학교 교사 100명을 상대로 조사했는데, 그중 39명이 동성애는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라고 답했어요. 그 교실에 앉아 있었을 10대 성소수자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얼마나 자주 스스로를 학대하고 부정해야 했을까요? 이제 그들 중 절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대에 가야 하는데, 이번 판결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요?

마지막으로 이 순간에도 힘들어하고 있을 10대 성소수자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고 치료가 필요한 건 여러분이 아니라 이 사회라고. 인간의 가치는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라, 얼마만큼 상대를 진실하게 사랑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요.

아무리 우아한 이론을 가져와도 혐오는 혐오이고, 어떤 낙인을 갖다 붙여도 사랑은 사랑이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혐오로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저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분명 그럴 거라고 저는 믿어요.

혐오의 비가 쏟아지는데, 이 비를 멈추게 할 길이 지금은 보이지 않아요. 기득권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합니다. 제가 공부를 하면서 또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작게라도 배운 게 있다면,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피하지 않고 함께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218쪽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 이 글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김장겸 전 사장의 해임안이 가결되었을 때, 많은 분들의 얼굴이 떠올랐어요.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함께 외친 동료, 아침마다 상암동 사옥에 달려와 '김피디 징계 철회하라'고 피켓을 들고 서주신 시민, 금요일마다 광화문에 달려와 '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을 외치시는 많은 분들의 모습이요.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 응원해주시는 얼굴 모를 많은 분들도 생각했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앞으로 저도, 누군가 비를 맞을 때, 함께 비를 맞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진 제공 @ 연합뉴스)




Posted by 김민식pd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Lukbluesky 2017.11.15 07: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신영복 선생님의 저 글. 저도 최근에 새기고 싶어 적어 둔 글인데.. 반갑습니다.. 세상도 바로 돌아오는 듯 하고. 작년 국정농단사태때 절망했더랬지요. 이런 얼토당토않은 세상에 살고 있었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보잘것 없어 보이고. 그래도 2차집회 때 아이 데리고 광화문에서 무작정 외치면서 함께 한 시민들덕에 큰 위안을 얻었더랬습니다. 함께 비를 맞아본 경험. 삶의 또 다른 용기가 될 것 같아 뿌듯합니다.

  2. 섭섭이 2017.11.15 08: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책 내용 좋네요. 함께 맞는 비.... 오늘 글을 보며 함께 비를 맞는다것이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낍니다. 전 그 동안 언론문제나 노동자 파업등등에 대해서는 남의 일이겠거니 하고 지냈는데, 이번 PD님 징계위원회 회부되시고, MBC파업하시는걸 보면서 많은걸 느꼈어요. 그 동안 내 자신만 신경쓰며 주변일에는 관심 없었는데 저도 이제 주변에 누군가 비를 맞을 때, 함께 비를 맞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많은걸 깨닫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영복 선생님의 <함께 맞는비>를 메모해봅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함께 비를 맞지 않는 위로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위로는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기 때문입니다’

  3. 아리아리 2017.11.15 08: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pd님,아리 아리!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
    참 가슴 따뜻해지는 말입니다. 특히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에게 좀더 곁을 주고 함께임을 느낄수 있는 간절한 손길 절실합니다. 선택 이전에 주어진운명을 가진 그들에게 비난의 화살 멈추어야함은 물론 이구요!
    우리대다수의 서민, 시민들은 함께할때 권력자 지배자에 대한 힘을 가질수 있고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촛불혁명과, 이번 mac 언론 정상화를 통해 확실히 증명되었습니다. 사회적약자를 포함한 우리 끼리는 당연히 함께 비를 맞아야해요!
    이렇게 함께 할 수 있게 언론이 제역활을 더욱 확실히 해야함도 다시 확인되었구요!
    우리 사회를 바꿀수 있다고 외치신 '이용마 기자님'의 빠른 건강회복과 현장에서 더욱더 큰 목소리로 우리를 일깨워줄 그날 을 간절히 바랍니다.

    김pd님은' 우리가 함께 비 맞아야함'을 느낄수 있는 가슴 따뜻한 드라마 많이 만들어 주세요!
    현장에서 너무 바쁘셔서 블로그 활동뜸해도 이해해드릴께요^^

  4. 정지영 2017.11.15 10: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글 읽고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다시 펼쳐봤어요. '함께 맞는 비' 덕분에 우리 사회는 분명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거라 믿습니다. 피디님이 좋은 예를 보여주셨어요^^

  5. 2017.11.15 1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grey 명원 2017.11.15 11: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좋은 문구네요. 뜨끔하기도 하고요.ㅎㅎㅎㅎㅎㅎ

    언제 한번 친구들 한테 힘든 일을 말한적이 있었는데, 한 친구는 그 문제의 해결책을 말해주고 또 한 친구는

    아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딱하다는 심정을 말해 주었는데..

    친구들중 가장 위로 되는 말은 함께 욕해주는 친구 였습니다. 뭔가 내 편이 생긴 것 같은 든든함이 생기더라

    고요.

    '비를 같이 맞는다' '함께 한다' 참 좋고 힘이 되는 말이네요

  7. 제주한란 2017.11.15 12: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고많으셨고 축하드립니다
    김민식피디님의 시작이 큰 결실을 맺었네요

  8. 유쾌한용기 2017.11.16 00: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응원합니다!

  9. 알로하 2017.11.17 12: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얼마전 저희 대학교에서 학부장님이 동성애 관련에 대해 상스럽고 더러운것이라고 발언하셨어요. 그 때 당시 특강수업을 진행 중 수업과 관련없이 갑자기 튀어나온 돌맹이 같은거라 열심히 수업듣던 저를 비롯한 다른 학생들 모두가 매우 조용해 졌어요. 그리고 그 순간 고개를 돌려 아이들의 표정을 살폈어요. 성수자인 친구들이 있을텐데..분명 듣고 있을텐데.. 하면서 말이에요.

    '함께 비를 맞아어한다.' 말에 동감하는 바입니다.얼른 책방으로 달려가서 김승섭 교수님의<아픔이 길에 되려면>을 2권 사야겠어요.
    한 권은 제가 들고 다니며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다니고 한 권은 학과장님께
    "교수님 선물입니다^^*" 하면서 드리겠습니다.

    • 김민식pd 2017.11.19 07: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교수님께 그런 선물을! 센스 만점이십니다. 공적인 발언을 하는 분일수록 더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사랑하는 제자들 중에 누군가 나의 말로 상처받을 사람도 있는데 말이지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