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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PD 스쿨/날라리 영화 감상문

박정희 시대와의 완전한 이별

by 김민식pd 2017. 10. 27.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해는 2012년이었습니다. 그해 1월부터 170일간 파업을 했고요, 6개월간 싸운 끝에 해직자 복직이라는 박근혜 후보의 약속을 받고 복귀했다가 배신 당했지요. 부당징계로 고통받는 조합원들 보기 부끄러워서 저는 새누리당 당사 앞에 가서 박근혜 후보에게 공영방송 정상화라는 약속을 이행하라고 1인시위까지 했습니다. 새누리당 사람들이 지나치면서 제게 조소를 던졌습니다. '그걸 믿은 놈이 바보지...' 12월 대선에서 박근혜가 당선되는 걸 보며 좌절했습니다. 이 나라에 박근혜에게 표를 던진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데 절망했어요.

탄핵반대집회의 태극기 부대를 보면, 참 난감합니다. '저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저들과 어떻게 해야 소통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끝에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미스 프레지던트'

 

김재환 감독은 저의 MBC 입사 동기이자 20년지기 친구입니다. 이명박의 권세가 시퍼렇게 살아있던 2012'MB의 추억'이라는 정치 풍자 영화로 통렬하게 이명박의 뒷통수를 후려갈긴 감독입니다. 프로듀서로서 최승호 감독을 도와 영화 '자백'을 만들기도 했고요. '트루맛쇼''쿼바디스'에서 보여주듯, 항상 힘있는 자들과 (공중파와 대형교회) 맞짱을 뜨는 감독입니다. 그런 그가 박근혜 대통령의 일대기를 기록한 영화를 만들었다기에 무척 궁금했습니다. 심지어 박사모가 주연이랍니다. '미스 프레지던트', 이 영화를 보면 '박사모'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저는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경상도 남자입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박사모는 다 저의 아버지, 어머니 같은 분들입니다. 어려서 힘든 시절을 보냈고, 경제 성장덕에 나라에 대한 고마움을 절절히 느꼈고, 양친을 총탄에 잃은 비극적 가정사를 지닌 한 여성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한 분들. 영화에는 그런 착하고 선한 저의 고향 어르신들이 나옵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 눈물이 나왔습니다.

 

공범자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용마 기자와 저는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받으러 가면서 농담끝에 웃음을 터뜨립니다. 우리가 그 이후 5년을 어떤 일을 겪는지 아는 최승호 감독은 그 장면을 통해 젊은 시절의 이용마와 김민식을 위로해주고 싶었다고 하시더군요.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 식당 주인 아주머니 아저씨들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지옥일 것입니다. 평생 믿고 따르던 사람이 총에 맞아 죽었고, 그 딸은 이제 아버지의 유산을 몽땅 날려버리고 친구와 함께 감옥에 갇혀버렸니까요. 영화 속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2012년의 저보다 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김재환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을 위로합니다. '당신들이 왜 그렇게 박근혜를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안다. 이제는 과거와 결별하고 현재를 살아야하지 않겠나. 박근혜 탄핵을 외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겠나.' 한편으로는 저처럼 박근혜를 반대하는 사람에게 화해를 권유합니다. 여기 와서 보라고. 이들은 악당이나 괴물이 아니고, 바로 당신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아니냐고.

영화를 보고, 마음의 응어리 하나가 풀렸어요. 박근혜를 뽑아준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조금 누그러집니다. 오히려 이 순박한 사람들을 이용하여 권력을 탐하고, 이익을 취한 이들에 대한 분노가 조금 더 커졌습니다.

박정희 시대와의 완전한 이별을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온전히 결별하기 위해서는 보내주는 대상이 누군지 알아야합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상대는 혐오나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저런 시대를 살았다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원망과 분노 대신 이해와 공감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증오와 분노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테니까요. 촛불 1주기, 10월 26일을 맞아 개봉한 이 영화는, 우리 시대 가장 힘든 숙제,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세대간 화해를 이야기합니다. 

영화의 진심이 진심으로 와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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