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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

인생은 역시, 리액션이다

by 김민식pd 2017. 8. 25.

지난 번, ‘인생은 리액션이다는 글을 통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내게 일어나는 사건보다 그 사건에 대한 나의 반응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때로는 타인의 반응이 나를 움직이기도 합니다. 2015년 드라마 <여왕의 꽃> 야외 연출로 일할 당시, 많이 힘들었어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젊은 조연출이나 공동연출이 하는 연속극 야외 연출을 늦은 나이에 하려니 체력적으로 많이 딸리더군요. 6개월간 꾸준히 일주일에 며칠씩 밤을 새우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 제가 B팀 감독으로 일하는 것을 놓고 임원회의에서 말이 나왔어요. ‘왜 김민식이한테 일을 시켰나?’ ‘그 나이에, 그 경력에 B팀 감독으로 일하는 건 징계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제작인데? 이번 드라마 끝나면, 두 번 다시 드라마 연출 하지 못하게 하세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힘들었어요. 전장에서 밤을 새워 싸우고 있는데, 정작 등 뒤에 있는 아군 초소에서 내 뒤통수에 총구를 겨누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그때 PD교육원에서 ‘PD 글쓰기 캠프를 한다는 공지가 떴어요. 촬영 쉬는 날, 가서 글이나 좀 써야겠다 싶었어요. 힘들 때는 어디 틀어박혀 글을 쓰면 마음이 좀 풀리거든요. 당시 글쓰기 캠프의 주제는 나는 PD가 아니다.’였어요.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마음을 추스리고 글을 풀어갔습니다.

 

나는 PD가 아니다.

고등학교 진로특강에 가면 아이들이 꼭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PD님은 언제부터 PD가 꿈이었나요?”

참 답변하기 난감합니다. PD가 꿈이었던 적이 없거든요.

 

한양대 자원공학과를 나왔지만, 엔지니어가 되기 싫어 한국 3M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했고 2년 만에 퇴사한 후, 영어 통역사가 되기 위해 외대 통역대학원에 진학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직업은 없을까, 고민하다 MBCPD로 입사했고요. 싫증을 쉽게 내는 제게, MBC 예능국은 최고의 놀이터였습니다. 조연출 시절, 6개월마다 새로운 프로그램에 배정되었는데, 그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졌어요. 가요 쇼를 할 때는 가수, 연예 정보 프로그램을 할 때는 탤런트와 영화배우, 코미디를 할 때는 코미디언 등등. 우리 시대 가장 예쁜 여자, 가장 노래 잘 하는 사람, 가장 잘 웃기는 사람, 이런 이들을 만나는 직업. 이것이야말로 제가 바라던 꿈의 직업이었어요.

청춘 시트콤 뉴 논스톱으로 연출 데뷔하고, 제목 그대로 논스톱으로 2년 반 동안 계속 일일 시트콤을 만들었습니다. 방송 편수로 시트콤을 700편 넘게 만든 어느 날, 그 재미도 시들해지더군요. 새로운 게 뭐 없을까 고민하다 사내공모를 통해 드라마국으로 옮겼습니다. 나이 마흔에 드라마 PD로 전직하고 이듬해 내조의 여왕을 만들었지요.

예능이면 예능, 드라마면 드라마, 매번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기회를 주는 회사, 세상에 이렇게 고마운 조직이 다 있나, 하던 참에 어느 날 새로 출범하는 노조 집행부에서 편성제작부문 부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나 같은 날라리 딴따라에게 그런 제안이 온다는 게 좀 이상했지만, 고마운 회사를 위해 그 정도 봉사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덥석 맡았지요.

집행부로 일하던 20121, MBC 노조는 파업에 들어갔고, 저는 집회 프로그램의 총연출을 맡았습니다. 170일 동안 싸우면서 온갖 다양한 포맷의 집회 시위를 기획한 결과, 회사와 나라로부터 그 공을 인정받아 정직 6개월, 대기발령, 교육 발령, 구속영장 2회 청구, 징역2년 구형으로 이어지는 과분한 배려를 누렸습니다. 회사의 징계나 검찰 수사는 별로 괴롭지 않았습니다. 지난 3년간 가장 괴로웠던 것은 더 이상 연출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술 담배 커피 골프를 하지 않습니다.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코미디 연출이 이미 최고의 취미생활인데, 더 이상 어떤 즐거움이 필요하냐고 되물었어요. 방송을 만드는 게 삶의 낙이었던 내게, 회사는 더 이상 일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지금 내가 괴로운 것은 나의 나라 사랑, 회사 사랑이 지나친 탓이구나. PD라는 일에 대한 애정이 너무 컸기 때문이구나.’

 

회사에서 일을 시키지 않는 것이 내게 괴로움이 되는 이유는, 일을 하고 싶은 욕망이 너무 큰 탓입니다. 일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면, 괴로울 일이 없지요. 오히려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이용하여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여행을 다니며 자기계발에 힘쓰면 될 일을.

 

그래서 다시 마음먹었습니다.

나는 PD가 아니다.’

 

어려서 피디를 꿈꾼 적이 없습니다. 그냥 살다보니 피디가 된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피디로 살지 못한다고 괴로울 일도 없어요. 파업이 끝나고 정직 6개월을 받고, 대기발령에 교육발령으로 일이 없던 시절,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낙으로 살았습니다. 그래, 연출을 하지 못한다고, 내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카메라와 편집기가 없어도 글은 쓸 수 있는 것을.

 

나는 PD가 아니다. 나는 이야기꾼이다. 글이든 말이든 영상이든 언제나 즐거운 소통을 꿈꾸며 산다.’

라고, 글을 맺고 싶습니다. 쿨하고 멋지게.

 

그러나 저는 알아요. 제가 쿨하지 못함을. 아마 전 앞으로도 PD로 일하고 싶은 마음과 씨름하며 살 것입니다. 야외 연출이든, B팀 감독이든, 조연출이든, 받아만 준다면 어떤 프로그램에 가서든 일하고 싶어요. 이 마음을 들키면, 일에 대한 내 사랑이 볼모가 되고, 징벌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티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세상에 이렇게 재미난 일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고, 사랑하는 그 마음을 들키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PD이고 싶습니다. 제대로 된 피디 노릇을 하고 살기에 너무나 힘든 세상이지만, 그럴수록 더욱 격렬하게 피디이고 싶습니다.

 

아이들 진로 특강에서 한 대답으로 글을 마무리하렵니다.

 

PD를 꿈꾼 적이 없어요. 그냥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무엇을 하면 즐거울까? 그것만 생각하고 그 순간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을, 가장 열심히 하면서 살았어요.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PD가 되어 있더라고요. 꿈이란 걸 미리 정해두지 마세요. 하루하루 즐겁게, 열심히 사세요. 그러다보면 어느 날 무언가 되어있을 거예요. 그러면 그때 가서 우기세요. 처음부터 그게 꿈이었다고.”

 

PD 글쓰기 캠프에 왔습니다. 언젠가 작가가 되고 싶은 게 꿈이라서?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읽고 싶은 책이 내 곁에 있고, 만나고 싶었던 작가가 내 눈 앞에 있고, 글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내 속에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이렇게 즐거운데 무엇이 되고 안 되고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지난 34, 즐거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글을 다 쓴 후, 피디 연합회보에 기고하라는 주최측 말씀에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공개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글을 사측에서 읽으면 연출에 대한 나의 사랑이 징벌이 되리라 생각했거든요. 글쓰기 캠프 마지막 날 각자 자신이 쓴 글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조용히 낭송을 했습니다. 그렇게 동료들 앞에서 한번 읽고 이 글은 지우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 날 그 자리에서 있던 KBS 라디오 피디 한 분이 제 이야기를 들으며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2012KBS에서도 함께 파업을 했는데, 당시 KBS 새 노조 집행부로 일했던 그는 자신이 겪은 일, 동료들이 겪은 일이 떠올랐는지 글을 읽는 내내 울었어요. 끝나고는 달려와 고맙습니다, 선배님. 열심히 싸워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하고 또 우는데, 갑자기 저도 콧등이 시큰해지더라고요.

그 분의 반응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 바깥에서는 우리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모르는구나. 이 글을 통해 MBC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증언할 수 있다면 글을 공개해야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용기를 내어 글을 ‘PD 저널에 기고했습니다.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고 허핑턴포스트에서 연락도 왔고요. 글을 발행하고 한 달 후, 저는 드라마국에서 편성국으로 인사발령이 났습니다. 누군가 제 글을 본 건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알 수 없지만요.

 

돌이켜보면 그 때, 유배지로 좌천된 것이 제 인생 최고의 행운입니다. ‘영어 책 한 권 외워봤니?’를 내고,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에 나가 강연을 하고, 페이스북 라이브로 사장 퇴진 퍼포먼스를 했던 건 다 그 발령으로 시작된 연쇄 작용이니까요. 드라마국에서 밤샘 촬영하며 야외 연출로 계속 일했다면 책을 쓸 엄두도 못 냈을 것이고, 책이 없었다면 세바시에서 강연 요청도 오지 않았을 것이고, 드라마 연출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없었다면 김장겸은 물러나라페이스북 라이브도 없었을 테니까요.

 

인생은 리액션입니다. 내가 쓴 글에 대한 타인의 리액션이 다시 내 삶의 액션을 불러옵니다. 제 인생, 마지막 반전을 위한 행동, 그 행동을 위한 용기를 불어넣어주신 이진희 피디님께 감사드립니다. 피디님 덕분에 다시 싸울 용기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생은, 역시 리액션입니다.

언론노조 MBC 본부 조합원들은 총파업 투표에 돌입했습니다. 300여명의 피디 기자 아나운서 조합원들이 이미 제작거부에 나섰고요. 오늘 저녁 7시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이들을 만나주세요. 여러분의 리액션이 마봉춘과 고봉순을 살릴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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