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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국내여행

제주도에서 만난 결혼

by 김민식pd 2017. 6. 23.

2017 봄, 마님과의 제주 여행 2일차

 

도미토리를 같이 쓰는 방친구들은 아직도 깊은 잠에 빠진 새벽 5, 혼자 조용히 일어나 아침 산책을 갑니다.

 

 


바다 위로 동이 터오는 하늘이 예뻐요. 서울에서는 하늘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눈높이에서 가리는 건물들이 너무 많아요. 서울을 벗어나면 하늘이 절로 보여요.

 

 

도두봉 공원 산책로, 바다를 낀 야트막한 언덕을 오릅니다. 올레 코스 중 일부인데요. 올레는 종일 걸어도 좋지만 이렇게 일부만 잠깐 걸어도 참 좋네요. 새벽 5시, 바닷길 산책으로 시작하는 하루!

 

 

 

 

등대까지 걸어가 동네 한바퀴를 돌고 숙소로 가니 아침 7시. 게리와 막심은 아직도 자는 군요. 막심은 어제 밤 늦게 체크인한 러시아 친구에요. <브런치 안 힐링하우스>는 부킹닷컴 리뷰가 좋은 덕인지 외국인 배낭족들이 많네요.

 

영어 공부에 한창 빠졌을 때 만났다면, 1일 가이드를 자청하고 함께 놀러다녔을 텐데요. 여행 중 말이 잘 통하는 친구를 만나면 내가 이미 갔던 곳이라도 한번 더 같이 가고 그랬어요. 같은 장소도 다른 사람과 보면 또다른 느낌이거든요. 무엇보다 영어가 미숙한 사람에게 말을 잘 받아주는 좋은 말동무를 만나면 참 고맙거든요.

제주도에서 외국인 배낭족을 만나려면 숙소의 영어 리뷰를 체크해보세요. 재미난 인연을 만날 수 있어요. 어제밤 10시 넘어 셋이서 영어로 수다를 떨다 비슷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저만 혼자 다섯시에 일어난 걸 보면, 역시 나이는 못 속이겠네요. 나이 들어서 그런가, 새벽잠이 없어요. 아니면 새벽에 글을 올리는 블로거의 오랜 습성이 몸에 밴 건가? 역시 습관이 무서워요.


제가 즐기는 배낭족의 아침 식사.

 

게스트하우스에서 보통 토스트 식빵과 계란과 야채를 준비해 놓지요. 식빵 두쪽을 굽고, 계란 프라이를 해서 야채를 올리고 마요네즈를 뿌리면, 초간단 에그 샌드위치 완성!

 

전국에 게스트하우스가 생기고 있으니 나이 들어서는 전국 게스트하우스 순례를 다니며 외국인 배낭족들에게 1일 관광가이드를 하며 살아도 좋을 것 같아요.

 

 

이제 공항에 마님을 모시러 갑니다. 저는 목요일부터 휴가를 내고, 아내는 금요일부터 휴가입니다. 둘이서 섭지코지로 가요. 이곳에서 아내의 선배가 결혼식을 올리거든요. 

  

 

예식장소는 휘닉스 아일랜드에 있는 민트 레스토랑. 짠돌이인 저와 가격대는 맞지 않는 고급 레스토랑이지만, 기품 있는 마님을 모시기엔 부족함이 없는 장소입니다. ^^ 민트 레스토랑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여있어 풍광이 아름답습니다. 신랑 신부가 마흔 일곱살의 동갑내기인데요. 정말 보기 좋네요.

 

 

20대 첫 직장에서 만난 후, 각자 유학을 떠나고 외국에서 일하느라 3,40대를 바쁘게 보냈어요. 미국 와튼 스쿨에서 공부한 신부는 훗날 싱가포르에서 일하기도 하고 지금은 미국 LA에서 살면서 첨단 메디컬 회사를 다닌답니다. 영어가 되는 사람의 삶의 행로는 정말 국제적이군요. 신랑은 회사 그만두고 프랑스로 건너가 코르동 블루에서 요리를 배우기도 했다네요. 정말 멋지게 사는 분들이에요.

 

30대, 40대, 꿈을 좇아 세계 방방곡곡을 다닌 두 사람이 좋은 친구로 지내다 이제 부부의 연을 맺습니다. 

 

 

마흔 일곱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신부와, 아직도 장난기가 얼굴에 가득한 신랑의 모습이 참 보기 좋네요.

 

100세 시대, 결혼의 의미는 이제 '지속 가능성'에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나 빨리 하느냐가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에요. 얼마나 오래 지속하느냐가 문제지. 100세 시대에 결혼을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 어쩌면 나이가 들어 하는 결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혼을, 반드시 20대 30대에만 하라는 법은 없어요. 40이나 50에도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어요. 40에도 공부의 열정을 불태우고, 50에 세계일주를 꿈꾸며, 60에 새로운 인연을 만날 수도 있거든요.

 

마흔 일곱의 나이에 혼인 서약을 맺는 신랑 신부를 보니, '아, 인생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방 강연을 갈 때는 휴가를 내어 하룻밤 자고 다음날 아침 근처 산이나 바다, 강변을 걷다 옵니다. 어찌보면 이것도 외박인데, 아내는 싫은 기색을 하는 법이 없습니다. 저에겐 가끔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아는 거지요. 

 

 

 

역마살이 낀 남편을 만나 17년을 참고 살아오신 우리집 보살님.

저같은 철부지에겐 역시 마님 밖에 없네요.

 

내일은 간만에 마님을 모시고 여행 가이드를 하려고요.

 

제주도 숲길 여행,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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