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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짠돌이 육아 일기

아이의 책 읽는 습관

by 김민식pd 2017. 5. 12.

아내와 내가 둘이서만 공유하는 사진이 있어요. 열살 난 둘째 민서가 팬티 바람에 책을 읽는 모습을 뒤에서 몰래 찍은 사진입니다. 민서는 책 읽는 걸 참 좋아해요. 잠 잘 시간이 지나도, 책 읽느라 잠자리에 들지 않아요. 잠옷으로 갈아입고 자라고 하면 주섬주섬 옷을 벗습니다. 그러면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해요. 윗도리를 벗고 책을 읽습니다. "민서야, 옷 갈아입으라니까." "알았어." 그러고는 다시 바지를 벗으면서 책을 봅니다. 나중에 보면 팬티 바람에 넋을 잃고 책을 읽고 있어요. 그 장면을 찍고는 아내와 제가 가끔씩 들여다보며 흐뭇한 웃음을 짓습니다. 둘째를 책 읽는 아이로 만들기 위한 오랜 저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 같아 뿌듯합니다.

5년 전, 순천 기적의 도서관에 가서 강연을 했어요. 오랜 세월, 어린이 독서 운동을 이끄신 도서관장님께 여쭤봤어요.

"전 아이에게 딱히 물려줄 재산은 없고요. 책 읽는 습관을 물려주는 게 꿈입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피디님, 매일 밤 잠들기 전 30분식 아이에게 소리내어 책을 읽어 주세요. 아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중학생이요? 책은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아이가 혼자 읽지 않나요?"

"글자를 이해하는 것과 이야기를 즐기는 것은 다릅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주시는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잖아요? 모든 아이들은 이야기를 좋아해요. 어른이 소리내어 책을 읽어주는 것도 좋아하고요. 이야기에 대한 사랑이 책에 대한 흥미로 이어질 수 있도록 아빠가 도와주셔야 해요."

요즘도 저는 매일 30분씩 책을 읽어줍니다. 이미 읽은 책도 몇번이고 다시 읽습니다. 아이가 흥미를 잃을 까봐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이야기 전개를 꾸며넣기도 해요. 그림에 나오는 생쥐나 강아지같은 작은 동물에게 목소리를 입혀서 엉뚱한 소리를 하지요. "아이쿠, 어디서 똥냄새가 나네? 월월!" 아이는 똥, 오줌, 방귀, 이런 얘기 나오면 자지러지거든요.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 민서는 혼자서 책을 잘 읽습니다. 그럼에도 밤만 되면 저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졸라요. 이제 조금씩 어려워집니다. 아이의 독서 수준이 올라갔으니, 책도 더 잘 골라야지요. 초등 4학년에게 읽어줄 수 있는 좋은 책이 없을까? 고민하다 발견한 책입니다. 

남산강 학원의 고미숙 선생님은 낭송의 중요성을 역설하십니다. 책을 소리내어 읽는 것이 좋은 공부라고요. 함께 공부하는 분들이 각 지방의 민담 설화를 모아 낭송집으로 엮었어요. 

'낭송 경상남도의 옛이야기' '낭송 경상북도의 옛이야기' '낭송 경기도의 옛이야기' '낭송 제주도의 옛이야기'

경상도의 옛이야기는 구수한 사투리가 대사에 잘 살아있어요. 간만에 고향의 억양을 팍팍 살려서 책을 읽습니다. 

"이 세상에서 젤 무서운 것이 무어냐?"

"호랭이도 무섭고 사자도 무섭고 다 무섭지마는 양바이 제일 무섭십니더."
"그래? 양반이 어예 가지고 제일 무섭노?"

"호랭이하고 사자 이런 짐승은 만내면 고마 피해가믄 뒤에 걱정이 없는데 양반은 닥치믄 뺏어 먹고, 또 달라 카믄 또 주어야 하이, 이거 무서운 거 아이요?"

(<낭송 경상북도 옛이야기> (이한주 풀어읽음/북드라망) 중 당당한 정수동)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 일단 아이도 좋아하고요, 그 모습을 보는 마님도 흐뭇해하십니다. 제가 사랑하는 두 여인에게 동시에 득점할 수 있는 찬스지요. ^^ 낭송은 저 자신을 위한 독서 공부이기도 합니다.

 

2015/04/17 - [공짜 PD 스쿨/짠돌이 독서 일기] - 마음껏 독서할 기회

아이에게 책 읽는 습관을 길러주려면 아이에게 소리내어 책을 읽어주세요. 아이를 위한 최고의 서비스이자 투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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