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19일차 여행기
다르에스살람, 우리에게 참 낯선 도시지요. 탄자니아 제 1의 도시. 그러나 정작 와보니 어디에 가서 무엇을 봐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이럴 땐 구글 검색 들어갑니다. '다르에스살람 여행기'를 한글로 구글 검색했더니, 2010년, 2013년 블로그가 첫 페이지에 뜹니다. 여기 오는 사람이 참 없네요. 다들 이 도시에 왔다가 고생한 이야기만 잔뜩 있습니다. 새벽에 공항 택시 기사에게 사기 당한 사람, 예약 없이 숙소에 갔다가 방이 없어 한밤중에 헤맨 사람... 다들 반나절도 안 보내고 바로 페리타고 잔지바르 섬으로 들어가거나 사파리 하러 아루샤로 갔네요. 대도시는 역시 좀 무섭지요...
어제 페리 터미널에 내리는데 살짝 긴장되더군요. 여기저기서 택시기사가 부르고 숙소 호객꾼도 널렸어요. 부킹닷컴으로 미리 숙소를 잡아뒀어요. 페리 터미널에서 도보 5분 거리. 좌우에 도열한 사람들이 저를 애타게 부르지만, 저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저으며 걷습니다. (무슨 미스코리아 행진도 아니고... ^^)
부킹닷컴과 이메일 덕에 편하게 여행했습니다. 도착 전 호텔에 메일을 보내, 공항 픽업을 부탁하고요. (잔지바르 스톤타운 소재 호텔은 무료 픽업을 해줍니다.) 배낭여행 다니면서 기차역이나 여객터미널에 내리면 고민이 됩니다. '이 많은 삐끼들 중, 누가 가장 양심적일까?' 인터넷 전자 상거래가 활성화되면서, 호객꾼들에게 삥 뜯기는 일은 줄었어요.
이제는 미국의 거대 인터넷 기업이 삥을 뜯습니다. '에어비앤비'며 '부킹닷컴'이 공급자와 소비자 양쪽에 편의를 제공하고 쉽게 연결해주는 댓가로 수수료를 떼지요. 가뜩이나 가난한 아프리카 삐끼들의 일감은 줄겠네요... 여행자들의 편의와 만족도가 올라가서 더 많은 이들이 도시를 찾는 걸로 위안을 삼아야겠지요.
5년전 한국인 배낭족을 등친 택시기사는, 고작 몇 달러 벌려다가 그 얘기가 두고두고 한국인 여행자들을 겁주고 있는지 모를거예요. 글을 보고, 다르에스살람에서 2박 할 걸 줄이고 1박만 하고 가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인터넷 정보혁명의 시대에는 길게 보고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인터넷 덕분에 여행하기는 확실히 더 좋아졌어요. 숙소나 식당이 더 이상 바가지를 씌우지 않아요. 함부로 바가지를 씌워 평판이 나빠지는 것보다 구글이나 부팅 닷컴에서 좋은 리뷰를 얻는 편이 장기적으로는 더 이득이거든요.
페리 터미널 앞을 가득 메운 호객꾼들은 알까요? 자신의 일감을 스마트폰에 빼앗기고 있다는 걸? 제가 다르에스살람의 호객꾼이라면 1. 영어를 더 공부합니다. (다른 삐끼들이 하는 단순한 회화가 아니라 고급 영어를 하도록 노력할 겁니다.) 2. 인터넷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영어로 블로그를 하면서 자신의 서비스를 홍보하고 영작 실력을 연마합니다.) 3. 영어와 인터넷 사용 능력을 기반으로 호텔에서 일자리를 구합니다. (터미널에서 호구 한 사람을 물어오는 것보다, 손님이 부킹 닷컴에 좋은 리뷰를 자발적으로 올리도록 서비스를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걸 호텔에 설득할 거예요.) 그러자면 호텔도 인건비를 올려야합니다.
잔지바르에서 묵은 아일랜드 타운이라는 호텔이 있어요. 골목 한 가운데 있어 찾기 어려운 곳이에요. 그럼에도 리뷰가 좋더군요. 가격은 은근히 있는 편인데도요. 직원들이 다릅니다. 매니저부터 벨보이까지 영어를 잘 하고 친절합니다. 최저임금을 주고 무뚝뚝한 종업원을 고용하는 것보다, 비싼 임금을 주고 영어 능통자를 고용하는 것이 비즈니스에 더 좋다는 걸 아는 거지요. 직원들의 친절함에 감동을 받은 여행자들이 인상적인 리뷰를 남기고요, 그걸 보고 또 사람들이 예약을 합니다. 갈수록 인터넷 평판이 중요한 시대에요. 리뷰의 빈부 격차는, 부의 빈부 격차로 이어질 겁니다.
다르에스살람에 대한 블로그를 검색하다, 이곳에 온 한국인 교환학생이 올린 글에서, 이곳에 워터파크가 있다는 정보를 봤어요. 캐리비안 베이 규모의 워터 파크가 입장료 3만 티쉬, 우리돈으로 1만5천원에 런치 세트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군요. 아드레날린 정키인 저는 워터 슬라이드를 좋아합니다. 다만 여름철 성수기에 한국의 워터파크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부메랑 고 한번 타려고 1시간씩 줄을 섭니다. 수영복 차림에 책 한 권 없이 1시간을 계단에서 멍하니 기다리는 건, 저같은 활자중독자에게 고문이지요.
이곳 다르에스살람의 '쿤두치 워터파크'는 사시사철 사람이 없어 줄을 서지 않는다는 얘기에 달려갔어요.
쿤두치 웻 앤 와일드 워터 파크
주차장에 차가 한 대도 없네요?
매표소에 줄이 없어 안 기다리는 건 좋은데.... 심지어 창구 직원도 없어요. 어라? 그새 문을 닫은 건가? 10분을 기다리니 직원이 나타나네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헐!
워터슬라이드, 줄을 안 서서 좋다더니 아예 운영을 안하네요. 물이 안 나오는 슬라이드를 그냥 타고 내려갈 수도 없고... 이건 뭐지?
SF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입니다. 시간이 멈춘 곳에 나 혼자 돌아다니고 있는.... 혹은 인간이 사라진 마을에 나 혼자 남은.... '나는 전설이다?'
직원을 붙잡고 워터 슬라이드를 타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니가 타고 싶은 슬라이드를 알려주면 스위치를 켜겠다'고 하더군요. 그 다음부터 제가 손으로 가리키면 그곳에 물이 흐릅니다.
"물이여, 흘러라!"
아랍의 왕자가 된 기분입니다. 리조트 하나를 전세 내고 노네요. 스무명의 직원이, 오직 하나뿐인 저를 위해 일하고 있어요. 평일 오전, 이렇게 한가할 줄이야!
'레인 댄스'라는 파티 존이 있는데요. 주말에 이곳에서 현지 청춘들이 물을 뿌리면서 춤을 추고 놀더군요. 아프리카 현지인들과 댄스 타임을 즐기려고 함께 왔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군요. ㅠㅠ 아, 간만에 춤으로 몸 좀 풀려고 했더니...
이럴 땐, 어떻게 할까요?
무언가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땐, 역으로 뒤집어 생각해봅니다.
드라마 PD가 일 할 때, 제일 힘든 게 뭘까요? 남들 노는 곳에 가서 일하는 것입니다. 특히 놀이공원이나 워터파크 촬영이 제일 힘들어요. 음악 소리가 시끄러운데 협조가 어렵습니다. 곳곳에서 사람들 비명 소리며 웃음 소리가 납니다. 즐겁게 노는 사람들 흥을 깰 수도 없고... 동시녹음기사가 아주 괴로워합니다. 무엇보다, 남들 놀 때, 일하는 게 제일 힘들어요.
그런데, 이곳은... 음악이며, 사람을 통제할 일이 없네요. 아, 이런 곳에서 드라마 촬영을 하면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킨 김에 하지요. 혼자서 드라마를 찍습니다. 직접 주연하고, 직접 셀카로 동영상을 쩍어봅니다. 드라마 속 뮤비를 혼자 연출해보는 겁니다.
아무도 없을 땐, 혼자 춤을 춥니다.
한국 워터파크에서 50대 중년 아저씨가 이러고 놀았으면, 앰뷸런스 아니면 경찰차 행인데요. (정신 병자 취급 아니면 풍기문란죄?) 여기선 괜찮아요. 왜? 내가 왕이니까요. 오늘 하루, 워터파크를 전세 낸 유일한 손님이니까요.
ㅋㅋㅋㅋㅋ
역경을 만나면, 관점을 뒤집어봅니다.
그러면 역경도 즐길 수 있어요.
세상이 내게 일을 시키지 않는다?
그럼 놀기라도 잘 놀아야겠다!
이렇게 탄자니아에서의 마지막 하루가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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