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제는 카이트 서핑 말고는 할 일이 전혀 없는 작은 해안 마을이에요. 한 이틀 빈둥거리면서 보내니 심심하군요. 호텔 주인에게 물어봅니다. 여기서 하루 놀만한 거리가 뭐가 있을까? 탄자니아 호텔은 대부분 관광 소개업의 역할도 합니다. 택시도 불러주고요. 여행사랑 연결도 시켜줍니다. 프리즌 섬 투어나 스파이스 투어를 얘기하기에 이미 스톤타운에서 하고 왔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블루 사파리를 추천하는군요. 트립 어드바이저에서 평을 보니, 좋았어요. 무엇보다 저는 스노클링을 매우 좋아하기에 간다고 했지요. 오늘도 낯선 유럽인 여행자들 틈에 끼어 데이 투어를 갑니다.
작은 배지만, 바다가 잔잔하여 배멀미는 없습니다. 산호초를 보려면 연안보다 바다로 나가야 하는데 배를 타다 멀미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곳 잔지바르는 파도가 잔잔하여 뱃놀이하기도 스노클링을 하기도 참 좋네요.
버섯 모양의 섬을 지나갑니다. 파도가 잔잔한데, 그래도 세월의 힘은 무섭군요. 저 돌산을 깎아내는 걸 보면. 조수 간만의 차를 만들어내는 것은 달의 인력입니다. 달의 힘이 큰가봐요. 그렇게 멀리 있는데도 바닷물을 잔뜩 끌어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는 걸 보면.
블루 라군-푸른 산호초에 도착합니다. 오늘은 배가 많아서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밖에서 구경만 합니다.
바다 한가운데 모래톱이 있어요. 작은 모래섬입니다.
모래사장에 천막을 쳐서 그늘을 만듭니다. 과일을 자르고, 맥주와 음료를 나눠줍니다. (사파리 비용 50불 안에 다 포함되어 있어요. 과일, 점심, 음료수까지. 맥주는 2불 추가.)
그런 다음 스노클링 기어를 쓰고 바닷속 구경을 시작합니다. 모래톱 주변에는 크게 볼 건 없는데요. 진짜 스노클링은 바다로 나가서 시작됩니다. 산호초를 찾아나서요.
(구글에서 찾은 자료 이미지입니다.)
이름 참 잘 지었지요? 블루 사파리. 푸른 바닷속 동물을 보는 사파리라는 뜻이지요. 사파리가 유명한 탄자니아다운 작명이네요.
이곳의 바닷물은 참 깨끗합니다. 산호초를 찾으면 여러척의 배를 빙 둘러서 정박시킵니다. 그런 다음 물로 뛰어들어 스노클링을 즐기지요. 주위에 배도 있고, 사람도 많아 위험하지는 않아요. 구명조끼를 입고 하면 편하고 좋아요.
스노클링 할 때 주의점. 래시 가드와 구명조끼를 입는 편을 권합니다. 상의를 입지 않으면 등이 다 탑니다. 저는 2000년 신혼여행을 하와이로 갔는데요. 하마우나베이에서 스노클링을 하다 등을 태워서 밤에 심하게 고생했어요. 아우, 따가워서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신혼 여행 내내 고생했어요.
스노클링을 마치고 섬에 오르면 점심 시간입니다. 해산물 플래터가 나오는데요, 맛이 환상입니다. 처음 투어 비용이 50불이라기에 좀 비싼 거 아닌가 했는데, 음식을 보니 그런 생각은 사라집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즐거운 수다를 떱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들 여유가 있어 좋아요. 인생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니까요.
이 섬의 명물인 누워있는 바오밥 나무를 보러 갑니다. 660년된 이 바오밥 나무는 땅에 누워있어요.
이게 가지가 아니고 나무 뿌리입니다. 태풍에 쓰러졌지만, 아직도 살아있어요.
옆으로 드러누웠지만, 여전히 가지를 뻗고 잎을 피워내는 늙은 나무 앞에서 한 컷 찍습니다.
가끔 후배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드라마 감독의 실력은 잘 나갈 때 나오는 게 아니라, 망했을 때 나온다고. 대본이 잘 나오고, 캐스팅이 잘 되고, 편성 대진운도 좋아서, 시청률이 잘 나오면 좋지요. 하지만 감독의 진가는 망했을 때 나옵니다. 시청률이 폭망했을 때, 작가의 상처를 달래고, 배우의 자존심을 세우고, 스태프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는 것. 가장 크게 상처 받은 감독이 가장 나중에 자신의 상처를 돌보는 것, 그게 드라마 피디의 진짜 실력입니다.
쓰러진 바오밥 나무의 뿌리를 어루만져봅니다.
그래, 너 아직 살아있구나. 이렇게 만신창이 되어서도 꿋꿋이 살아있구나.
잘 달리는 게 실력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것이 실력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고난은 나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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