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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내 아이의 진로는, 의사? 변호사? 교수?

by 김민식pd 2017. 3. 24.

정해진 미래 (조영태 / 북스톤)

 

저자인 조영태 교수 (인구학자)에 따르면, 10년 후를 예측하는 가장 정확한 기준이 인구학이랍니다. 1955~74년 한국의 베이비부머는 매년 90~100만 명씩 출생했어요. 지난 30년 사이 출생아가 40만 명 수준으로 떨어지더니 이제는 그마저도 위태롭답니다. 앞으로는 학교 입학 아동이 줄어 학교와 교사가 남아돌게 됩니다. 직업 안정성과 연금이라는 이점 때문에 장래 희망이 '교사'라는 아이가 많은데요. 중등 독일어 교사는 2008년 이후 전국에서 1명도 선발하지 않았어요. 서울대 사범대학 독어교육과에서는 매년 15명의 신입생을 선발하는데 말이지요. 교직의 미래는 과연 어떨까요?

 

'지금이야 의사나 변호사를 최고의 직업으로 치지만, 앞으로도 과연 그럴까? (중략)

현재 활동하는 의사와 변호사들의 주축은 40대와 50대 초반이다. 이들이 언제까지 의사와 변호사를 할까? 60대? 70대? 현재의 40~50대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건강하고 오래 사는 데다, 노후자금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므로 쉽게 은퇴하지 않을 것이다.

은퇴가 있는 노동시장은 윗세대가 꾸준히 빠져나가면서 신규 세대가 진입할 수 있는데, 의사나 변호사처럼 은퇴가 없는 노동시장은 빈자리가 나지 않는 한 신규세대가 들어갈 길이 없다.' 

(위의 책 82쪽)

 

의사나 변호사의 특징은 교육 기간이 길고 학비도 비싸다는 점입니다. 요즘엔 로스쿨이나 의대를 보내려면, 초등학교부터 사교육비를 쏟아부어야합니다. 아이들 사교육에 소득을 모두 쓴 사람과 그 돈으로 노후를 준비한 사람, 앞으로 둘 사이 노후 생활의 질은 극적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부모가 가난해도 아들이 의사나 변호사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아이의 진로에 온 가족이 판돈을 올인한 도박을 하는 셈입니다. 도박은 판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에게 더 유리한 게임이구요. 지금 사교육 시장은 가진 자들이 판돈을 올리고, 중산층이 빚을 내어 쫓아가는 판이거든요? 이 판이 과연 공정한 게임인지는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대학 신입생이 급격하게 줄면서 문을 닫는 지방 사립대도 나올 겁니다. 지방대가 문을 닫으면 그곳의 4,50대 교수들은 다시 수도권 대학이나 공립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려 하겠지요. 교수직 경쟁이 더 치열해집니다. 지금 미국 유학중인 아이들이 국내에 돌아오는 10년 후, 십년 넘게 들인 유학비용을 뽑을 수 있을까요? 상황이 이런데 미국 박사 만드는데 유리하다고 초등학교 부터 1년에 1억을 들여 조기 유학을 보내야 할까요?

 

조영태 교수는 우리나라는 산아 제한 계획을 너무 오래 시행했다고 말합니다.

'만약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인구대체 수준인 2.1명이 된 1983년에 일본이 겪고 있는 인구변화 추이를 봤다면 아마 그때 가족계획을 중단했을 것이다. 바로 이웃한 나라가 우리의 20년 후를 보여주고 있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참고하지 않았다.'

(201쪽)

 

요즘 저는 '노후파산' '2020 하류노인이 온다' 등, 일본의 가난한 노인 문제를 다룬 책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의 노인이  20년 후,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사교육 투자보다 노후 대비가 더 중요하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쓰게 된 이유 중 하나고요.) 

어려서 저는 의대를 가라는 아버지의 강권에 이과를 갔는데요. 적성도 안 맞고 성적도 모자라 결국 공대에 갔습니다. 20대 시절, 많이 힘들었어요.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밤에 입시반 학원을 다녀 외대 통역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기쁜 마음에 아버지께 낭보를 전하러 갔더니 아버지께서 그러시더군요.

"그래, 공부를 하니까 되지 않니. 지금이라도 재수하고 수능 봐서 한의대를 가면 어떻겠니? 한의사는 정년이 없으니 나이 40에 졸업해도 된단다."

 

그 순간, 정말 좌절했어요.

'아, 의사가 되지 못하면 나는 평생 아버지 눈에 못난 자식이구나...' 오히려 그 후,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어차피 무엇을 하든, 아버지 눈에는 안 찰 테니, 그냥 내가 좋은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

진로를 선택하는데 있어, 부모의 소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식 본인의 적성과 선택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보기에 지금 현직에 계신 교사나 의사, 변호사들은 괜찮습니다. 그분들은 지금까지 익힌 노하우와 시장에서 차지한 점유율로 오래 버틸 수 있으니까요. 다만 아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해, 미래에 의사 변호사 교사가 못된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자신의 천직이 교직, 의사, 법률가라 믿고, 또 그만큼 열심히 공부해서 의대나 법대, 교대에 갈 수 있는 아이라면 굳이 말릴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세가지 직업이 못 되었다고 아이를 패배자 취급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책의 제목은 '정해진 미래'이지만,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바뀝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더 행복하기를 꿈꾸는 부모님들께 권합니다.

'정해진 미래 - 인구학이 말하는 10년 후 한국 그리고 생존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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