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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지속가능한 즐거움

by 김민식pd 2017. 3. 16.
사파리에서 만난 독일 청년, 사샤가 물었어요.

"미키. 넌 배낭도 작은데 왜 그렇게 큰 망원렌즈랑 DSLR 카메라를 가지고 다녀?"

"블로그에 올릴 사진을 찍으려고."

"내 친구는 한 5년 되니까 블로그도 지겹다고 하더라? 처음엔 재미삼아 올렸는데, 매일 숙제가 되니까 힘들다고. 넌 어때?"

"나도 한 5년 넘었는데, 그래도 아직 재미있어."

"비결이 뭐야?"

"방문자수나 구글 광고 수익을 너무 신경쓰면, 조회수가 높은 글을 써야한다는 압박을 느낄 거야. 내겐 블로그가 그냥 취미야. 글을 쓸 때 기준은 하나지. 무조건 그날 내가 가장 쓰고 싶은 글을 쓰자. 그게 책이건, 영화건, 여행이건. 만약 글쓰기가 재미없다면 언제든지 그날은 쉬자. 다행히 아직은 재미가 있어. 어떤 일이든 오래 하려면, 다른 사람보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해."

사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할 때, 살짝 겁이 나기도 했어요. '매주 방송 마감에 쫓기며 일하는 게 가장 큰 스트레스인 드라마 피디가, 정작 쉴 때조차 매일 한 편씩 글을 쓴다니, 이건 혹 미친 짓 아닐까?'


팟캐스트 <빨간 책방>을 진행하는 이동진 평론가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군요. 

 

'책읽기는 수십 년을 지속해도 질리지 않는 오락이었다. 목이 뻣뻣해지거나 눈이 뻑뻑해져서 책을 덮은 적은 있어도 독서 자체에 물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냥 평생 파묻혀 책이나 읽고 지냈으면 좋겠다. 한참 게을러질 때는 태평한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런 든든한 오락이 어느 순간 일이 되었다. 팟캐스트 방송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맡게 되면서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책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하느라 혹시 읽기의 즐거움을 잃게 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서문. 

다행히 책의 선정이나 방향에 있어 간섭하지 않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배려해준 좋은 제작진을 만난 덕에 아직도 책읽기의 즐거움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책을 읽어보면 <빨간 책방> 덕에 이동진님의 책사랑이 더욱 깊어진 것 같아요. 김중혁님과 이동진님이 서로를 소개하는 저자 소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글은 따로 메모장에 적어두고 가끔 들여다봅니다. '나도 이런 삶을 살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지만, 자극은 되겠지요. ^^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은 팟캐스트 <빨간 책방>에서 나눈 두 작가의 대화를 정리한 책인데요. 읽다보면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어떻게 말의 밀도가 이렇게 높지?' 탄자니아 여행 중 읽었는데 책에서 소개한 소설들을 읽고 싶어 좀이 쑤실 지경이었어요. 책에 대한 식욕을 제대로 당겨주는 맛깔나는 에피타이저네요.

'독서가 지겨워지는 때가 오면 어떡하지?' 책벌레에게 가장 큰 두려움입니다. 이런 책을 만날 때마다 다행이라고 느낍니다. 읽고 싶은 책이 마구마구 늘어나거든요.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을 통해 독서의 즐거움이 다시 무한확장되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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