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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2017 MBC 파업일지

어느 겁쟁이의 고백

by 김민식pd 2017. 1. 10.

저는 겁이 참 많습니다.

눈 큰 사람이 겁이 많다는 말이 있는데, 제가 딱 그래요. 보이는 게 너무 많아서 그런가봐요. 눈에 뵈는 게 없으면 무서울 것도 없는데 말이지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이라는 영화가 개봉합니다. MBC와 YTN의 해직언론인 사태를 다룬 영화예요. 전주영화제에서 영화를 먼저 본 후배가 그러더군요.

"선배님 모습이 영화에 자주 나와요."

스크린에 내가 나온다니, 궁금했어요. 어떤 모습일까? 2012년 MBC 170일 파업 당시, 노조에서 기자회견을 하는데 회사에서 정문을 봉쇄한 일이 있습니다. 기자들 못 들어오게 막으려고요. 명색이 언론사가 기자들의 출입을 봉쇄한 겁니다. 진실을 알리기위해 성역없는 보도를 추구해야할 언론사가 정작 자신의 회사는 문을 걸어 잠그다니, 그때 정말 화가 났어요.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한편으로는 두려웠습니다. '아, 이들은 정말 염치없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구나.'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르거든요.

기자들을 회사안으로 들이기 위해 조합 집행부에서 사다리를 가져왔어요. 사다리를 철문에 걸쳐서 문밖 기자들의 손을 잡고 월담을 합니다. 그때 제가 철문에 올라가 씩 웃으면서 V자를 그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무슨 수업 땡땡이치고 월담하는 개구쟁이처럼 나옵니다. 영화에서 제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그랬어요. '저때 참 많이 무서웠나보네...'

파업을 하면서 늘 무서웠습니다. 대학 다닐 때, 데모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제가 노조 부위원장이라고 앞줄에 서는데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요. 겁먹은 기색이 드러날까봐 더 웃었습니다. 포식자들은 사냥감에게서 공포의 냄새를 맡습니다. 겁에 질린 티가 나면 잡아먹혀요. 저들에게 쫄은 티를 내지 않으려면 웃으면서 싸워야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무섭습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상상력이 커지고, 상상력이 클수록 겁은 더 납니다. 온갖 비관적 시나리오가 다 떠올라요. 그렇게 겁많은 제게, 검찰이 2번이나 구속 영장을 청구하고, 재판에서 징역 2년을 구형했으니, 오죽 쫄았겠어요. 

영화를 보니, 이명박근혜 정부 치하에서 해고된 언론인이 물경 스무명이 넘습니다. 그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스크린을 채웁니다. 구호를 외치고, 몸싸움을 하고, 낙하산 사장에게 대거리를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 저 사람 속으로는 얼마나 무서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마음이 착잡합니다. 사람들이 물어요. '나라가 이 지경이 되도록 언론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의 예고편입니다.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함께 봤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속에는 가장 쉬운 해답이 숨어있거든요.

교육을 살리고, 검찰과 국정원을 개혁하고, 경제 정의를 되살리고... 해야할 일이 많습니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은 언론사 낙하산 사장 방지법 제정입니다. 언론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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