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88 판사유감 (문유석 / 21세기북스)

 

'개인주의자 선언'를 읽고 문유석 판사의 첫번째 책을 찾아보았습니다.

 

'솔직히 난 판사, 검사, 의사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이라 생각한다.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야만 이런 '폼 나는 직업'을 갖게 되지만, 이들의 일상은 인간의 가장 어둡고, 비참하고, 더러운 것과 정면으로 부딪혀 견뎌야 하는 일들로 가득하다. 웬만한 멘탈 아니면 참기 힘들다. 밤마다 폭탄주를 마시며 겨우 버티는 이들도 많다.
문유석 판사는 글쓰기로 그 고통을 견디는 듯하다.'

(위의 책 4쪽, 김정운 선생의 추천사)

 

공감합니다. 고등학교 진로 특강가서 늘 하는 얘기가 있어요.

"여러분 중에서 어른이 되어 인생을 가장 힘들게 살 사람은 전교 일등입니다. 이과 전교 일등은 당연히 의대에 가야한다고 생각하고, 문과 전교 일등은 당연히 법대에 갑니다. 아무도 전교 일등의 적성이나 취향에는 관심이 없어요. 우리 나라에서 무조건 제일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의사가 되면 매일 아픈 사람들을 상대하고, 법관이 되면 매일 나쁜 사람을 만납니다. 아무도 전교 일등의 적성에는 관심이 없어요. 오히려 공부를 좀 못하면 어른들이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넌 뭐할 때 가장 즐겁니?' 어떤 직업을 선택할 때 기준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 되어야 하는데 전교일등은 이게 쉽지 않습니다." 

너무 열심히 공부한 친구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보다 세상이 권하는 일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아이러니...

 

문판사님은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서 일하며 개인파산에 관련한 사법 업무를 보셨답니다. 개인 파산이라고 하면 다들 극빈층을 떠올리지만 의외로 파산을 신청하는 중산층도 많답니다. 맞벌이로 열심히 버는 사람들이 왜 파산에 빠지는 걸까요?

 

'<맞벌이의 함정>이라는 책에 인상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하버드 로스쿨의 엘리자베스 워런 교수가 씨티그룹 중역들 앞에서 강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교수는 신용카드 남발과 소비자 신용 과다가 평범한 미국 중산층을 파산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열변을 토합니다. 그런데 높은 중역이 말을 가로막고 한마디 합니다. "교수님, 바로 그 사람들이 우리 그룹의 이윤 대부분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자기 수입의 범위 내에서 근검절약하던 미덕을 촌스러운 시대착오적 행동으로 치부하게 되고, 실현 가능성 없는 미래의 수입을 당겨쓰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카드 대금 고지서는 쌓여만 가는데, 월급봉투는 그대로, 남들은 모두 손쉬운 대박으로 부의 사다리를 올라가고 있는데 자기만 낙오되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에 조급해지기 시작하죠. 어느 세월에 쥐꼬리만 한 월급을 한 푼 두 푼 저축해서 부자가 되겠어, 인생 한 방인데 나도 승부를 걸어야지. 그리고는 불나방처럼 승산 없는 게임에 몸을 던집니다. 돈 빌려서 주식 투자, 그것도 데이 트레이딩, 돈 빌려서 술집 개업 등 좀 더 투기적인 사업 그리고 그놈의 피라미드, 다단계까지...
유감스럽게도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전장은 게임의 규칙을 지배하는 극소수의 승자들이 독식하는 피비린내 나는 곳입니다. 감히 어리바리한 양민들이 들어와 푼돈이라도 건져 살아 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위의 책 93쪽)

 

소득이 없는 사람은 아예 돈을 빌릴 수도 없어요. 꼬박꼬박 월급을 버는 사람들이 목돈을 대출할 수 있지요. 집 한 채 없는 사람은 빚도 내기 어려워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 있어야 대출이 되지요. 그 결과 다 하우스푸어에 에듀푸어가 됩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빚에 허덕인다는 이 슬픈 아이러니...  


'<맞벌이의 함정>이라는 책에 따르면 미국의 파산자 중 상당수는 맞벌이로 상당한 소득을 올리는 중산층이라는 겁니다. 소득이 올라갔는데 웬 파산이냐고요? 요약하면 소득이 올라가는 것보다 고정지출이 늘어나는 것이 훨씬 많아서 여유 자금이 이전보다 훨씬 줄어든 빡빡한 삶을 살다가 실업, 급여 감소, 질병 등 변동 요인이 발생하면 곧바로 파산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위의 책 43쪽)

 

맞벌이하는 중산층이 파산하는 이유가 알콜 중독이나 도박이라든가, 사치품 소비같은 게 아니랍니다. 너무 열심히 살기 때문이죠. 아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환경을 주려고 빚을 내어 학군 좋은 동네로 이사하고, 사교육비에 유학 자금을 대느라 노후 대비도 변변히 못하고 삽니다. '아이들 교육은 남하는 만큼은 시켜야지, 남들 사는 만큼은 하고 살아야지.' 가계 소득을 올리기는 쉽지 않은데 소비의 수준이 올라가는 건 금방입니다. 과소비가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남들하는 만큼 하고 살려다보니 그런거죠. 아이들을 위해 너무 열심히 산 결과, 가계 파산을 맞이한다는 건 좀 슬프네요... 이건 올해 초에 읽은 <노후파산>과도 겹쳐지는 대목이에요.

 

개인적으로 저는 남들보다 덜 하고 사는 삶을 꿈꿉니다. 돈이나 권력, 지위 등의 한가지 기준으로 행복을 재단하기보다,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행복을 추구하는 삶. 더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더 잘 노는 것이 제 삶의 목표에요.

주말을 앞두고 잠깐 제 자신을 돌아보려고 합니다.

'나는 지금 너무 열심히 살고 있는 건 아닌가?'

 

 

문유석 판사님의 책은 매번 다 재미있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시는군요. 지난번 글에 섭섭이 님이 댓글로 작가의 페이스북을 알려주셔서 놀러갔다가 다음에 읽을 책도 찾았어요.

황정은 작가의 '계속해보겠습니다.'

 

아, 참 좋네요. 좋은 작가와 독서가를 동시에 발굴하는 기쁨!

저도, 계속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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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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