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86 개인주의자 선언 (문유석 / 문학동네)

 

'고백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을 뜨겁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혐오증이 있다고까지 할 수 있다. 지하철에서 양옆에 사람이 앉는 게 싫어서 구석자리를 찾아 맨 앞칸까지 가곤 한다.'

(위의 책 7쪽)

아, 글머리부터 눈길을 확 잡아챕니다. 제가 꼭 이렇거든요. 술 담배 커피를 하지 않지만, 고상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노는 걸 더 좋아하는 거죠. 고교 시절, 따돌림을 당한 후, 무리를 이룬 사람들에 대한 트라우마가 좀 있어요.  

  

'고도성장기의 신화가 끝난 저성장시대, 강자와 약자의 격차는 넘을 수 없게 크고, 약자는 위는 넘볼 수 없으니 어떻게든 무리를 지어 더 약한 자와 구분하려든다. 가진 것은 이 나라 국적뿐인 이들이 이주민들을 멸시하고, 성기 하나가 마지막 자존심인 남성들이 여성을 증오한다.
반면 합리적 개인주의는 공동체에 대한 배려, 사회적 연대와 공존한다. 자신의 자유를 존중받으려면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톨레랑스, 즉 차이에 대한 용인, 소수자 보호, 다양성의 존중은 보다 많은 개인들이 주눅들지 않고 행복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위의 책 37쪽)

 

개인주의자로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사는 저는, 뼛속까지 딴따라입니다. 예능 피디도 딴따라예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도, 예능 피디로 사는데 별 문제는 없었어요. 저는 공동체의 가치도 존중합니다. 개인주의자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공동체가 우선이거든요.

어느날 제게 노조 집행부 제의가 들어왔을 때, 아내는 반대했어요. 노조 활동은 당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맞는 말이에요. 저처럼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이 노조라니, 참 아이러니지요. MBC 입사하고 저는 내내 참 행복하게 살았어요. 노조가 강한 회사라, 조직 내 불합리한 요구라든가 불평등한 차별이 없었어요. 언론자유를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회사 내에서 PD의 제작 자율성 존중으로 발현되었지요. 그 덕에 만들고 싶은 프로는 실컷 만들었어요. 개인의 행복에는 건강한 공동체가 우선해야 한다는 걸, 그리고 건강한 조직은 노동조합의 감시 속에서 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나니, 집행부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어요. 제가 노조 집행부가 되었다니까 동료 드라마 PD 하나가 물었어요.

"형, 우리가 노동자야?"

제가 되물었지요.

"그럼 우리가 자본가냐?"

 

'우리 대부분은 노동자다. 판사도 마찬가지다. 노동의 대가로 살아가는 사람은 모두 노동자다. 그래서 노동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물에 빠졌을 때 헤엄치는 법을 알아야 살 수 있듯이 노동자의 권리를 알아야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자신을 지킬 수 있다.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생존법이다.'

(위의 책 122쪽)

 

자신을 예술가로, 창작자로 여기는 이들은 스스로를 노동자라 생각하지 않지요. 아무리 딴따라라도, 노동의 댓가로 돈을 받는다면, PD도 노동자고요. 노동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을 먼저 지켜야합니다. 문유석 판사의 책에는 영화 '제보자'와 그 소재였던 'PD 수첩 황우석 사건'도 나옵니다.

 

'내부고발자가 시민 이익의 대변자로 보호받고 보상받아야 권력자들이 긴장한다. 발각될 리스크를 고려에 넣도록 만들어야 대범한 도둑질을 못한다. 조심이라도 한다. 인간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은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감시다. 눈먼 의리가 아니다.
그나저나 우리나라는 정말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나라인가보다. 황우석 사건 보도 같은 대단한 일을 해낸 피디조차 방송 제작 대신 스케이트장 운영 업무에 종사하게 되었다니 말이다. 탁월한 피디가 남아돌거나 또는 시민들의 생활체육을 극도로 중시하는 것이리라.'

(위의 책 213쪽)

 

개인주의자로 살면서, 저는 보수의 가치를 신봉합니다. 양심의 자유를 믿고, 언론의 자유를 믿고,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믿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가짜 보수들이 판치는 게 참 싫어요. "너 그렇게 떠들면 빨갱이야?" 라고 제게 윽박지르는 사람도 있지만, 모르시는 얘기에요. 개인주의자인 내가 가장 끔찍하게 싫어하는 게 전체주의 사회인 북한이거든요. 그런데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이들이 싫다고 말하는 게 잘못인가요?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똥개들이 짖어도 기차는 간다.'

(57쪽)

 

판사로 오래 일하면서 어떤 사안을 보는 균형 감각을 기르셨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습니다. 문유석 판사님의 책을 읽는 건 즐겁고 유쾌한 경험입니다. 얼른 '판사유감'도 구해서 읽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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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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